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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삶은 싸움이며 전쟁입니다. 평화의 전쟁이며, 언제나 ‘in gaudio et pace’, 기쁨과 평화 속에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오푸스데이의 사람이 된다면 그 평화와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한 신심을 지니고, 각자의 일에서 교양과 실력을 갖추며, 부지런히 일하고, 영적 생활에서는 운동선수처럼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경기장에서 달리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이는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모릅니까?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모든 일에서 철저히 절제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관을 기다립니다.”128
그래서 우리는 관상하는 영혼입니다. 하루의 첫 생각부터 밤의 마지막 생각까지, 끊임없는 대화로 언제나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며 사랑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두고, 그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그분께 나아가며, 그분을 통하여 성부와 성령께 나아갑니다.
어느 순간 불안과 걱정과 동요가 생기면, 주님께 다가가 아버지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그분 손에 자신을 맡긴다고 말씀드립시다. 이것은 믿음과 희망과 신뢰와 사랑을 담은 봉헌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 규범을 실천하는 이, 실천하려고 싸우는 이는,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젊을 때나 늙었을 때나, 햇살 아래에서나 폭풍 속에서나, 실천이 쉽거나 어렵거나 변함없이 그렇게 하는 제 자녀는, 끝까지 충실하다면 구원으로 예정된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거룩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을 그토록 사랑하십니다. ‘Deliciae meae esse cum filiis hominum’, 사람의 자녀들과 함께 있는 것이 나의 기쁨입니다.129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가 주님께 충실하지 못했더라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돌보고 계셨습니다.
자식이 사랑으로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동안 자식이 보인 냉담한 태도를 더는 마음에 두지 않듯,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마침내 뉘우치고 고해성사로 깨끗해져 사랑으로 다가가면 잘못한 일들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놀라운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평온을 잃지 않습니다. 확신을 갖고, 날마다 이어지는 이 싸움의 어떤 접전에서 길을 벗어났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큰 패배를 겪었다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약하여 길을 벗어날 수 있고, 실제로 벗어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느낍시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리라는 확신으로, 감사하며 그분께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듣고자 한다면 주님께서는 사랑이 가득한 아버지처럼 말씀하십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사람과 사건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드러내지 않으신 채 알맞은 은총을 주십니다. 시작할 때와 같은 열정으로 일을 마칠 수 있도록 필요한 힘, 인간적인 활력까지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구하고 신뢰에 차서 살아가며 어려움을 이겨 내게 하는 신화는 더 이상 교만의 외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겸손의 외침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결합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사랑의 표현입니다. 바로 우리의 비참함이 우리를 하느님께 피신하게 하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종이며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의 종으로서 우리는 사도행전의 이 말씀을 들으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날에는 내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도 예언하리라.”30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바오로 성인이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쓴 말씀을 기쁘게 묵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또 말합니다. 상속자는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린아이일 동안에는 종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정해 놓은 때까지 후견인과 관리인들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린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원소들 아래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자녀이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영을 여러분의 마음에 보내셨고,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라면 또한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31†††††††††††††
하느님 사랑. 하느님께 대한 신뢰
하느님의 자녀 됨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사하십시오. 요한 성인이 쓰듯이, 하느님께서 의로우심을 알고, 의롭게 살며 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참된 자녀라는 것 역시 알고 있기에 감사하십시오.32
저는 요한 성인과 함께 여러분에게 계속 권고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사랑을 베푸셨는지 보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고, 실제로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33 바오로 성인도 이 믿음을 확인해 줍니다. “만물이 존재하는 목적이시며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으로 이끄시면서, 그 자녀들의 구원의 창시자이며 본보기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수난과 죽음으로 완성하시고 제물로 바치신 것은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이들은 모두 한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곧 모두 인간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교회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미하겠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나는 그분께 온전히 신뢰를 두겠습니다.’ 하시고, 이어서 ‘보십시오, 저와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자녀들입니다.’ 하십니다.”34††††††††††††††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께 대한 신뢰를 잃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큰 부분을 잃는 것이며, 그러면 삶이 고되고 쓰라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은 “primogenitus in multis fratribus”35, 곧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이십니다. 또한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앗인 성화 은총이 그 사람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은총을 자기 안에서 내쫓지 않는 한,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구별됩니다.”36
그러므로 신뢰로 가득 차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이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이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37†††††††††††††††
1요한 2,29.
1요한 3,1–2.
히브 2,10–13.
† 성경 참조: 1요한 3,1–2; 히브 2,10–13; 1요한 2,29
로마 8,29.
1요한 3,9–10.
요한 3,16–17.
† 성경 참조: 요한 3,16–17; 로마 8,29; 1요한 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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