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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과의 대화»에 오푸스데이 → 개인 자유와 개인 책임 항이 있음.

몬시뇰께서는 오푸스데이의 실상을 말씀하시면서 ‘조직된 무조직’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이 표현의 의미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성령의 활동으로 이끌리는 개인의 사도적 자발성, 자유롭고 책임 있는 주도권에 우리가 최우선적이고 근본적인 중요성을 둔다는 뜻입니다. 통치 기구의 꼭대기에서 강요하는 조직 구조나 명령, 전술과 계획에 중요성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최소한의 조직은 있습니다. 로마에 본부를 두고 언제나 합의제로 운영되는 중앙 통치 기구와, 역시 합의제로 운영되며 각기 지도신부가 주재하는 지구 통치 기구들이 있습니다2. 그러나 이 기구들의 모든 활동은 근본적으로 한 가지 과제를 향합니다. 회원들의 신심 생활에 필요한 영적 도움과 적절한 영적·종교 교리적·인간적 양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오리들이여, 물로 들어가라!’ 하는 셈입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인간의 모든 길을 성화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길에는 하느님께서 지나가신 향기가 서려 있습니다.

그 경계, 그 순간에 이르면 단체로서의 오푸스데이는 자신의 과제, 곧 바로 그 목적을 위해 회원들이 결합한 그 과제를 마칩니다. 더 이상 어떤 지시도 할 필요가 없고, 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됩니다. 그때부터 각 회원의 자유롭고 책임 있는 개인적 행동이 시작됩니다. 각자는 사도적 자발성과 완전한 개인적 자유를 가지고 행동하며, 내려야 할 구체적인 결정 앞에서 스스로 양심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육체노동이든 지적 노동이든 자신의 직업 활동을 성화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찾고 자기 환경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하려고 노력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세속 생활과 자신이 살아가는 현세의 현실 안에서 이런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리므로, 당연히 서로 다른 선택과 판단, 행동이 자주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복된 무조직, 정당하고 필요한 다원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의 올바른 정신에 본질적인 특징이며, 제게는 언제나 평신도 사도직을 이해하는 유일하게 올바르고 질서 있는 방식으로 보였습니다.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조직된 무조직’은 오푸스데이가 여러 나라의 인간 공동체가 겪는 문제를 그리스도교적으로 해결하는 데 단체로서도 기여하려는 바람에서 수행하는 단체 사도직 활동 자체에도 나타납니다. 이 단체의 활동과 사업은 언제나 직접적인 사도직 성격, 곧 교육·돌봄·자선 사업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바로 밑에서부터 사업 구상이 나오도록 북돋우는 것이며, 각 나라와 사회 집단의 상황과 필요, 가능성은 고유하고 보통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오푸스데이 중앙 통치 기구는 사실상 완전한 자율성을 누리는 지구 통치 기구들에, 자신들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구체적인 사도직 활동을 결정하고 추진하고 조직할 책임을 맡깁니다. 대학기관이나 학생 기숙사에서 진료소나 농민을 위한 실습 농장 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다채롭고 다양한 활동의 모자이크가 생깁니다. 조직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모자이크입니다.

오푸스데이는 이 과정에 무엇을 기여했을까요? 이런 종합적 평가를 하기에는 지금이 역사적으로 가장 적절한 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 문제들을 많이 다루었고, 그것이 제 영혼에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평신도의 삶과 사명에 관한 적지 않은 개념과 상황도 교도권에서 충분한 확인과 빛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한 핵심 문제들은 일반적인 학계에서 참된 신학의 경계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오푸스데이에 주신 정신 안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살아 내려고 노력하는 그 정신 안에서, 우리에게는 논의 중인 그 문제들의 대부분이 이미 하느님에 의해 해결된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해법들을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내세우려는 뜻은 없습니다.

단체로서 오푸스데이가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과 회원들이 개인으로서 각자의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학교나 피정의 집 같은 사업은 단체가 수행하고, 출판사나 상업 기업은 개인이 수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오푸스데이의 주된 활동은 회원들과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상 한가운데에서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적 수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을 알게 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해 일을 잘 해내도록 이끄는 정신을 전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과 함께 살고 모든 사람의 정당한 자유를 존중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정의롭게 만들면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회원 각자는 오푸스데이에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직업, 오푸스데이 회원이 아니더라도 종사했을 직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사회에 봉사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광부이고, 다른 이들은 학교나 대학에서 가르치며, 또 다른 이들은 상인, 가정주부, 비서, 농민입니다. 고귀한 인간 활동 가운데 회원이 종사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회원이 되기 전에 출판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던 사람은 그 후에도 같은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나 다른 일을 하다가 새 직장을 구하거나 같은 직업의 동료들과 어떤 회사를 세우기로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자유롭게 결정할 일이며, 일의 결과도 자신이 직접 받아들이고 그 책임도 개인적으로 져야 합니다.

오푸스데이 책임자들의 모든 활동은 회원들의 직업적 자유를 극진히 존중하는 데 기초합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의 존립 자체가 달린 지극히 중요한 점이므로 절대적인 충실함으로 지킵니다. 각 회원은 오푸스데이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일했을 분야에서 직업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푸스데이 자체나 다른 어떤 회원도 그 특정 회원의 직업 활동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회원들이 오푸스데이에 결합되면서 약속하는 것은 일을 기회와 수단으로 삼아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이 지녀야 할 인류에 대한 봉사의 성격을 더 분명히 의식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푸스데이의 주된 사명은 회원들과 그런 양성을 받기 원하는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교적 양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가 겪는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려는 바람,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이상이 그 해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푸스데이 자체가 단체로서 일부 활동과 사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 분야의 기준은, 오로지 영적인 목적을 지닌 오푸스데이가 명백하고 직접적으로 그리스도교적 봉사이자 사도직이 되는 활동만 단체로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푸스데이 자체가 탄광에서 석탄을 캐거나 어떤 종류의 경제 기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그 단체 활동은 모두 직접적인 사도직 활동입니다. 농민 교육 학교, 낙후된 지역이나 나라의 진료소, 여성의 사회적 발전을 위한 학교 등이 있습니다. 곧 전 세계에서 어느 종교에 속하든 여러 기관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돌봄·교육·자선 사업입니다.

이런 활동을 수행하는 데에는 우선 회원들의 개인적인 노력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활동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많은 이들이 아낌없이 도와줍니다. 어떤 이들은 영적 동기로 협력합니다. 다른 이들은 사도직 목적에는 공감하지 않더라도 인종이나 종교, 이념에 따른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사회에 유익한 사업임을 알아봅니다2.

회원들이 사회의 매우 다양한 계층에 속해 있고, 그중 일부는 상당히 중요한 기업이나 집단에서 일하거나 이를 이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푸스데이가 어떤 정치적·경제적 등의 방향에 따라 그 활동들을 조정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푸스데이는 정치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이념적 성향이나 집단, 체제와도 전혀 무관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 목적은 오로지 영적이고 사도적입니다. 회원들에게는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복음의 이상에 자신의 삶을 맞추려고 노력할 것만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현세적 문제에는 어떤 방식으로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회원들이 결합하는 오로지 영적인 목적과, 회원들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자신의 책임 아래 일하는 경제·정치·문화·예술·철학 등 매우 광범위한 인간 활동의 영역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모든 회원은 오푸스데이를 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개인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따라서 그중 누가 정치적 문제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며 다른 회원들에게 압력을 넣거나 인간적 이익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려 한다면, 다른 회원들이 반발하여 즉시 그를 제명할 것입니다.

회원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오푸스데이의 삶 자체를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도 오푸스데이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푸스데이가 정치나 인간 활동의 어떤 다른 분야에 간섭하는 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오푸스데이에 맞설 사람은 저일 것입니다.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오푸스데이는 회원들이 정직하게 품고 있는 확신을 표현할 자유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로 돌아가 보면, 오푸스데이는 단체로서 세속적이든 영적이든 중요한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도덕적 의무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 최근 스페인의 종교 자유 법안을 지지한 것처럼, 자신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오푸스데이와 회원들의 영향력을 행사할 상황이 있습니까?

오푸스데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함께 생각하고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교회가 모든 신자에게 가르치는 교리 외에 다른 교리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유한 것은 오푸스데이 특유의 정신뿐입니다. 곧 세상 안에서 자신을 성화하고 직업 활동으로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복음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식입니다.

여기에서 곧바로 모든 회원이 다른 가톨릭 신자들과 똑같이 자유롭게 의견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지닌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오푸스데이 자체는 고유한 의견을 표명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런 의견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교회가 명확한 교리를 정한 문제라면 각 회원의 의견도 그에 따를 것입니다. 반대로 교도권, 곧 교황과 주교들이 판단을 내리지 않은 문제라면, 각 회원은 자신이 가장 좋다고 여기는 의견을 자유롭게 지니고 옹호하며 그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분야에서 책임자들의 태도를 규정하는 원칙은 현세적 문제에서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는 소극적으로 관여를 피하는 태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각 회원에게 자신의 책임을 마주하게 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양심에 따라 그 책임을 받아들이도록 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당이나 정치 집단·성향, 또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과제와 사업을 이야기하면서 오푸스데이를 언급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부당하며 중상모략에 가깝습니다. 회원들이 공통된 어떤 이념이나 사고방식, 현세적 이해관계를 지닌다는 잘못된 결론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원들은 가톨릭 신자이며, 자신의 신앙에 일관되게 살려고 노력하는 가톨릭 신자들입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부르셔도 됩니다. 다만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문화나 이념에서조차 하나의 집단을 이룬다는 뜻은 아니며,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의회 이후에만이 아니라 오푸스데이의 처음부터 열린 가톨릭 신앙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양심의 정당한 자유를 옹호하고,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을 형제적 사랑으로 대하며, 인류를 움직이는 여러 고귀한 열망에 동참하면서 모든 이와 협력하도록 이끄는 신앙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미국의 인종 문제에 직면하여, 각 회원은 모든 인간의 평등과 온갖 차별의 부당함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의 분명한 가르침을 고려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 주교들의 구체적인 지침도 알고 그 실천을 절실하게 느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고, 어떤 차별적 상황이나 계획에도 반대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다른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 안에서 진실한 사랑과 사심 없는 봉사를 받아야 할 형제를 보아야 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것입니다.

오푸스데이가 회원들에게 주는 양성에서는, 그런 구체적인 문제가 없거나 덜 절박한 다른 나라보다 기자님의 나라에서 이러한 생각들을 더 강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푸스데이가 결코 하지 않을 일은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지시하거나, 심지어 제안하는 일입니다. 어느 법안을 지지할지, 어느 단체에 가입할지 아니면 아무 데도 가입하지 않을지, 특정 시위에 참여할지 말지는 회원 각자가 결정할 일입니다. 실제로 어디서나 회원들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다양성 속에서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회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최근 작성된 자국의 종교 자유 법안에 찬성한다는 사실도 이와 같은 기준으로 설명됩니다. 그것은 분명 개인적 선택이며, 법안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오푸스데이의 정신에서 자유를 사랑하고 모든 신앙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푸스데이는 성좌의 허가를 받아 1950년부터 비가톨릭 신자와 비그리스도인을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협력자로 받아들인 최초의 가톨릭 단체입니다.

물론 여론의 일부에서 오푸스데이가 어느 정도 논란의 대상이라는 점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 특히 오푸스데이에 자주 제기되는 ‘음모의 비밀’과 ‘비밀 음모’라는 비난에 어떻게 답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자기 자랑처럼 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은 제게 매우 불편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하셨으니, 오푸스데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친구를 가진 가톨릭 조직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백만 명이, 그중에는 수많은 비가톨릭 신자와 비그리스도인도, 오푸스데이를 사랑하고 돕습니다.

한편 오푸스데이는 영적이고 사도적인 조직입니다. 이 근본적인 사실을 잊거나, 그렇게 말하는 회원들의 선의를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이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복잡한 이야기와 비밀을 만들어 냅니다.

비밀에 관한 비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그 중상적인 비난의 역사적 기원을 하나하나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어떤 강력한 조직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왜곡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 조직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 조직을 사랑하며 언제나 사랑해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수도자로 여기겠다고 고집하면서, 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왜 수도복이나 표지를 착용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비논리적으로 우리가 비밀결사를 이루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날 그런 일은 지나갔고, 조금이라도 사정을 아는 사람은 어떤 비밀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수도자가 아니라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므로 표지를 착용하지 않습니다. 현세적인 모든 일과 자유로운 논의가 허용되는 신학 문제에서 최대한의 다양성을 인정하므로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상이 더 잘 알려지고 근거 없는 질투가 극복되면서 그 슬프고 중상적인 상황은 끝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때때로 오래된 신화를 되살리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의 개인적 자유를 지키며 하느님을 위해 일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어느 편에 속해 있든 그 자유의 적인 편협한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를 반대할 것입니다. 종교라는 생각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공격적일 것이며, 광신적인 종교 사상에 기대는 사람들이라면 더 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행히 대다수의 언론은 낡고 거짓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현실과 중상모략의 중간쯤 되는 것을 퍼뜨리는 일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진실을 말하는 것도 뉴스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푸스데이에 속하거나 협력하면서 개인적인 잘못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일을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활동을 알릴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게도 잘못이 있으므로 다른 이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다. 거짓 신화를 깨뜨리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저는 때로 이전의 판단을 바꾸어야 하더라도 충분한 근거를 확인하고 최신 정보를 갖추는 것이 언론인의 중대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터무니없고 낡고 신빙성을 잃은 거짓들을 섞지 않고, 어떤 것이 깨끗하고 고귀하고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오푸스데이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모든 나라에서 국가와 교회의 법적 인정을 받고 공개적으로 활동합니다. 책임자들과 사도직 활동의 이름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누구든 오푸스데이에 관한 정보를 원한다면 책임자들에게 연락하거나 우리의 단체 활동 가운데 한 곳을 찾아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오푸스데이 책임자나 언론 담당자가 질문에 답하고 적절한 자료를 제공하면서 기자들의 취재를 언제나 도왔다는 사실은 기자님 자신도 증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나 다른 어떤 회원도 모든 사람이 우리를 이해하거나 우리의 영적 이상에 공감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를 매우 사랑하고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존중받을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푸스데이의 일부 회원들이 스페인의 공적 생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페인의 오푸스데이를 어느 정도 정치화한 것은 아닙니까?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오푸스데이와 교회 자체를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하지는 않습니까?

스페인에서도,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푸스데이의 모든 회원은 완전한 자유와 개인적 책임 아래 활동하며, 교회나 오푸스데이를 그 활동에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개인적인 활동을 하는 데 교회나 오푸스데이에 기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직과 영적 생활을 군대식으로 이해하도록 배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롭고 개인적인 활동을 집단행동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1928년부터 지치지 않고 거듭 말해 왔듯이, 현세적인 문제나 자유로운 논의가 허용되는 신학 문제에서 의견과 행동이 다양한 것은 오푸스데이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립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 사이에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늘 있을 다양성은 오히려 올바른 정신과 깨끗한 삶, 각자의 정당한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스페인의 오푸스데이에 경제적 또는 정치적 성향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한 성향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오푸스데이는 스페인에서도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제적·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회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나 개인의 자유를 옹호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살아가고 일할 권리, 병들었을 때나 노년에 돌봄을 받을 권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을 권리, 자녀 각자의 재능에 맞게 교육할 권리,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마땅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옹호합니다.

그러나 오푸스데이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길도 회원들에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회원 각자는 이 분야에서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완전한 자유를 지닙니다. 현세적인 모든 일에서 회원들은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정치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 성향의 사람들이 오푸스데이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사제로서 제 사명은 오로지 영적인 것입니다. 더욱이 제가 설령 현세적 문제에 관한 의견을 말한다 해도, 회원들에게는 그것을 따를 의무가 조금도 없습니다.

오푸스데이 책임자들은 다른 회원들에게 정치적 견해나 직업에 관한 판단을 결코 강요할 수 없습니다. 어느 회원이 그런 일을 하거나 인간적 목적을 위해 다른 회원들을 이용하려 한다면, 다른 회원들이 정당하게 반발할 것이므로 그는 가차 없이 제명될 것입니다.

저는 어느 회원에게도 어느 정당에 속하는지, 어떤 정치 사상을 지지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정당한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오푸스데이 책임자들도 똑같이 행동합니다.

그렇지만 스페인에서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오푸스데이 회원들 사이에 실제로 매우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으며, 이에 반대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내리는 현세적 선택을 언제나 존중하듯, 그 모든 의견을 존중합니다. 이러한 다원성은 오푸스데이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정당한 자유를 분명히 드러내는 올바른 정신의 표현입니다.

회원들의 주장대로 오푸스데이가 각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는 단순한 종교 단체라면, 오푸스데이가 현세적 문제에서 매우 뚜렷한 입장을 지닌 획일적인 조직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그 의견이 실제로 매우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국제 언론 가운데 상당수의 권위 있는 매체들이 오푸스데이 회원들의 다원성을 인정해 왔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잘못된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이유로 그런 생각을 퍼뜨렸을 수 있습니다. 다른 많은 경우에는 정보가 부족하여 잘 알지 못한 탓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오푸스데이와 직접 접촉하여 제대로 알아볼 만큼 관심도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몇몇 회원의 의견을 오푸스데이 자체의 의견으로 여기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스페인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오푸스데이 회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모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자님께서도 분명 많은 사례를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요인은 정치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단일 정당식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편견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니고 모두가 자기와 같은 의견을 갖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타인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자기 집단의 획일적인 성격을 오푸스데이에도 그대로 부여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스페인의 경우를 이야기해 봅시다. 이 나라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거나 공적 생활에 참여하는 소수의 회원들은 다른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양심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책임 아래 행동합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서로 다르며 흔히 상반되기까지 하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오푸스데이에 속한 사람들이 스페인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어떤 특별한 현상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여 중상모략으로 이어집니다. 스페인의 공적 생활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은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체 가톨릭 신자에 비하면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인구의 거의 전부가 가톨릭 신자이므로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가톨릭 신자인 것은 통계상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더욱이 장관에서 시장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공공 행정의 모든 층위에는 매우 다양한 신자 단체 출신의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톨릭 액션의 여러 부문, 현재 에레라 추기경이 초대 회장을 지낸 전국 가톨릭 홍보인 협회, 성모 신심회 등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기회에 오푸스데이는 어느 나라나 체제,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과도 결부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선언합니다. 회원들은 언제나 현세적 문제에서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이며 행동합니다. 또한 정치적 입장이나 당파적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몹시 싫어합니다.

또한 교회 역사가 진전하면서, 평신도에 관한 모든 것을 왜곡하고 그들에게 숨은 의도를 부여하려는 특정한 성직주의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푸스데이가 실천하고 선포하던 것이 다름 아닌 평범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성소이며, 구체적인 초자연적 헌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졌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들이 사회 각계에 침투한다’는 말이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모두가 그것이 성직주의적인 표현임을 깨닫는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말은 오푸스데이의 사도직에는 전혀 해당하지 않습니다. 회원들은 현세의 구조에 침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시민이므로 이미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공장이나 병원, 의회에서 일하는 사람을 오푸스데이로 부르신다면, 이는 그 사람이 이제부터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의 직업을 성화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기로 결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받은 고유한 성소에 따라 복음의 메시지가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바를 자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자각이 평범한 삶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contemptus mundi, 곧 세상의 것들을 멀리하고 가볍게 여기는 수도 성소를 하느님께 받은 이들에게만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일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나 정점으로 삼으려는 것은 분명히 엄청난 잘못입니다.

따라서 회원들을 특정 환경에 들여보내는 것은 오푸스데이가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들은 이미 그곳에 있었고 떠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과 앞서 말씀드린 우정과 신뢰의 사도직에서 생겨나는 오푸스데이 성소는 모든 환경에서 나타납니다.

어쩌면 오푸스데이의 본질과 활동 방식이 이처럼 단순하다는 것 자체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하여 참되고 올바른 것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오푸스데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을 것이며, 우리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당신 제자들에게 이런 어려움을 예고하시며 non est discipulus super Magistrum (Mt 10, 24), 곧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게 보아 주기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또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사람에게 존중받을 권리는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생각을 전체주의적으로 강요하려는 광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푸스데이 회원들이 언제나 개인적 책임을 지면서, 먼저 다른 사람의 개인적 자유를, 그다음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이름을 밝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어느 도시라고만 하겠습니다. 그 시의회는 오푸스데이 회원들이 지도하는 한 교육 활동에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 활동은 오푸스데이가 수행하는 모든 단체 사도직 활동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공익에 분명히 기여하고 있었습니다. 시의원 대다수는 지원에 찬성했습니다. 사회주의자인 한 의원은 찬성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그 시설의 활동을 직접 알아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활동의 특징은 운영자들이 개인의 자유를 매우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그 기숙사에는 온갖 종교와 이념을 지닌 학생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시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자신의 반대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사회주의 의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반대한 것은 사정이 그렇다면 그 기숙사가 가톨릭 신앙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거나 교회에 반대하려는 사람은 사도직 활동을 좋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저는 인간으로서 그를 존중하고 진리로 이끌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점이 분명해졌으니 여쭙고 싶습니다. 회원들이 받는 영적 양성에는 어떤 특징이 있어서, 오푸스데이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어떠한 현세적 이해관계도 배제될 수 있습니까?

순전히 영적인 것이 아닌 모든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배제됩니다. 오푸스데이는 이탈과 희생, 자기 포기, 영혼을 섬기기 위한 쉼 없는 노동 등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세적 이익의 차원에서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영적 삶의 차원에서는 많은 것을 줍니다. 수덕적 투쟁에서 싸우고 승리할 수단을 주고, 기도의 길로 이끌며, 예수님을 형제처럼 대하고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을 뵙는 법을 가르칩니다. 또한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이며, 따라서 그분의 가르침을 전할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도록 가르칩니다.

내적 생활의 길에서 나아가 온전히 자신을 내어 주고 자신의 삶을 주님을 섬기는 데 바치는 것이 가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푸스데이에서 항구할 수 없습니다. 성덕은 이름표가 아니라 깊은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푸스데이에는 정치적·경제적·이념적 목적을 위한 활동이 없으며, 어떤 현세적 활동도 없습니다. 오직 회원들의 초자연적 양성과 사도직 활동만이 있습니다. 곧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끊임없이 영적으로 돌보는 일과, 돌봄·자선·교육 등의 단체 사도직 활동입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은 오직 분명하게 정해진 성덕의 길을 따르고 특정한 사도직 활동에 협력하기 위해 결합되어 있습니다. 서로 간의 약속은 모든 현세적 이해관계를 배제합니다. 이 영역에서 모든 회원은 자유롭고, 따라서 각자 서로 다르며 때로는 상반되기도 하는 목적과 관심사를 가지고 자기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오푸스데이의 목적은 오직 하느님을 향하므로, 그 정신은 자유의 정신, 모든 사람의 개인적 자유를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그 사랑은 단순한 이론적 선언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므로, 우리는 자유의 필연적 결과인 다원성을 사랑합니다. 오푸스데이에서는 다원성을 단순히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고 사랑하며, 결코 가로막지 않습니다. 정치·경제·사회·예술 등의 문제에서 회원들 가운데 수많은 다양한 생각과 서로 다른 태도가 있는 것을 보면 저는 기쁩니다. 모든 일이 하느님 앞에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광신과 불관용이 지배하지 않고, 무엇보다 신앙으로 살아가며, 우리 인간이 단순한 호감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성령의 활동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안다면 영적 일치와 현세적 다양성은 양립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제로 삼으시어 하느님 아버지께로 이끄십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일치, 교도권과 교회 전통에 대한 충실함, 그리스도의 구원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는 관심이, 흔히 말하듯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논의에 맡겨 두신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태도와 상충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 다양성이 하느님 계획의 일부이며, 당신 뜻대로 선물과 빛을 나누어 주시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임을 충분히 의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며, 따라서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존중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과 온전한 형제애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회원들은 바로 이 정신에 따라 양성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회원이라는 사실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얻거나 다른 이들에게 정치적·문화적 선택을 강요하려는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회원들이 이를 용인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거나 오푸스데이를 떠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에서 누구도 조금의 일탈조차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점입니다. 자신의 개인적 자유뿐 아니라 자신이 헌신한 활동의 초자연적 본질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하느님의 일인 오푸스데이의 초자연적 목적을 가장 잘 보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는 결코 자신이 교회를 대표해서 성당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믿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적 결정”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성직주의’이고 잘못된 "공식적인 가톨릭"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름을 붙이건 좌우간, 사실의 본성에 왜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올바른 "평신도 정신"을 전해야 합니다. 이 정신은 세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 매우 정직해짐으로써 각자의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둘째, 충분히 ‘그리스도교적’이 되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 교우들을 존중하게 됩니다. 셋째, 충분히 ‘가톨릭적’이 되어, 인간적 갈등에 어머니이신 교회를 이용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된 자유, 교회가 기꺼이 인정하는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다면 결코 일상생활을 성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생활에 본질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는 자유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책임 있는 자유

제 영적 자녀들은 다른 시민들과 결코 다를 게 없습니다. 이에 반하여, 같은 믿음을 제외하면 수도자들과는 같은 점이 없습니다. 저는 수도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사도직, 그들의 수도 생활, 세속을 외면하여 (contemptus mundi) 세속을 떠난, 그들의 삶을 존경하며 그들이 거룩한 성교회의 거룩함의 또 다른 표지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님께 받은 성소는 수도자의 성소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수도 성소를 원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권위자도 저를 억지로 결혼하게 할 수 없듯이 어떤 권위자도 저에게 수도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재속 사제입니다. 이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입니다.

목차
2

이 책의 「소개」에서 일부 법적·조직적 측면에 관한 답변들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다시 상기합니다. 그 답변들은 오푸스데이가 설립자가 바라던 최종적인 법적 형태를 아직 받지 못했던 당시에는 정확하고 명확한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같은 「소개」에 실린 간략한 설명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목차
2

뚜렷하게 사도적 성격을 지닌 이 단체 활동들은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이 방금 설명했듯이 자치단의 회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진합니다. 교리적·영적 지도의 책임만을 맡는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은 이 사업들의 소유 주체인 기업이나 관련 동산 및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이 활동에서 일하는 오푸스데이 신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 아래 해당 국가의 법을 온전히 준수하며 일하고, 다른 시민들의 비슷한 활동과 동일한 인정을 당국으로부터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