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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주변에 불신과 의심의 인위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네 수 앞을 생각하면서 말해, 체스를 두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경계심 많고 위선적인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슬픈 모습을 그릴 때, 이들이 “ut caperent eum in sermone”1, 즉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려고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런 행동은 멀리하라.
누군가 진실을 말해줄 때 기분 나빠할 것이면… 왜 묻는가?
혹시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이 그대의 진실로 답해주기를 바라는 건가?
“저들은 그리스도의 이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면을 쓰고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적인 기준이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하며 결실을 맺지 못한다.”라고 그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우리 하느님의 자녀들은 주님께서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다.”2라고 선포하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며, 결코 그분의 캐리커처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위선은 그 탈을 쓴 자들에게 원통하고 원망에 찬 고행의 삶을 어김없이 선사한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1 만일 이런 헤로데 같은 제안을 받는다면, 선의로 보이는 사람들의 ‘보호나 약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도록 성령님께 도움을 청하자.
동방 박사들처럼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을 말한다면, 위로자의 빛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솔직하게 말한다고 언짢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들이 흐려진 양심으로 행동해서 이런 식으로 덮어야 하는가 보다.
그대 행동에 꾸준하여 그들이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라.
그대가 이웃의 의도를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한, 자신을 위한 남의 이해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
그대는 교정과 개혁의 필요를 끊임없이 말한다. 좋다. 그대에게도 필요하니… 스스로를 개혁하라! 그러면 이미 개혁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 전에는 그대의 개혁 선언을 믿지 않겠다.
자기 입으로 말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을 듣고 경악할 만큼 위선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대는 이웃의 삶에 파고드는 것 외에는 다른 사명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주책바가지다. 그리고 결국 위엄 있는 의연한 사람과 부딪쳐 제지를 당하자,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처럼 공개적으로 한탄한다.
그대의 뻔뻔함과 기형적 양심이 이 정도 까지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대와 같다.
그대는 한 방에 진실한 의견의 ‘정직함’과 반대 의견의 저속한 ‘이점’을 얻으려 한다….
이는 어떤 말로든 이중성이라고 부른다.
저들이 얼마나 선한 건가!! 칭찬받을 가치만 있는 것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756/ (202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