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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을 행동의 원칙으로 삼는 것이 어리석다고 확신하려면, 오래된 초상화 몇 점만 살펴보라.
그대를 위해 한 편지에서 옮겨 쓴다. “저는 복음적 겸손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소심하고 의식 없는 움츠림에는 반발합니다. 그리스도교 윤리란 노예들의 윤리라고 쓴 그 무신론자는3 틀림없이 그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종이다. 하느님 자녀의 반열에 올라, 격정의 노예처럼 처신하고 싶어 하지 않는 종이다.
인간사에서는 다른 사람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들은 그대와 똑같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다른 빛으로 다른 색조로 다른 윤곽으로 본다.
신앙과 윤리에서만은 논박의 여지가 없는 기준, 곧 우리 어머니인 교회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대의 소명은 하느님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이 땅의 것들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그분께 돌려드리기 위해서다.
그대가 경계해야 할 근본적 오류가 있다. 그대의 시대나 환경의 고상하고 정당한 관습과 요구를 그리스도교 도덕 가르침의 성덕에 합당하게 정리하고 맞출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고상하고 정당한 것들이라고 명시했음을 주목하라. 그 외의 관습은 시민권의 자격이 없다.
도덕과 신앙을 얘기하면서 그대가 독립된 가톨릭 신자라고 자칭할 때,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로부터의 독립인가? 그런 거짓 독립은 그리스도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일하면서는 순결할 수 없다고 –자신의 슬픈 경험을 통해— 단언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러한 비논리적 추론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나 형제자매나 배우자의 기억을 모욕해도 불쾌해하지 말아야 한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817/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