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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영혼의 기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인간적인 열정을 빼앗아 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피곤함을 느끼고 비관론이 영혼을 마비시키려는 것처럼 보이며 우리를 눈 멀게 하고 오로지 그림의 그림자만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진정성을 가지고 말하고 어린 아이처럼 손에 이끌려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신뢰 형제애가 넘치는 정기적인 대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해성사의 목적이며, 여러분은 좋은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제와 함께 할 수 있을 때마다 고해성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 곧 빛이 그림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림 액자의 그림자만 보였는데 돌아온 빛 덕분에 그림자 속에 비춰진 액자의 형태도 우리 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속에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에 머무는 이는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이신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신뢰하네.” 그분께서 새잡이의 그물에서 위험한 흑사병에서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그분의 진실은 큰 방패와 갑옷이라네.” (시편 91,1-4).

저는 복되신 성모님과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성 요셉 주님의 전구를 통해 예수님께 저를 이해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언제라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멈추고 손을 펴고 사소한 불신앙에 동의하는 것은 배신이 될 것입니다. 불충실한 사람들이 너무 많을 때 우리는 사랑의 헌신에 더욱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때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던 다른 동기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심만 남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충성! 신실함! 좋은 사람이 됩시다! 크든 작든, 적든 많든. 우리는 때때로 싸우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싸우고 싶습니다. 약해지는 순간이 오면 영혼을 활짝 열고 부드럽게 몸을 맡기세요. 오늘은 두 계단, 내일은 네 계단… 다음 날에는 힘을 다해서 아무것도 오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원하고 싶습니다. 자녀들이여, 그 자체가 이미 싸움입니다.

자신의 약속을 일관되게 지키고, 믿음에 있어 온전하고, 행동에 있어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위선자가 되지 말고 저리 가라고,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제 고향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는 합당한 직분을 수행하거나, 아니면 그 일하는 자리를 폐지하라.

우리의 초자연적인 임무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을 주셨고 우리에게 온전한 마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마음을 주는 척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 자녀들 중 누구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묵상하지 않으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고 교회와 오푸스데이에 많은 해를 끼칠 것이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내 영혼의 자녀들이여, 주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모든 종류의 불행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그가 내 이름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시편 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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