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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해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려는 유혹이 종종 나타난다. 그러한 사소함을 즉시 이겨내어 바로잡는 법을 배워라.
만일 그대의 상상이 그대를 중심으로 들끓고, 평소 그대 길에 맞지 않고, 그대를 산만하게 하고, 차갑게 하고, 하느님의 현존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상의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 낸다면, 이는 허영이다.
만일 그대의 상상이 다른 사람을 맴돌고, 자기 임무가 아닌데도 남을 판단하는 잘못에 쉽게 빠지고, 남의 행동을 비열하고 객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만일 그대의 상상이 자신의 재능과 말투 또는 자신이 타인에게 불러일으키는 감탄의 분위기를 맴돈다면, 바른 지향을 잃고 오만해질 위험이 있다.
일반적으로 상상을 풀어놓는 것은 시간 낭비이지만, 더욱이 통제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의적 유혹 타래에 길을 열어준다.
내적 고행을 단 하루도 거르지 말라!
많은 이들이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날 것처럼 이기심을 좇아 슬프게 살기를 고집하는 이 세상에서,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런 많은 이들처럼 되지 말라…. 매 순간 지향을 바로잡아라!
어떤 사람들은 그들 머릿속에 담긴 말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이해란 그들이 자기 편으로 넘어오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사소하지도 무해하지도 않은 가장 사소하고 무해한 거짓말에 그대가 거북함, 그것도 불쾌한 거북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대의 진실성을 믿을 수 없다. 그 거짓말은 하느님께 범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왜 비열한 의도를 가지고 보고, 듣고, 읽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도가 아닌 그대 마음에만 있는 ‘나쁜 것들’을 모으려 하느냐?
독자에게 바른 마음이 없다면, 작가의 바른 마음을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분파주의자는 다른 사람의 모든 활동에서 분파주의만 본다. 그는 자기 마음의 좁은 자로 이웃을 잰다.
나는 그 책임자가 안타까웠다. 그는 살면서 있을 수 있는 몇몇 문제가 존재함을 감지했고… 이것을 전달받았을 때 놀라고 언짢아 했다. 그는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들을 차라리 외면하며 자신의 눈의 희미한 빛이나 어둠으로 살기를 선호했다. 나는 그에게 그 문제들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직시하여 없애도록 조언했고, 그러면 그는 진짜 평화 속에서 살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대는 자신과 이웃의 문제를 외면하면서 해결하지 말라. 그것은 안락함, 게으름, 악마의 행동에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대는 의무를 완수했나? 그대의 의도는 올곧았나? 그런가? 그렇다면 자신들 눈에만 존재하는 악을 발견하는 비정상적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걱정하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이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던 그대 결정에 대해 선악을 판단했는지 캐물었다. 그리고 그대는 확실한 양심으로 대답했다. “나는 두 가지만 안다. 내 의도가 정직하고… 내가 치르는 대가를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하느님이 내 삶의 이유이자 목표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대의 선한 의도에는 항상 겸손이 뒤따르게 하라. 선한 의도에는 종종 가혹한 판단, 양보가 거의 불가능한 고집,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개인, 국가 또는 집단 자부심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올바른 이유에서 좋게 행동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초자연적 이유가 지배할 때,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힘든 일 앞에서 그들의 기쁨을 본 저 친구는 이렇게 물었다. “이 일들을 열정으로 하는 겁니까?” 그러자 그들은 기쁘고 평온하게 대답했다. “열정이라고요? 그럴 리가요!” “Per Dominum Nostrum Iesum Christum!”1 변함 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대는 저 사람의 지극히 그리스도적이지 못한 말을 듣고 매우 유감스러워했다. “원수를 용서하십시오. 그것이 그들을 얼마나 분개하게 하는지 상상도 못 할 것입니다!”
그대는 참을 수 없어 차분하게 대꾸했다. “이웃을 모욕하면서 사랑을 싸구려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스승님을 본받고자 하는 갈망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합니다.”
그대의 걱정거리들에 대한 처방: 인내하는 것, 올바른 지향을 갖는 것, 초자연적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험담은 시기의 자식이고 시기는 결실이 없는 자들의 피난처다.
그러므로 불모에 직면할 때, 그대의 의도를 돌아보라. 그대가 계속 일하고, 다른 사람들의 성과에 배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 불모는 겉보기일 뿐이다. 때가 되면 수확을 거둘 것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882/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