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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과의 대화»에 세계 → 인간 활동의 정상에 계신 그리스도 항이 있음.

이러한 자각은 교회를 모든 신자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더 깊이 바라보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같은 사명에 함께 책임을 지며, 각자 자신의 형편에 따라 이를 수행해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힘입어 자신들이 교회이며, 하느님께서 바라신 고유하고 숭고하며 필요한 사명을 지녔다는 것을 점점 더 깊이 의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사명은 반드시 교계의 위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바로 그 신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교계와 일치하고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 그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가톨릭 신자에게 주교단과 그 으뜸이신 로마 교황과의 일치 없이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평신도들이 교회의 성덕과 사도직에 기여하는 고유한 방식은 현세의 구조 안에서 자유롭고 책임 있게 행동하며 그 안에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누룩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적 삶의 증언, 하느님의 이름으로 빛을 비추는 말, 공동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며 다른 이들을 섬기는 책임 있는 행동은 모두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 받은 사명을 수행하는 현존의 표현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바로 오푸스데이가 설립된 날부터, 저는 요한 성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상해 왔으며 다른 이들도 묵상하도록 이끌어 왔습니다. Et ego, si exaltatus fuero a terra, omnia traham ad meipsum (Ioan 12, 32).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당신께 이끄십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한가운데에서 일하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모든 인간 활동의 정점에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평신도들의 이런 자각과 더불어 목자들의 감수성에도 비슷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목자들은 평신도 성소의 고유성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게 베푸시는 성덕과 사도직의 은사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사목을 통해, 이 성소를 북돋우고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사목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제 생각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들을 식별하는 초자연적 은사와 하느님의 일에 대한 감수성,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영혼들 안에서 일으키시는 것을 섬기는 겸손이 요구됩니다. 한마디로 하느님 자녀들의 정당한 자유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 매우 다르지만 모두 똑같이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담긴 이런 하느님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고, 그릇된 효율성의 논리에 이끌려 그리스도인들에게 획일성을 강요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의 뿌리에는 정당할 뿐 아니라 칭찬받을 만한 바람이 있습니다. 곧 교회가 현대 세계의 마음을 움직이는 증언을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길이 잘못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교계를 현세적 문제에 끌어들여 과거 수 세기의 성직주의와 형태만 다를 뿐 똑같이 해로운 성직주의에 빠지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신도들, 곧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떼어 내어 그 세상 밖에서 만들어진 결정이나 생각의 대변인으로 만들까 크게 염려합니다.

저는 우리 사제들에게 유행의 중심에 서지 않는 법을 배우고, 참으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 되는 겸손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세례자의 외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 (Ioan 3, 30). 곧 그리스도께서는 커지셔야 하고 저는 작아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평범한 그리스도인들, 곧 평신도들이 사회의 모든 환경 안에 그리스도를 현존하게 해야 합니다. 교리를 가르치고, 복음이 개인과 사회에 요구하는 바를 깊이 이해하도록 도우며,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도록 이끄는 사명은 언제나 사제의 근본적인 과제 가운데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제 활동은 양심의 정당한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마다 하느님께 자유롭게 응답해야 합니다. 더욱이 모든 가톨릭 신자는 사제의 이런 도움과 더불어 하느님께 직접 받는 빛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고유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신분의 은총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면 성직자가 언제나 말하거나 앞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과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하느님 성소의 존엄성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은 집단으로 행동하지 않고, 각자의 자유와 책임에 따라 개인으로서 활동합니다. 따라서 오푸스데이는 폐쇄적인 조직도 아니며, 어떤 식으로든 회원들을 모아 다른 사람들에게서 고립시키는 조직도 아닙니다. 오푸스데이가 지도하는 유일한 활동인 단체 차원의 활동1은 사회적·문화적·종교적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회원들 역시 바로 세상 안에서 성화되어야 하므로, 일과 시민 생활 참여를 통해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과 늘 협력합니다.

그리스도교적 물질주의

육신의 부활을 믿는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유물론이라고 판단되는 위험을 가지고도 항상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것을 거부하는 관념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영적인 것에 닫힌 유물론에 뚜렷하게 반대되는 "그리스도교적 유물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의 발자국이라고 일컫던 일곱 성사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삶에 이르게 하고 천국에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이 길을 택하셨음을 보여 주는 가장 명백한 표징이 아니겠습니까? 하나하나의 성사가 물질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창조와 구원의 힘을 가진, 하느님의 사랑인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다가오는 성체성사가, 초라한 이 세상의 물질(빵과 포도주)을 통하여, 최근의 공의회가 상기했다시피 “인간의 손으로 가꾼 자연 요소들”(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38항 참조)을 통하여 봉헌되어 우리 구원자의 경애하올 몸과 피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수 없이 많은 세상의 일들을 이 진리의 빛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활동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당뿐 만이 아니라 이 모든 세상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사랑하고, 지적으로 직업적으로 적절하게 되려 노력합니다. 그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개인의 식견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결정들은, 작든 크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려고 매우 겸손되이 노력하는 개인의 성찰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