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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을 통해 실현되든 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한 특징은 ‘하느님 자녀의 존엄과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가르침 전반에서 그토록 끊임없이 평신도의 자유를 옹호하실 때 무엇을 뜻하십니까?
바로 평신도들이 교도권이 제시한 원칙에 비추어 모든 구체적인 이론적·실천적 결정을 내릴 개인의 자유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철학과 경제학, 정치에 관한 여러 의견, 예술과 문화의 흐름, 자신의 직업적·사회적 삶의 문제 등에 관하여, 각자가 양심상 가장 적절하고 자신의 확신과 인간적 능력에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하는 결정을 내리는 자유입니다.
가톨릭 평신도가 다른 평신도 시민들에 비해 권리가 축소되지 않고 현세의 현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고유한 사도직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이 자율성의 영역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는 우리 모두는 언제나 이를 세심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교계 직무의 고유한 목적을 넘어서는 목적에 평신도를 도구로 삼으려 한다면, 시대착오적이고 유감스러운 성직주의에 빠질 것입니다. 평신도를 영원한 미성숙 상태에 가두어 그들의 사도직 가능성을 크게 제한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특히 오늘날에는 교회 안의 권위와 일치라는 개념 자체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논의에 맡기신 일들에 관하여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도 참된 판단과 의견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느님 백성의 교계적 질서와 필요한 일치에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굳건히 하고 변질될 가능성에서 지켜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단체로서 오푸스데이가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과 회원들이 개인으로서 각자의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학교나 피정의 집 같은 사업은 단체가 수행하고, 출판사나 상업 기업은 개인이 수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오푸스데이의 주된 활동은 회원들과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상 한가운데에서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적 수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을 알게 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일을 잘 해내도록 이끄는 정신을 전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과 함께 살고 모든 사람의 정당한 자유를 존중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정의롭게 만들면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회원 각자는 오푸스데이에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직업, 오푸스데이 회원이 아니더라도 종사했을 직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사회에 봉사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광부이고, 다른 이들은 학교나 대학에서 가르치며, 또 다른 이들은 상인, 가정주부, 비서, 농민입니다. 고귀한 인간 활동 가운데 회원이 종사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회원이 되기 전에 출판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던 사람은 그 후에도 같은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나 다른 일을 하다가 새 직장을 구하거나 같은 직업의 동료들과 어떤 회사를 세우기로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자유롭게 결정할 일이며, 일의 결과도 자신이 직접 받아들이고 그 책임도 개인적으로 져야 합니다.
오푸스데이 책임자들의 모든 활동은 회원들의 직업적 자유를 극진히 존중하는 데 기초합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의 존립 자체가 달린 지극히 중요한 점이므로 절대적인 충실함으로 지킵니다. 각 회원은 오푸스데이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일했을 분야에서 직업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푸스데이 자체나 다른 어떤 회원도 그 특정 회원의 직업 활동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회원들이 오푸스데이에 결합되면서 약속하는 것은 일을 기회와 수단으로 삼아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이 지녀야 할 인류에 대한 봉사의 성격을 더 분명히 의식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푸스데이의 주된 사명은 회원들과 그런 양성을 받기 원하는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교적 양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가 겪는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려는 바람,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이상이 그 해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푸스데이 자체가 단체로서 일부 활동과 사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 분야의 기준은, 오로지 영적인 목적을 지닌 오푸스데이가 명백하고 직접적으로 그리스도교적 봉사이자 사도직이 되는 활동만 단체로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푸스데이 자체가 탄광에서 석탄을 캐거나 어떤 종류의 경제 기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그 단체 활동은 모두 직접적인 사도직 활동입니다. 농민 교육 학교, 낙후된 지역이나 나라의 진료소, 여성의 사회적 발전을 위한 학교 등이 있습니다. 곧 전 세계에서 어느 종교에 속하든 여러 기관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돌봄·교육·자선 사업입니다.
이런 활동을 수행하는 데에는 우선 회원들의 개인적인 노력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활동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많은 이들이 아낌없이 도와줍니다. 어떤 이들은 영적 동기로 협력합니다. 다른 이들은 사도직 목적에는 공감하지 않더라도 인종이나 종교, 이념에 따른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사회에 유익한 사업임을 알아봅니다2.
공적 생활과 정치에서 여성의 참여를 언급하셨습니다. 현재 스페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여성이 수행해야 할 고유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생활 전반에 여성이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전적으로 긍정적인 현상이며, 앞서 말씀드린 더 폭넓은 현상의 한 부분입니다. 현대의 민주 사회는 여성이 정치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인정하고, 원하는 모든 여성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유리한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공적인 일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헌신하려는 여성은 공동체 안에서 책임감 있게 긍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충분히 준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전문 직업은 사전 교육을 요구하며, 그 뒤에도 준비한 역량을 향상하고 새롭게 생기는 상황에 맞추어 나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합니다. 이는 사회의 지도적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들에게 특히 중대한 의무입니다. 그들은 모든 이의 복지가 달린 매우 중요한 봉사를 하도록 부름받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준비된 여성에게는 모든 수준에서 공적 생활의 모든 분야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특정한 과제를 따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분야에서 여성의 고유함은 과제나 직책보다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여성으로서 찾아내는 섬세한 차이에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문제 자체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방식에도 있습니다.
여성은 자신에게 고유한 타고난 재능을 통해 시민 생활을 크게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가정법이나 사회 관련 입법이라는 광대한 분야를 바라보면 이 점은 분명합니다. 여성의 자질은 가정생활과 교육 환경, 젊은이들의 앞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조치를 취할 때, 참된 인간적 가치와 그리스도교적 가치가 존중되도록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 줄 것입니다.
방금 사회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때 그리스도교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여기서는 그 가치가 공적 생활 전체에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싶습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정치 활동에 종사할 때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은 참된 사도직을, 곧 사회 전체를 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봉사를 수행할 책임을 부여합니다. 공적 생활에서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교회를 대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더구나 개인의 출세나 정당의 이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라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이 모든 현세적인 문제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고, 언제나 자신이 고백하는 신앙에 일치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는 결코 자신이 교회를 대표해서 성당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믿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적 결정”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성직주의’이고 잘못된 "공식적인 가톨릭"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름을 붙이건 좌우간, 사실의 본성에 왜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올바른 "평신도 정신"을 전해야 합니다. 이 정신은 세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 매우 정직해짐으로써 각자의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둘째, 충분히 ‘그리스도교적’이 되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 교우들을 존중하게 됩니다. 셋째, 충분히 ‘가톨릭적’이 되어, 인간적 갈등에 어머니이신 교회를 이용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된 자유, 교회가 기꺼이 인정하는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다면 결코 일상생활을 성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생활에 본질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는 자유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책임 있는 자유
제 영적 자녀들은 다른 시민들과 결코 다를 게 없습니다. 이에 반하여, 같은 믿음을 제외하면 수도자들과는 같은 점이 없습니다. 저는 수도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사도직, 그들의 수도 생활, 세속을 외면하여 (contemptus mundi) 세속을 떠난, 그들의 삶을 존경하며 그들이 거룩한 성교회의 거룩함의 또 다른 표지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님께 받은 성소는 수도자의 성소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수도 성소를 원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권위자도 저를 억지로 결혼하게 할 수 없듯이 어떤 권위자도 저에게 수도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재속 사제입니다. 이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입니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conversaciones/5122/ (202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