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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사랑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는 이론을 주장하고, 그로부터 연애는 시험 삼아 해 보는 결혼과 같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의 명령이라고 여기는 것을 따르지 않으면 진실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직한 사람이라면,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생각해야 할 대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걸맞지 않은 태도이며, 인간의 사랑을 이기심과 쾌락과 혼동하여 그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행동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요? 오히려 본능 외에는 다른 충동을 인정하지 않고 밀림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뒤처진 사람입니다. 연애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깊게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배우는 모든 학교가 그렇듯, 소유욕이 아니라 헌신과 이해, 존중과 섬세함의 정신으로 이끌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1년 남짓 전에 나바라 대학교에 아름다운 사랑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성상을 선물하고자 했습니다. 그 여러 학부에서 수업을 듣는 젊은 남녀들이 성모님께 사랑의 고귀함을, 인간의 사랑이 지닌 고귀함도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험 삼아 해 보는 결혼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사랑을 얼마나 모르는지요! 사랑은 그보다 더 확실하고 더 실제적이며 더 인간적인 실재입니다. 시험해 본 다음 변덕이나 편의, 이익에 따라 받아들이거나 버리는 상품처럼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판단력의 결여는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이들을 굳이 단죄할 필요조차 없어 보입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에게 결실 없는 삶과 슬픔, 황량한 고립을 선고하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년만 지나면 이를 겪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길이 여전히 열려 있음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써 노력한다면 그들도 성인이 될 수 있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용서와 은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야 사랑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또한 고귀한 인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와 기쁨, 풍요로운 결실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성과 관련된 큰 문제 하나는 미혼 여성의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혼인의 소명이 있으면서도 결혼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말합니다. 결혼하지 못하면 그들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세상에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 어떤 대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세상에 있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모든 피조물에게 널리 전하기 위해 있습니다. 혹시 이것이 작은 일처럼 보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어떤 영혼도 맹목적인 운명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모든 영혼을 위한 계획이 있으시며, 각자에게만 고유하고 남에게 넘길 수 없는 소명으로 모든 이를 부르십니다.
혼인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며 소명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길도, 유일한 소명도 아닙니다. 각 여성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반드시 혼인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혼인 소명이 있는데도 결혼하지 못했다고요? 어떤 경우에는 사실일 수 있으며, 어쩌면 이기심이나 자존심이 그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루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님께서 참된 혼인 소명을 주시지 않았다는 표징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좋아하고,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남편과 자녀에게 충실하게 마음을 바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결혼할 수 있으면서도 하느님과 영혼들을 섬기는 데 마음을 쓰기 위해 결혼하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그렇습니다.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좋습니다. 지금까지 해 왔듯이 계속 주님의 뜻을 사랑하고, 누구도 버리지 않으시며 언제나 충실하신, 지극히 사랑스러운 예수님의 성심과 가까이 사귀십시오. 그분은 이 삶 내내 우리를 돌보시며, 이미 지금부터 영원히 당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고자 하십니다.
더구나 여성은 자기 가족 외의 다양한 영역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어머니의 정서적인 특성까지 포함한 모든 여성적 특성을 지니고, 다른 가정에서, 학교에서, 복지 사업에서, 수많은 곳에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사회는 때로 자신이 ‘노처녀’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매우 가혹하고 몹시 부당합니다. 주변에 기쁨과 평화와 능률을 퍼뜨리는 미혼 여성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에 고귀하게 자신을 바칠 줄 알고, 영적으로 깊은 어머니가 될 줄 아는 여성들입니다. 단지 생리적으로만 어머니인 많은 여성보다 더 참되게 어머니가 됩니다.
나바라 대학교를 운영하는 일은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온전히 사회적 봉사에 전념하는 사업입니다. 또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의 번영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사업입니다. 저는 언젠가 스페인 정부가 이 사업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무언가 기여하는 때가 오리라는 희망을 계속해서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에도 부합하고,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귀족적인 인간애
그리고, 여러분, 지금 이제 제가 소중히 여기는, 일상생활에의 따른 또 다른 차원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간의 숭고한 순결한 사랑, 즉 연인애인들과 부부들의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거룩한 인간적 사랑은 단지 진실된 영적 활동과 함께여야만 허가되거나 용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전에 언급했던 잘못된 영성에 의해 그렇게 생각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저는 40년 동안 말과 글을 통해 이와 정 반대되는 것을 가르쳐 왔고, 이제는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도 이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혼인과 가정으로 이끄는 사랑 또한 아름답고 거룩한 길이요 성소이며,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길입니다. 인간적 사랑으로 둘러싸인 활기찬 영역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들, 곧 완전한 정신으로 일하기, 매일 작은 일에 사랑을 불어넣기, 사소한 일에 숨어 있는 “거룩한 것”을 발견하기가 특별히 잘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바라 대학교의 교수, 학생, 교직원 여러분 모두가 아시듯이 저는 여러분의 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이 캠퍼스에는 우리가 기도하며 지은 경당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성모님께 기도하실 수도 있고, 성모님이 축복하실 여러분의 놀랍고도 순수한 사랑을 바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1코린 6,19). 여러분은 아름다운 사랑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녀의 성상 앞에서 사도 바오로의 이러한 물음에 얼마나 자주 기쁨에 찬 확언으로써 답하시겠습니까! 예! 그것을 알고 있고, 당신의 강한 도우심으로 그것을 살고자 합니다. 천주의 성모 동정 마리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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