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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밭고랑»에 야망 → 선한 야망과 악한 야망 항이 있음.
그대는 이도 저도 —악함도 선함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다리로 절뚝거리며 길을 잘못 들고, 그대 삶은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In medio virtus.” 덕은 중용에 있다는 금언은 우리를 극단주의와 거리 두게 한다. 하지만 이 충고를 그대의 안위, 교활함, 미지근함, 뻔뻔스러움, 메마른 이상, 순응을 덮기 위한 완곡어로 바꾸는 오류에 빠지지 말라.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라.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2
정상에 도달하는 길은 두 가지다. 그리스도교적인 길은 남을 섬기기 위해 숭고하고 당당한 노력으로 올라가고, 이교도적인 길은 이웃을 침몰시키는 낮고 천한 노력으로 올라간다.
사소하고 초라한 개인 야망을 품은 ‘야심가’들은 하느님의 벗들이 ‘뭔가’를 ‘야망’ 없이, 남을 섬기기 위해 추구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3017/ (202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