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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께서는 당신 땅을 어여삐 여기시어 야곱의 운명을 되돌리셨습니다.” (시편 85,2).

우리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유를 느낍니다. 모든 것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합니다. 오푸스데이의 길에서 우리는 고백성사와 형제적 대화로 실수를 막아주는 간판이 있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그들이 진실하다면 벙어리 악마가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 산책에는 매 순간마다 여행자를 안내하는 길에서 볼 수 있는 표지판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에 진실하다면 충실한 사람이 내면의 삶에서 길을 잃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영혼은 아가서의 빛으로 밝혀집니다.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아가 3,2).

저의 영혼의 평화를 구하는 길을 따라 세상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모든 국가와 모든 민족을 통해 달릴 것입니다. 외부의 것들에서 평화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려다 주고, 하나가 되게 하는 길이자 디딤돌입니다.

환난과 고난은 항상 크거나 작은 힘으로 다가옵니다. 그때 시편에서 우리에게 올바른 말씀을 들려줍니다.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해방하여 영예롭게 하리라.” (시편 91,15).

예수님, 당신의 십자가에 비하면 제 십자가는 얼마나 작습니까? 당신의 상처에 비하면 제 상처는 얼마나 얕은 자상입니까? 당신의 거대하고 순수하며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당신이 내 영혼에 지운 작은 십자가는 얼마나 가볍습니까?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해방하여 영예롭게 하리라.“ (아가 5,8).

우리는 세상에서 사랑의 귀족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갈망하고 그분의 눈물, 그분의 말씀, 그분의 미소, 그분의 얼굴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의 구절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시편 42,2).

평화.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신격화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에 피신합니다. 하느님의 사랑,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을 갈망합니다. 그러면 사도적 열정이 불타오르고 날마다 더 커집니다. 선은 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 기쁨과 평화를 심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열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구제의 물로 모든 영혼에게 물을 주고, 사랑을 위해 모든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슬픔도 고통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하느님의 소원이 기꺼이 성취되는 순간 고통은 사라집니다. 이것이 신경이 곤두서고 시련이 견딜 수 없을 것 같더라도 충실한 자녀들이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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