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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십자가가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십자가가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영광스러운 십자가이자 거룩한 인장이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참된 보증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늘 십자가를 지고 행복하게 간다.
그대들은 속 좁고 근시안적인 사람, 하느님 자녀들의 그리스도적 초자연적 지평을 포용할 수 없는 미성숙한 남녀가 되지 말라. 하느님과 담대함!
주님께서 변함없이 그대에게 보이는 부모의 다정함을 감사하라.
언제나 위대한 모험을 꿈꿔온 그대는 그대를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엄청난 사업에 헌신했다.
거듭 말한다. 사도직의 삶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라.
그대를 위해 한 편지에서 옮겨 쓴다. “저는 복음적 겸손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소심하고 의식 없는 움츠림에는 반발합니다. 그리스도교 윤리란 노예들의 윤리라고 쓴 그 무신론자는3 틀림없이 그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종이다. 하느님 자녀의 반열에 올라, 격정의 노예처럼 처신하고 싶어 하지 않는 종이다.
하느님의 자녀는 매우 인간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천박하고 무례할 정도로 변질되면 안 된다.
하느님의 자녀는 모든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구세주의 정의와 자비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계급주의자가 될 수 없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고 사도가 우리에게 썼을 때 이미 이것을 지적했고,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번역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인종, 하느님 자녀의 인종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대는 그리스도인인 시민의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다음의 차이를 보여라. 슬프게 사는 것과 기쁘게 사는 것, 소심한 것과 담대한 것, 조심스러운 이중적 행동—위선!—과 성실하고 온전한 행동의 차이. 한마디로 세상적으로 사는 것과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차이.
저 멀리서는 하늘과 땅이 지평선에서 서로 만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잊지 말라. 하늘과 땅이 실제로 만나는 곳은 하느님의 자녀인 그대의 마음이다.
사도는 이렇게 썼다.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4
이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주님 앞에서는 민족, 인종, 계급, 국가 간의 차이란 없다. 우리 각자는 새로운 피조물,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이며 형제애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침착하고 균형 잡힌 성격, 꺾이지 않는 의지, 깊은 신앙과 열렬한 신심. 하느님 자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특성들이다.
하느님의 자녀! 우리를 단지 서로를 참아주는 사람들보다 더 초월적 존재로 변화시켜 주는 조건.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 “Vos autem dixi amicos!”3 우리는 주님처럼 영웅적인 순간과 평범한 일상에서 서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주님의 친구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인 우리를 공격군으로 원하신다. 우리는 대기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임무는 전투에 임하는 군대처럼 어디에서든 싸우는 것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733/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