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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을 통해 실현되든 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한 특징은 ‘하느님 자녀의 존엄과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가르침 전반에서 그토록 끊임없이 평신도의 자유를 옹호하실 때 무엇을 뜻하십니까?
바로 평신도들이 교도권이 제시한 원칙에 비추어 모든 구체적인 이론적·실천적 결정을 내릴 개인의 자유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철학과 경제학, 정치에 관한 여러 의견, 예술과 문화의 흐름, 자신의 직업적·사회적 삶의 문제 등에 관하여, 각자가 양심상 가장 적절하고 자신의 확신과 인간적 능력에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하는 결정을 내리는 자유입니다.
가톨릭 평신도가 다른 평신도 시민들에 비해 권리가 축소되지 않고 현세의 현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고유한 사도직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이 자율성의 영역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는 우리 모두는 언제나 이를 세심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교계 직무의 고유한 목적을 넘어서는 목적에 평신도를 도구로 삼으려 한다면, 시대착오적이고 유감스러운 성직주의에 빠질 것입니다. 평신도를 영원한 미성숙 상태에 가두어 그들의 사도직 가능성을 크게 제한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특히 오늘날에는 교회 안의 권위와 일치라는 개념 자체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논의에 맡기신 일들에 관하여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도 참된 판단과 의견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느님 백성의 교계적 질서와 필요한 일치에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굳건히 하고 변질될 가능성에서 지켜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푸스데이의 일부 회원들이 스페인의 공적 생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페인의 오푸스데이를 어느 정도 정치화한 것은 아닙니까?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오푸스데이와 교회 자체를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하지는 않습니까?
스페인에서도,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푸스데이의 모든 회원은 완전한 자유와 개인적 책임 아래 활동하며, 교회나 오푸스데이를 그 활동에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개인적인 활동을 하는 데 교회나 오푸스데이에 기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직과 영적 생활을 군대식으로 이해하도록 배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롭고 개인적인 활동을 집단행동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1928년부터 지치지 않고 거듭 말해 왔듯이, 현세적인 문제나 자유로운 논의가 허용되는 신학 문제에서 의견과 행동이 다양한 것은 오푸스데이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립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 사이에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늘 있을 다양성은 오히려 올바른 정신과 깨끗한 삶, 각자의 정당한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스페인의 오푸스데이에 경제적 또는 정치적 성향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한 성향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오푸스데이는 스페인에서도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제적·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회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나 개인의 자유를 옹호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살아가고 일할 권리, 병들었을 때나 노년에 돌봄을 받을 권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을 권리, 자녀 각자의 재능에 맞게 교육할 권리,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마땅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옹호합니다.
그러나 오푸스데이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길도 회원들에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회원 각자는 이 분야에서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완전한 자유를 지닙니다. 현세적인 모든 일에서 회원들은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정치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 성향의 사람들이 오푸스데이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사제로서 제 사명은 오로지 영적인 것입니다. 더욱이 제가 설령 현세적 문제에 관한 의견을 말한다 해도, 회원들에게는 그것을 따를 의무가 조금도 없습니다.
오푸스데이 책임자들은 다른 회원들에게 정치적 견해나 직업에 관한 판단을 결코 강요할 수 없습니다. 어느 회원이 그런 일을 하거나 인간적 목적을 위해 다른 회원들을 이용하려 한다면, 다른 회원들이 정당하게 반발할 것이므로 그는 가차 없이 제명될 것입니다.
저는 어느 회원에게도 어느 정당에 속하는지, 어떤 정치 사상을 지지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정당한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오푸스데이 책임자들도 똑같이 행동합니다.
그렇지만 스페인에서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오푸스데이 회원들 사이에 실제로 매우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으며, 이에 반대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내리는 현세적 선택을 언제나 존중하듯, 그 모든 의견을 존중합니다. 이러한 다원성은 오푸스데이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정당한 자유를 분명히 드러내는 올바른 정신의 표현입니다.
공적 생활과 정치에서 여성의 참여를 언급하셨습니다. 현재 스페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여성이 수행해야 할 고유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생활 전반에 여성이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전적으로 긍정적인 현상이며, 앞서 말씀드린 더 폭넓은 현상의 한 부분입니다. 현대의 민주 사회는 여성이 정치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인정하고, 원하는 모든 여성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유리한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공적인 일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헌신하려는 여성은 공동체 안에서 책임감 있게 긍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충분히 준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전문 직업은 사전 교육을 요구하며, 그 뒤에도 준비한 역량을 향상하고 새롭게 생기는 상황에 맞추어 나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합니다. 이는 사회의 지도적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들에게 특히 중대한 의무입니다. 그들은 모든 이의 복지가 달린 매우 중요한 봉사를 하도록 부름받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준비된 여성에게는 모든 수준에서 공적 생활의 모든 분야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특정한 과제를 따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분야에서 여성의 고유함은 과제나 직책보다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여성으로서 찾아내는 섬세한 차이에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문제 자체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방식에도 있습니다.
여성은 자신에게 고유한 타고난 재능을 통해 시민 생활을 크게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가정법이나 사회 관련 입법이라는 광대한 분야를 바라보면 이 점은 분명합니다. 여성의 자질은 가정생활과 교육 환경, 젊은이들의 앞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조치를 취할 때, 참된 인간적 가치와 그리스도교적 가치가 존중되도록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 줄 것입니다.
방금 사회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때 그리스도교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여기서는 그 가치가 공적 생활 전체에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싶습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정치 활동에 종사할 때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은 참된 사도직을, 곧 사회 전체를 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봉사를 수행할 책임을 부여합니다. 공적 생활에서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교회를 대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더구나 개인의 출세나 정당의 이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라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이 모든 현세적인 문제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고, 언제나 자신이 고백하는 신앙에 일치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지라는 뜻입니다.
방금 가족의 일치가 큰 가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오푸스데이에서는 왜 남편과 아내가 함께 참여하는 영적 양성 활동을 마련하지 않습니까?
이 문제에서도 다른 많은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선호나 의견에 따라 여러 방안 가운데 선택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하나의 방식만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 생활 안에 마치 일당 체제를 수정하고 확대한 새 판본을 들여오는 듯한 사목 방식, 더 넓게는 그런 사도직 접근 방식은 전염병처럼 피해야 합니다.
부부를 위한 피정과 다른 양성 활동을 마련하는 가톨릭 단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유를 행사하여 적절하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활동에서 자신의 그리스도인 소명을 더 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 역시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최선이라는 것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교회 생활에는 부부가, 나아가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고 때로는 함께해야 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성찬의 희생 제사와 다른 예배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영적 양성을 위한 어떤 활동은 남편과 아내가 따로 참여할 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화와 수덕적 투쟁, 하느님과의 일치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라는 특성이 그렇게 강조됩니다. 이는 나중에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양심은 다른 누군가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할 때 각자의 개인적 요구와 필요, 나아가 각자의 심리에도 양성을 맞추기가 더 쉽습니다. 그렇다고 그 활동에서 참가자들이 혼인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푸스데이의 정신에서 그보다 더 거리가 먼 일은 없습니다.
저는 이미 40년 동안 말과 글로, 모든 남성과 모든 여성은 일상생활 안에서, 자기 일상의 구체적인 여건 안에서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따라서 부부는 가정의 의무를 완전하게 이행하며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오푸스데이가 마련하고 기혼자들도 참여하는 피정과 그 밖의 양성 수단에서는 언제나 부부가 혼인 소명의 존엄을 깨닫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 소명을 더 잘 살아가도록 준비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부부 사랑이 요구하는 것과 실제로 드러나는 모습은 여러 면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다릅니다. 각자에게 맞는 양성 수단을 통해 자신의 실제 삶에서 이를 발견하도록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떨어져 있는 것이 나머지 시간 내내 더 깊이 일치하고 더 많이, 더 잘 서로 사랑하도록 해 줍니다. 존중으로도 가득 찬 사랑으로 말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문제에서도 저희 방식만이 유일하게 좋은 방식이라거나 모든 사람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좋은 결실을 맺고 있고, 오랜 경험 외에도 그렇게 할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말씀드릴 것은, 오푸스데이에서 영적 양성을 위한 특정 활동에는 이런 기준을 따르지만, 매우 다양한 다른 종류의 활동에는 부부가 부부로서 함께 참여하고 협력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오푸스데이 회원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부모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들 수 있습니다. 오푸스데이가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부모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하는 모임과 강연, 삼일 기도 등도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활동의 성격상 부부의 참여가 필요할 때에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그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모임과 활동은 개인의 영적 양성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는 활동과는 다릅니다.
한편 부모는 마음을 젊게 유지하려고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의 고귀한 열망은 물론, 심지어 엉뚱한 모습까지도 더 쉽게 호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삶은 변하며, 우리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예전의 것들보다 더 낫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른 생활 방식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적지 않은 경우 조금만 거리를 두고 유머 감각을 발휘하면 넘길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는 결코 자신이 교회를 대표해서 성당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믿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적 결정”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성직주의’이고 잘못된 "공식적인 가톨릭"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름을 붙이건 좌우간, 사실의 본성에 왜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올바른 "평신도 정신"을 전해야 합니다. 이 정신은 세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 매우 정직해짐으로써 각자의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둘째, 충분히 ‘그리스도교적’이 되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 교우들을 존중하게 됩니다. 셋째, 충분히 ‘가톨릭적’이 되어, 인간적 갈등에 어머니이신 교회를 이용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된 자유, 교회가 기꺼이 인정하는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다면 결코 일상생활을 성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생활에 본질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는 자유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책임 있는 자유
제 영적 자녀들은 다른 시민들과 결코 다를 게 없습니다. 이에 반하여, 같은 믿음을 제외하면 수도자들과는 같은 점이 없습니다. 저는 수도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사도직, 그들의 수도 생활, 세속을 외면하여 (contemptus mundi) 세속을 떠난, 그들의 삶을 존경하며 그들이 거룩한 성교회의 거룩함의 또 다른 표지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님께 받은 성소는 수도자의 성소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수도 성소를 원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권위자도 저를 억지로 결혼하게 할 수 없듯이 어떤 권위자도 저에게 수도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재속 사제입니다. 이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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