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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나 무력하고 우리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나요?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사랑하라고 간청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까? 이러한 생각은 어리석은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다해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께서 우리 육신을 입기로 선택하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는 증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옷을 입으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참 하느님이시여, 참 사람이십니다.”

수년 전, 저는 침대 머리맡에 이런 글귀를 붙이고 싶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시다".

비록 지금은 영광스러운 몸이지만 그분도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셨다는 사실이 저를 감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죄를 제외한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을 겪으셨다는 사실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저는 그가 배고픔과 목마름, 시카르 우물가에서 정오에 더위를, 베들레헴의 밤에 추위를 겪으셨다는 것을 알고 감동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사도들처럼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목자들처럼, 서둘러 갑니다.

자녀 여러분, 우리는 길을 떠나 자신을 내어 주셨고 매일 제단에서 자신을 내어 주시는 우리 예수님을 본받아 갈보리의 신성한 희생을 영속시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히브리인 7,24).

그분의 사제적 중재는 제단 위에 계신 그리스도 자신인 사제들을 통해 실현됩니다. 거룩한 미사를 집전할 때 저는 어떤 집회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희생을 새롭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력하게 태어나신 베들레헴의 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그분이 더 무력하게 우리를 기다리시는 성막이라는 또 다른 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궁지에 몰리시고, 물리적으로 외면당하시고, 멸시당하시고, 학대당하시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습니까?

자녀 여러분, 제가 이미 다른 기회에 여러분에게 상기시켰던 것과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인들이 살아온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믿고 함께 구속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지성과 마음, 말과 팔을 활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무방비 상태의 그리스도님은 구속 또한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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