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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과의 대화»에 세계 → 그리스도인의 자유 항이 있음.

어떤 길을 통해 실현되든 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한 특징은 ‘하느님 자녀의 존엄과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가르침 전반에서 그토록 끊임없이 평신도의 자유를 옹호하실 때 무엇을 뜻하십니까?

바로 평신도들이 교도권이 제시한 원칙에 비추어 모든 구체적인 이론적·실천적 결정을 내릴 개인의 자유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철학과 경제학, 정치에 관한 여러 의견, 예술과 문화의 흐름, 자신의 직업적·사회적 삶의 문제 등에 관하여, 각자가 양심상 가장 적절하고 자신의 확신과 인간적 능력에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하는 결정을 내리는 자유입니다.

가톨릭 평신도가 다른 평신도 시민들에 비해 권리가 축소되지 않고 현세의 현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고유한 사도직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이 자율성의 영역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는 우리 모두는 언제나 이를 세심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교계 직무의 고유한 목적을 넘어서는 목적에 평신도를 도구로 삼으려 한다면, 시대착오적이고 유감스러운 성직주의에 빠질 것입니다. 평신도를 영원한 미성숙 상태에 가두어 그들의 사도직 가능성을 크게 제한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특히 오늘날에는 교회 안의 권위와 일치라는 개념 자체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논의에 맡기신 일들에 관하여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도 참된 판단과 의견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느님 백성의 교계적 질서와 필요한 일치에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굳건히 하고 변질될 가능성에서 지켜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회원들이 사회의 매우 다양한 계층에 속해 있고, 그중 일부는 상당히 중요한 기업이나 집단에서 일하거나 이를 이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푸스데이가 어떤 정치적·경제적 등의 방향에 따라 그 활동들을 조정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푸스데이는 정치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이념적 성향이나 집단, 체제와도 전혀 무관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 목적은 오로지 영적이고 사도적입니다. 회원들에게는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복음의 이상에 자신의 삶을 맞추려고 노력할 것만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현세적 문제에는 어떤 방식으로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회원들이 결합하는 오로지 영적인 목적과, 회원들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자신의 책임 아래 일하는 경제·정치·문화·예술·철학 등 매우 광범위한 인간 활동의 영역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모든 회원은 오푸스데이를 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개인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따라서 그중 누가 정치적 문제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며 다른 회원들에게 압력을 넣거나 인간적 이익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려 한다면, 다른 회원들이 반발하여 즉시 그를 제명할 것입니다.

회원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오푸스데이의 삶 자체를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도 오푸스데이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푸스데이가 정치나 인간 활동의 어떤 다른 분야에 간섭하는 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오푸스데이에 맞설 사람은 저일 것입니다.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는 결코 자신이 교회를 대표해서 성당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믿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적 결정”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성직주의’이고 잘못된 "공식적인 가톨릭"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름을 붙이건 좌우간, 사실의 본성에 왜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올바른 "평신도 정신"을 전해야 합니다. 이 정신은 세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 매우 정직해짐으로써 각자의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둘째, 충분히 ‘그리스도교적’이 되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 교우들을 존중하게 됩니다. 셋째, 충분히 ‘가톨릭적’이 되어, 인간적 갈등에 어머니이신 교회를 이용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된 자유, 교회가 기꺼이 인정하는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다면 결코 일상생활을 성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생활에 본질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는 자유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책임 있는 자유

제 영적 자녀들은 다른 시민들과 결코 다를 게 없습니다. 이에 반하여, 같은 믿음을 제외하면 수도자들과는 같은 점이 없습니다. 저는 수도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사도직, 그들의 수도 생활, 세속을 외면하여 (contemptus mundi) 세속을 떠난, 그들의 삶을 존경하며 그들이 거룩한 성교회의 거룩함의 또 다른 표지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님께 받은 성소는 수도자의 성소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수도 성소를 원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권위자도 저를 억지로 결혼하게 할 수 없듯이 어떤 권위자도 저에게 수도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재속 사제입니다. 이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