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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딸과 아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정의에 반하는 엄청난 캠페인이 조장되어 양심에 평화가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의 평화 부족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 합니다. 사람들은 속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해방이 아닌 다른 해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산상 설교, 신성한 사랑의 시인 팔복 등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지상의 행복만을 추구합니다.
자녀 여러분, 영혼은 영원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지상에 머무릅니다. 환상을 갖지 마십시오. 고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여정의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고통이 없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실패할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괴로움을 악화시키는 데만 성공할 것입니다.
고통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이 노력하는 것은 자선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통이 축복과 선과 힘의 원천임을 감히 긍정해야 합니다. 고통은 하느님의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정화하고 영원한 행복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불입니다. 이야말로 천사가 예수님을 찾도록 우리에게 암시한 표징이 아닙니까?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루카 2,12).
주님께서 베들레헴과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들이셨듯이 우리가 고난, 하느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구원이 주권적인 뜻의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십자가는 무겁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십자가가 아니거나 적어도 예수님이 직접 지고 가셨기 때문에 무겁지 않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마태오 10,38).
하지만 오늘날 이 단어는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필리피 3,18).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리, 성사에 반대하는 끔찍한 캠페인을 조직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를 바꾸어 인간을 모든 것의 최고 정점으로 삼는 현세적 목적의 기관, 인간 중심적인 기관으로 축소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주님이 창조의 시작과 끝이자 중심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요한 1,1).
자녀들이여, 모든 피조물을 그리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1,3).
그리고 성육신하셔서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우리가 일시적이고 덧없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 이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배움으로써만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하느님 중심적이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콜로새 1,18-20).
우리의 마음과 행동뿐만 아니라, 사도적 열망과 일을 통해 모든 인간 활동의 가장 높은 곳에 그분을 모시도록 합시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en-dialogo-con-el-se%C3%B1or/101/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