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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게 순종하기. 그러나 지도자에 대한 비판과는 거리가 먼 현명함과 사랑과 책임을 곁들인 순종이길.
혼란의 씨앗을 뿌리는 길은 많다. 예를 들면 예외를 일반적인 규칙처럼 가리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은 스무 살이던 적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미성년자처럼 가족에 의해 제약을 당한 적이 전혀 없다고 믿느냐? 그대가 직면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피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지금 그대가 겪고 있는 똑같은 상황을 겪었고 관대한 인내로 자기 이기심을 짓밟았다. 양보 가능할 때는 양보했고, 불가능할 때는 오만하지 않고 상처주지 않으면서 —침착한 겸손으로— 충성하여 은총의 도움으로 성숙해졌다.
매일의 일과 앞에서 의지가 약해질 때, 다시 명심하라. “공부나 일은 내 길의 핵심 부분이다. 게으름으로 직업적 신뢰를 잃는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활동이 허물어지거나 불가능해질 것이다.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고 돕기 위해서는 직업적인 평판의 영향력이 필요하다. 하느님께서 이를 원하신다.”
의심치 말라. 자신의 일과를 포기한다면, 그대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하느님의 계획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둘러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속도에 맞춰, 쉼 없이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말로 우리 신앙에 따라 산다면,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공동 구속의 효과는 우리 각자에게도 달려 있다! 묵상해 보라.
하느님 앞에서 오직 의무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대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느낄 것이다. 권리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베풀어 주실 것이다!
날마다 다른 사람들을 염려하고 돌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자신의 존재조차 잊게 되기를 바란다!
어려운 순간에 이 생각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성실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사람들이 이 덕을 키우는 데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정말로 매력적인 것이다!
이론만 내세우지 말라. 저 거대한 이상들을, 결실을 보는 영웅적 일상의 현실로 바꿔줄 책임자는 바로 하루하루 우리의 삶이다.
오래된 것들은 과연 존중과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배우는 것은 좋다. 경험을 고려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과장하지는 말자. 모든 것이 때가 있다. 우리가 몸에 딱 붙는 상의에 타이츠를 입고 분칠한 가발을 쓰지는 않지 않는가?
화내지 말라. 무책임한 행동은 종종 올바른 정신의 결여보다는 생각이나 교육의 결여를 나타낸다.
교사와 지도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업무 수행을 통해 이런 부분을 채워줄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러한 직책을 맡고 있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권위의 자리에 있으면서 인간의 호평이나 얻으려고 일한다고? 이 늙어빠진 바보! 우선 하느님의 평가를 염려하고, 이어서 —아주 이차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고려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4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그대여, 직무를 수행할 때 명심하라. 한 사람의 업적은 자신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
좋은 통솔의 기본 규칙: 책임을 분담하는 것 —그것이 편하기 위해서나 책임회피를 위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말이다—. 거듭 말하겠다, 책임을 분담하는 것. 하느님과 필요하다면 사람들 앞에서 ‘책임을 지기’ 위해 각자에게 자신의 임무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문제를 해결할 때, 자비를 잊을 정도로 정의를 과장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사슬의 힘은 가장 약한 고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대는 아랫사람 누구를 두고도 ‘쓸모없다’고 하지 말라. 쓸모없는 사람은 바로 그대이다. 그들을 쓸모 있을 만한 곳에 배치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명예에 대한 야망을 물리쳐라. 대신 도구와 의무와 효율을 바라보라. 그러면 직분을 탐내지 않을 것이며, 만일 직분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다. 영혼들을 섬기기 위한 짐으로 말이다.
십자가라는 경멸의 시간에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과 같은 운명을 겪기로 결심하시고 그의 곁에 계신다. 책임감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환경에서 쉬운 일이 아닐지라도, 두려워하지 말자. 그분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891/ (202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