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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큰일(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당신 친히 그때에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시는 바로 그분께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또한 특히 성체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신다.”8 사제품 성사를 통해 사제는 주님께 자신의 목소리와 손, 온몸을 효과적으로 바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한 미사에서 축성의 말씀을 통해 빵과 포도주의 실체를 즉시 그분의 몸, 그분의 영혼, 그분의 피, 그분의 신성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사제의 비교할 수 없는 존엄성의 기초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받은 위대함, 내 작음과 양립할 수 있는 위대함입니다. 저는 모든 사제들이 거룩한 일을 거룩한 방식으로 행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우리 주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우리 삶에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반영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수난의 신비를 기념하는 우리는 자기희생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성체가 되면 그 성체가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할 것입니다.9
겉으로 보기에 복음에 따라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제를 만나더라도 일단 그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사제가 축성할 의도를 가지고 미사 성체를 올바르게 거행한다면, 비록 존경할만 하지 않은 사제라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손에 내려오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그 사제에게 더 많은 자기포기와 더 많은 비우심 가능할까요? 다시 말하면 베들레헴과 갈바리아산보다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인류의 구원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하며, 그분께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을 찾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우연히 만난 것처럼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즉, 사랑 때문입니다! 다른 설명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는 데는 말로는 언제나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며, 신성모독에서부터 많은 이들의 냉담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상처 입은 가슴 속에서 뛰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적어도 한 사람에게라도 주기 위해 이렇게 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사제의 정체성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얻으신 구원의 은총을 즉시적이고 일상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기도의 침묵 속에서 묵상했다면, 어떻게 사제직을 포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포기가 아니라 측정할 수 없는 이익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오직 한 번만 예수님을 세상에 내려오게 하셨습니다. 그에 반해 사제들은 매일 예수님을 이 지구에, 그리고 우리의 몸과 영혼에 계시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제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양을 주시며, 부활시키시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되기 위해 오시기 때문입니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amar-a-la-iglesia/39/ (20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