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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가톨릭신자가 되는 것과 시민사회에 충실히 봉사하는 것이 대립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와 국가가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따라 각자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행사하는데 충돌할 이유가 없다.
그 반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그렇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거짓 자유를 빌미로 우리 가톨릭들이 카타콤으로 돌아가는 것을 ‘친절하게’ 원하는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들이 가능한 한 빨리 하느님을 잃어버리도록 하고, 그런 다음에는 세상을 잃어버리게 한다…. 그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세상을 착취하는 것이다!
그대도 이런 이중 사기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가 경계해야 할 근본적 오류가 있다. 그대의 시대나 환경의 고상하고 정당한 관습과 요구를 그리스도교 도덕 가르침의 성덕에 합당하게 정리하고 맞출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고상하고 정당한 것들이라고 명시했음을 주목하라. 그 외의 관습은 시민권의 자격이 없다.
종교는 생각이나 일상에서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교묘한 박해로 교회를 공공생활에서 내몰고, 무엇보다도 교육, 문화, 가정생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 굶어 죽게 한다면, 우리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권리는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리이며, 그분께서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를 맡기셨다…. 행사하도록 말이다!
많은 물질, 기술, 경제, 사회, 정치, 문화 현실을 그대로 두거나 신앙의 빛이 없는 사람들의 손에 맡기면, 초자연적 삶에 끔찍한 장애가 될 수 있다. 그것들은 곧 교회를 적대시하는 폐쇄된 보호구역으로 구성된다.
그대는 그리스도인 연구자, 작가, 과학자, 정치인, 노동자로서 이러한 현실을 거룩하게 할 의무가 있다. 사도의 말씀대로 온 우주가 하느님의 자녀가 해방될 날을 기다리며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2
나는 언제나 타당할 하나의 기준을 수년 전부터 분명히 봤다. 그리스도적 신앙과 도덕에서 벗어난 사회 분위기에는 복음의 영원한 진리를 생활화하고 전파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사회와 세상의 중심부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어둠 속 등불처럼 그들의 덕을 통해 빛나야 한다, “quasi lucernae lucentes in caliginoso loco.”5
얼마나 자주 많은 사람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신자가 그저 좋은 가톨릭 신자일 것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반대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비방과 암시를 퍼뜨리는 자들을 경계하라. 누구는 별 생각 없이, 누구는 악의로 그것들을 받아들여 주변의 평온을 깨뜨리고 여론을 오염시킨다.
참된 사랑은 때때로 그런 잘못과 그 조장자들에 대한 비난을 요구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과 그 말을 듣는 이들은 비뚤어지고 잘 형성되지 못한 그들의 양심에 따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침묵은 곧 인정이다.”
수세기가 지나도 가톨릭 신앙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분파주의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우리의 광신’에 반대를 외친다.
반면에 분파주의자들의 광신은 진리와 관련 없기 때문에 각 시대에 옷을 바꾸고 그들의 행적에 비춰볼 때 말뿐인 허상을 성교회에 맞서 치켜세운다. 얽매는 ‘자유’; 밀림으로 돌아가게 하는 ‘진보’; 무지를 숨기는 ‘과학’…. 늘 낡고 망가진 상품을 덮는 깃발들이다.
유일한 진리를 유일하게 지키는 신앙에 대한 ‘그대의 광신’이 날마다 더 강해지길 바란다!
일부 사람들의 폐쇄적 태도에 겁먹거나 놀라지 말라. 교양을 자랑하며 무지의 무기를 휘두르는 어리석은 자들은 늘 존재할 것이다.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과 그분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맞서, 서로 다른 욕망으로 그러나 팔짱을 끼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785/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