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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착한 남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거의… 착한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충분히 착하지 않다. 우리는 ‘혁명적’이어야 한다.
쾌락주의, 그리고 쏟아지듯 권유하는 세속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 짐에 맞서 그리스도께서는 반순응주의자, 사랑의 반란군을 원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들이 가능한 한 빨리 하느님을 잃어버리도록 하고, 그런 다음에는 세상을 잃어버리게 한다…. 그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세상을 착취하는 것이다!
그대도 이런 이중 사기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루 종일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것에 불안해한다. 밤에는 잠이라는 유일한 탈출구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신체적 강박관념을 가지고 잔다. 아침에는 또 다른 하루를 앞두고 있다는 적대적이고 절망스러운 인상으로 깨어난다.
많은 사람이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행복에 이르도록 이 세상에 내셨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 자녀의 기쁨으로 이 세상을 걷는 사람만이 그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대는 그리스도인인 시민의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다음의 차이를 보여라. 슬프게 사는 것과 기쁘게 사는 것, 소심한 것과 담대한 것, 조심스러운 이중적 행동—위선!—과 성실하고 온전한 행동의 차이. 한마디로 세상적으로 사는 것과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차이.
그대가 경계해야 할 근본적 오류가 있다. 그대의 시대나 환경의 고상하고 정당한 관습과 요구를 그리스도교 도덕 가르침의 성덕에 합당하게 정리하고 맞출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고상하고 정당한 것들이라고 명시했음을 주목하라. 그 외의 관습은 시민권의 자격이 없다.
물질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이며 신앙이 없는 이 세상의 압력과 영향에 맞서, ‘그들’처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을 자유를 어떻게 요구하고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하느님의 자녀는 그 자유를 요청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단번에 그 자유를 얻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환경에서도 그 자유를 지키고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우리 자유가 환경에 얽매이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804/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