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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정신으로 이 세상의 비참함을 생각하고 그 광경을 그리스도와 사는 삶의 풍요로움과 대조해 보면,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에 어울리는 단어는 내 생각에 단 하나뿐이다. 어리석음, 어리석음, 어리석음이다.
대부분 우리 인간은 실수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나쁜 것인 그야말로 멍청한 것이다.
그대가 건물을 지탱하는 초석처럼 숨어있으려 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대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된다면… 그건 악랄한 것이다!
떠들지만 실천하지 않는 나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분개하지 말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1 그대에게는 그대의 행실대로, 내게는 나의 행실대로 말이다.
그대와 내가 잘 행동하기로 작정한다면, 우선 두 명의 악당이 세상에 줄어들 것이다.
천박함과 맞서 싸우지 않는 한, 그대 머리는 고물상과 같을 것이다. 유토피아, 환상, 그리고 쓸모없는 고물만 보관할 것이다.
그대가 가진 태연스러움을 초자연적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그대는 대단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대가 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는, 그대는 대단히 뻔뻔한 사람에 지나지 않다.
모든 것을 가볍게 취급하는 그대는 그 옛날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자가 온다!’ 하고 사람들이 외쳤다. 그에 순진한 박물학자가 대답했다. ‘그래서요? 나는 나비를 잡아요!’”
끔찍한 사람: 무지 한데다 지칠 줄 모르는 일꾼. 나이가 들어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잃지 말라.
천박하고 이기적인 사람의 변명. “나는 어떤 일에도 헌신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대는 이도 저도 —악함도 선함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다리로 절뚝거리며 길을 잘못 들고, 그대 삶은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In medio virtus.” 덕은 중용에 있다는 금언은 우리를 극단주의와 거리 두게 한다. 하지만 이 충고를 그대의 안위, 교활함, 미지근함, 뻔뻔스러움, 메마른 이상, 순응을 덮기 위한 완곡어로 바꾸는 오류에 빠지지 말라.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라.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2
그대는 결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다. 늘 부차적인 것에 머물러 있구나!
성경의 말씀을 반복하겠다. 그대는 “허공에 대고 말하기”3만 한다!
설교를 듣고 그 가르침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대신 “아무개를 위한 말 같다!”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말라.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270/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