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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과의 대화»에는 교리를 주제로 하는 6 항이 있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가리키기 위해 문헌들에서 ‘하느님 백성’이라는 표현을 폭넓게 사용했습니다. 이로써 이 하느님 백성의 유일한 사명에 대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 책임을 드러냈습니다. 비오 12세께서 이미 말씀하신 ‘교회에 필요한 여론’이 이 공동 책임을 실제로 반영하려면 어떤 특징을 지녀야 한다고 보십니까?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권위와 순종의 고유한 관계는 ‘교회 안의 여론’이라는 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자발적이고 책임 있는 순종이 아니라면 참된 그리스도교적 순종이 있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돌이나 시체가 아닙니다. 지성과 자유를 지닌 존재이며, 명령하는 사람과 똑같은 초자연적 질서로 모두 들어 높여졌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그리스도교적 양성이 없는 사람은 순종할 때나 의견을 말할 때나 지성과 자유를 결코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필요한 여론’의 근본 문제는 신자들에게 필요한 교리 양성의 문제와 같습니다. 물론 성령께서는 교회의 사명에 모두 공동 책임을 지는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선물들을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에게도 적절한 교리 양성을 받을 의무를 면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말하는 교리란 각 신자가 교회의 전체 사명과, 그 유일한 사명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참여 및 그에 따르는 특별한 책임에 관해 충분히 알아야 할 내용을 뜻합니다. 교황님께서 여러 번 일깨우셨듯이, 이것이 공의회 이후의 이 시대에 교회가 마주해야 하는 거대한 교육 과제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움트는 다른 희망들과 더불어, 말씀하신 문제의 올바른 해결도 이 과제와 직접 관련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리를 갖추지 못한 일부 은사적 인물들의 다소 예언적인 직감이 하느님 백성 안에 필요한 여론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여론의 표현 방식에 관해서는, 기구나 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구 사목평의회도, 공식적인 가톨릭 신문이 아니더라도 신문의 지면도, 한 신자가 자기 주교에게 보내는 단순한 개인 편지 등도 똑같이 적절한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의 의견을 드러낼 정당한 가능성과 방식은 매우 다양하므로, 새 조직이나 제도를 만들어 이를 틀에 가둘 수도 없고 가두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어떤 성향이나 방향을 지닌 소수이든, 이른바 공식 가톨릭 신자들의 한 집단이나 작은 무리가 실제로 독점하거나 도구로 삼을 위험이 쉽게 생기는 기관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교계 자체의 신망을 위태롭게 하고 하느님 백성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조롱처럼 들릴 것입니다.

때로는 현세적 문제, 특히 정치적 문제에 구체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제들에게 비난이 쏟아집니다. 과거와 달리 이런 입장들 가운데 많은 것은 더 큰 자유와 사회 정의 등을 증진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극히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이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직무 사제직의 고유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의와 자유의 결여 등이 그리스도교적이지 않으므로 사제가 이를 고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 두 요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습니까?

사제는 모든 그리스도교적 덕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사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상황에서 그 덕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 설교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의 munus docendi, 곧 가르치는 임무의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며 주신 존엄과 자유,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세례로 받는 고유한 초자연적 존엄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러한 직무의 의무를 수행하는 어떤 사제도 무지나 악의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결코 정치에 끼어든다는 비난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펼침으로써 현세의 구조와 활동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질서 짓는 평신도 고유의 사도직 과제에 간섭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단체로서 오푸스데이가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과 회원들이 개인으로서 각자의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학교나 피정의 집 같은 사업은 단체가 수행하고, 출판사나 상업 기업은 개인이 수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오푸스데이의 주된 활동은 회원들과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상 한가운데에서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적 수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을 알게 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일을 잘 해내도록 이끄는 정신을 전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과 함께 살고 모든 사람의 정당한 자유를 존중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정의롭게 만들면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회원 각자는 오푸스데이에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직업, 오푸스데이 회원이 아니더라도 종사했을 직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사회에 봉사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광부이고, 다른 이들은 학교나 대학에서 가르치며, 또 다른 이들은 상인, 가정주부, 비서, 농민입니다. 고귀한 인간 활동 가운데 회원이 종사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회원이 되기 전에 출판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던 사람은 그 후에도 같은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나 다른 일을 하다가 새 직장을 구하거나 같은 직업의 동료들과 어떤 회사를 세우기로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자유롭게 결정할 일이며, 일의 결과도 자신이 직접 받아들이고 그 책임도 개인적으로 져야 합니다.

오푸스데이 책임자들의 모든 활동은 회원들의 직업적 자유를 극진히 존중하는 데 기초합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의 존립 자체가 달린 지극히 중요한 점이므로 절대적인 충실함으로 지킵니다. 각 회원은 오푸스데이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일했을 분야에서 직업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푸스데이 자체나 다른 어떤 회원도 그 특정 회원의 직업 활동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회원들이 오푸스데이에 결합되면서 약속하는 것은 일을 기회와 수단으로 삼아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이 지녀야 할 인류에 대한 봉사의 성격을 더 분명히 의식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푸스데이의 주된 사명은 회원들과 그런 양성을 받기 원하는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교적 양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가 겪는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려는 바람,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이상이 그 해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푸스데이 자체가 단체로서 일부 활동과 사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 분야의 기준은, 오로지 영적인 목적을 지닌 오푸스데이가 명백하고 직접적으로 그리스도교적 봉사이자 사도직이 되는 활동만 단체로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푸스데이 자체가 탄광에서 석탄을 캐거나 어떤 종류의 경제 기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그 단체 활동은 모두 직접적인 사도직 활동입니다. 농민 교육 학교, 낙후된 지역이나 나라의 진료소, 여성의 사회적 발전을 위한 학교 등이 있습니다. 곧 전 세계에서 어느 종교에 속하든 여러 기관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돌봄·교육·자선 사업입니다.

이런 활동을 수행하는 데에는 우선 회원들의 개인적인 노력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활동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많은 이들이 아낌없이 도와줍니다. 어떤 이들은 영적 동기로 협력합니다. 다른 이들은 사도직 목적에는 공감하지 않더라도 인종이나 종교, 이념에 따른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사회에 유익한 사업임을 알아봅니다2.

오푸스데이는 회원들이 정직하게 품고 있는 확신을 표현할 자유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로 돌아가 보면, 오푸스데이는 단체로서 세속적이든 영적이든 중요한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도덕적 의무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 최근 스페인의 종교 자유 법안을 지지한 것처럼, 자신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오푸스데이와 회원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상황이 있습니까?

오푸스데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함께 생각하고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교회가 모든 신자에게 가르치는 교리 외에 다른 교리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유한 것은 오푸스데이 특유의 정신뿐입니다. 곧 세상 안에서 자신을 성화하고 직업 활동으로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복음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식입니다.

여기에서 곧바로 모든 회원이 다른 가톨릭 신자들과 똑같이 자유롭게 의견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지닌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오푸스데이 자체는 고유한 의견을 표명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런 의견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교회가 명확한 교리를 정한 문제라면 각 회원의 의견도 그에 따를 것입니다. 반대로 교도권, 곧 교황과 주교들이 판단을 내리지 않은 문제라면, 각 회원은 자신이 가장 좋다고 여기는 의견을 자유롭게 지니고 옹호하며 그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분야에서 책임자들의 태도를 규정하는 원칙은 현세적 문제에서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는 소극적으로 관여를 피하는 태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각 회원에게 자신의 책임을 마주하게 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양심에 따라 그 책임을 받아들이도록 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당이나 정치 집단·성향, 또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과제와 사업을 이야기하면서 오푸스데이를 언급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부당하며 중상모략에 가깝습니다. 회원들이 공통된 어떤 이념이나 사고방식, 현세적 이해관계를 지닌다는 잘못된 결론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원들은 가톨릭 신자이며, 자신의 신앙에 일관되게 살려고 노력하는 가톨릭 신자들입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부르셔도 됩니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문화나 이념에서조차 하나의 집단을 이룬다는 뜻은 아니며,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의회 이후에만이 아니라 오푸스데이의 처음부터 열린 가톨릭 신앙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양심의 정당한 자유를 옹호하고,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을 형제적 사랑으로 대하며, 인류를 움직이는 여러 고귀한 열망에 동참하면서 모든 이와 협력하도록 이끄는 신앙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미국의 인종 문제에 직면하여, 각 회원은 모든 인간의 평등과 온갖 차별의 부당함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의 분명한 가르침을 고려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 주교들의 구체적인 지침도 알고 그 실천을 절실하게 느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고, 어떤 차별적 상황이나 계획에도 반대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른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 안에서 진실한 사랑과 사심 없는 봉사를 받아야 할 형제를 보아야 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것입니다.

오푸스데이가 회원들에게 주는 양성에서는, 그런 구체적인 문제가 없거나 덜 절박한 다른 나라보다 기자님의 나라에서 이러한 생각들을 더 강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푸스데이가 결코 하지 않을 일은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지시하거나, 심지어 제안하는 일입니다. 어느 법안을 지지할지, 어느 단체에 가입할지 아니면 아무 데도 가입하지 않을지, 특정 시위에 참여할지 말지는 회원 각자가 결정할 일입니다. 실제로 어디서나 회원들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다양성 속에서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회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최근 작성된 자국의 종교 자유 법안에 찬성한다는 사실도 이와 같은 기준으로 설명됩니다. 그것은 분명 개인적 선택이며, 법안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오푸스데이의 정신에서 자유를 사랑하고 모든 신앙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푸스데이는 성좌의 허가를 받아 1950년부터 비가톨릭 신자와 비그리스도인을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협력자로 받아들인 최초의 가톨릭 단체입니다.

이 점이 분명해졌으니 여쭙고 싶습니다. 회원들이 받는 영적 양성에는 어떤 특징이 있어서, 오푸스데이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어떠한 현세적 이해관계도 배제될 수 있습니까?

순전히 영적인 것이 아닌 모든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배제됩니다. 오푸스데이는 이탈과 희생, 자기 포기, 영혼을 섬기기 위한 쉼 없는 노동 등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세적 이익의 차원에서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영적 삶의 차원에서는 많은 것을 줍니다. 수덕적 투쟁에서 싸우고 승리할 수단을 주고, 기도의 길로 이끌며, 예수님을 형제처럼 대하고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을 뵙는 법을 가르칩니다. 또한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이며, 따라서 그분의 가르침을 전할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도록 가르칩니다.

내적 생활의 길에서 나아가 온전히 자신을 내어 주고 자신의 삶을 주님을 섬기는 데 바치는 것이 가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푸스데이에서 항구할 수 없습니다. 성덕은 이름표가 아니라 깊은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푸스데이에는 정치적·경제적·이념적 목적을 위한 활동이 없으며, 어떤 현세적 활동도 없습니다. 오직 회원들의 초자연적 양성과 사도직 활동만이 있습니다. 곧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끊임없이 영적으로 돌보는 일과, 돌봄·자선·교육 등의 단체 사도직 활동입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은 오직 분명하게 정해진 성덕의 길을 따르고 특정한 사도직 활동에 협력하기 위해 결합되어 있습니다. 서로 간의 약속은 모든 현세적 이해관계를 배제합니다. 이 영역에서 모든 회원은 자유롭고, 따라서 각자 서로 다르며 때로는 상반되기도 하는 목적과 관심사를 가지고 자기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오푸스데이의 목적은 오직 하느님을 향하므로, 그 정신은 자유의 정신, 모든 사람의 개인적 자유를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그 사랑은 단순한 이론적 선언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므로, 우리는 자유의 필연적 결과인 다원성을 사랑합니다. 오푸스데이에서는 다원성을 단순히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고 사랑하며, 결코 가로막지 않습니다. 정치·경제·사회·예술 등의 문제에서 회원들 가운데 수많은 다양한 생각과 서로 다른 태도가 있는 것을 보면 저는 기쁩니다. 모든 일이 하느님 앞에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광신과 불관용이 지배하지 않고, 무엇보다 신앙으로 살아가며, 우리 인간이 단순한 호감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성령의 활동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안다면 영적 일치와 현세적 다양성은 양립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제로 삼으시어 하느님 아버지께로 이끄십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일치, 교도권과 교회 전통에 대한 충실함, 그리스도의 구원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는 관심이, 흔히 말하듯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논의에 맡겨 두신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태도와 상충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 다양성이 하느님 계획의 일부이며, 당신 뜻대로 선물과 빛을 나누어 주시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임을 충분히 의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며, 따라서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존중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과 온전한 형제애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회원들은 바로 이 정신에 따라 양성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회원이라는 사실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얻거나 다른 이들에게 정치적·문화적 선택을 강요하려는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회원들이 이를 용인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거나 오푸스데이를 떠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에서 누구도 조금의 일탈조차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점입니다. 자신의 개인적 자유뿐 아니라 자신이 헌신한 활동의 초자연적 본질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하느님의 일인 오푸스데이의 초자연적 목적을 가장 잘 보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가족의 일치가 큰 가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오푸스데이에서는 왜 남편과 아내가 함께 참여하는 영적 양성 활동을 마련하지 않습니까?

이 문제에서도 다른 많은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선호나 의견에 따라 여러 방안 가운데 선택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하나의 방식만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 생활 안에 마치 일당 체제를 수정하고 확대한 새 판본을 들여오는 듯한 사목 방식, 더 넓게는 그런 사도직 접근 방식은 전염병처럼 피해야 합니다.

부부를 위한 피정과 다른 양성 활동을 마련하는 가톨릭 단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유를 행사하여 적절하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활동에서 자신의 그리스도인 소명을 더 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 역시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최선이라는 것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교회 생활에는 부부가, 나아가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고 때로는 함께해야 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성찬의 희생 제사와 다른 예배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영적 양성을 위한 어떤 활동은 남편과 아내가 따로 참여할 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화와 수덕적 투쟁, 하느님과의 일치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라는 특성이 그렇게 강조됩니다. 이는 나중에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양심은 다른 누군가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할 때 각자의 개인적 요구와 필요, 나아가 각자의 심리에도 양성을 맞추기가 더 쉽습니다. 그렇다고 그 활동에서 참가자들이 혼인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푸스데이의 정신에서 그보다 더 거리가 먼 일은 없습니다.

저는 이미 40년 동안 말과 글로, 모든 남성과 모든 여성은 일상생활 안에서, 자기 일상의 구체적인 여건 안에서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따라서 부부는 가정의 의무를 완전하게 이행하며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오푸스데이가 마련하고 기혼자들도 참여하는 피정과 그 밖의 양성 수단에서는 언제나 부부가 혼인 소명의 존엄을 깨닫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 소명을 더 잘 살아가도록 준비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부부 사랑이 요구하는 것과 실제로 드러나는 모습은 여러 면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다릅니다. 각자에게 맞는 양성 수단을 통해 자신의 실제 삶에서 이를 발견하도록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떨어져 있는 것이 나머지 시간 내내 더 깊이 일치하고 더 많이, 더 잘 서로 사랑하도록 해 줍니다. 존중으로도 가득 찬 사랑으로 말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문제에서도 저희 방식만이 유일하게 좋은 방식이라거나 모든 사람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좋은 결실을 맺고 있고, 오랜 경험 외에도 그렇게 할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말씀드릴 것은, 오푸스데이에서 영적 양성을 위한 특정 활동에는 이런 기준을 따르지만, 매우 다양한 다른 종류의 활동에는 부부가 부부로서 함께 참여하고 협력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오푸스데이 회원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부모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들 수 있습니다. 오푸스데이가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부모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하는 모임과 강연, 삼일 기도 등도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활동의 성격상 부부의 참여가 필요할 때에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그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모임과 활동은 개인의 영적 양성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는 활동과는 다릅니다.

한편 부모는 마음을 젊게 유지하려고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의 고귀한 열망은 물론, 심지어 엉뚱한 모습까지도 더 쉽게 호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삶은 변하며, 우리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예전의 것들보다 더 낫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른 생활 방식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적지 않은 경우 조금만 거리를 두고 유머 감각을 발휘하면 넘길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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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하게 사도적 성격을 지닌 이 단체 활동들은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이 방금 설명했듯이 자치단의 회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진합니다. 교리적·영적 지도의 책임만을 맡는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은 이 사업들의 소유 주체인 기업이나 관련 동산 및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이 활동에서 일하는 오푸스데이 신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 아래 해당 국가의 법을 온전히 준수하며 일하고, 다른 시민들의 비슷한 활동과 동일한 인정을 당국으로부터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