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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시뇰께서는 오푸스데이의 실상을 말씀하시면서 ‘조직된 무조직’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이 표현의 의미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성령의 활동으로 이끌리는 개인의 사도적 자발성, 자유롭고 책임 있는 주도권에 우리가 최우선적이고 근본적인 중요성을 둔다는 뜻입니다. 통치 기구의 꼭대기에서 강요하는 조직 구조나 명령, 전술과 계획에 중요성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최소한의 조직은 있습니다. 로마에 본부를 두고 언제나 합의제로 운영되는 중앙 통치 기구와, 역시 합의제로 운영되며 각기 지도신부가 주재하는 지구 통치 기구들이 있습니다2. 그러나 이 기구들의 모든 활동은 근본적으로 한 가지 과제를 향합니다. 회원들의 신심 생활에 필요한 영적 도움과 적절한 영적·종교 교리적·인간적 양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오리들이여, 물로 들어가라!’ 하는 셈입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인간의 모든 길을 성화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길에는 하느님께서 지나가신 향기가 서려 있습니다.
그 경계, 그 순간에 이르면 단체로서의 오푸스데이는 자신의 과제, 곧 바로 그 목적을 위해 회원들이 결합한 그 과제를 마칩니다. 더 이상 어떤 지시도 할 필요가 없고, 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됩니다. 그때부터 각 회원의 자유롭고 책임 있는 개인적 행동이 시작됩니다. 각자는 사도적 자발성과 완전한 개인적 자유를 가지고 행동하며, 내려야 할 구체적인 결정 앞에서 스스로 양심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육체노동이든 지적 노동이든 자신의 직업 활동을 성화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찾고 자기 환경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하려고 노력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세속 생활과 자신이 살아가는 현세의 현실 안에서 이런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리므로, 당연히 서로 다른 선택과 판단, 행동이 자주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복된 무조직, 정당하고 필요한 다원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푸스데이의 올바른 정신에 본질적인 특징이며, 제게는 언제나 평신도 사도직을 이해하는 유일하게 올바르고 질서 있는 방식으로 보였습니다.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조직된 무조직’은 오푸스데이가 여러 나라의 인간 공동체가 겪는 문제를 그리스도교적으로 해결하는 데 단체로서도 기여하려는 바람에서 수행하는 단체 사도직 활동 자체에도 나타납니다. 이 단체의 활동과 사업은 언제나 직접적인 사도직 성격, 곧 교육·돌봄·자선 사업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바로 밑에서부터 사업 구상이 나오도록 북돋우는 것이며, 각 나라와 사회 집단의 상황과 필요, 가능성은 고유하고 보통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오푸스데이 중앙 통치 기구는 사실상 완전한 자율성을 누리는 지구 통치 기구들에, 자신들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구체적인 사도직 활동을 결정하고 추진하고 조직할 책임을 맡깁니다. 대학기관이나 학생 기숙사에서 진료소나 농민을 위한 실습 농장 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다채롭고 다양한 활동의 모자이크가 생깁니다. 조직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모자이크입니다.
오푸스데이는 이 과정에 무엇을 기여했을까요? 이런 종합적 평가를 하기에는 지금이 역사적으로 가장 적절한 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 문제들을 많이 다루었고, 그것이 제 영혼에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평신도의 삶과 사명에 관한 적지 않은 개념과 상황도 교도권에서 충분한 확인과 빛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한 핵심 문제들은 일반적인 학계에서 참된 신학의 경계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오푸스데이에 주신 정신 안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살아 내려고 노력하는 그 정신 안에서, 우리에게는 논의 중인 그 문제들의 대부분이 이미 하느님에 의해 해결된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해법들을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내세우려는 뜻은 없습니다.
이 책의 「소개」에서 일부 법적·조직적 측면에 관한 답변들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다시 상기합니다. 그 답변들은 오푸스데이가 설립자가 바라던 최종적인 법적 형태를 아직 받지 못했던 당시에는 정확하고 명확한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같은 「소개」에 실린 간략한 설명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conversaciones/19/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