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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잘 듣고 전하라. 그리스도교는 사랑이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지극히 긍정적인 대화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관심, 곧 사도직은 사치품, 극소수만 할 일이 아니다.
이것을 알았으니 기쁨으로 가득차라, 이제 그대 삶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걸맞게 행동하라.
강렬하고 꾸준한 사도직을 하지 않는다면, 내적 생활에 열심하다고 하지 말라. 그대가 대한다고 주장하는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 일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신다. 그러나 그대는 선한 목자가 100번째 양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 누가 부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영혼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런 다음 그대 친구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알려라. 누구도 자신을 채운 후 사도적 열정으로 외부에 흘러넘치지 않는 영적 생활에 만족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종교는 생각이나 일상에서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그대가 사도직에 관해 내게 쓴 것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물리학을 공부하며 세 시간 동안 기도하려 합니다. 도서관 책상 반대편에 있는 자리에 대한 폭격이 될 것입니다. 신부님은 그가 여기 왔을 때 그를 만나신 적이 있습니다.”
기도와 일 사이에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내 말에 그대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기억난다.
떠들지만 실천하지 않는 나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분개하지 말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1 그대에게는 그대의 행실대로, 내게는 나의 행실대로 말이다.
그대와 내가 잘 행동하기로 작정한다면, 우선 두 명의 악당이 세상에 줄어들 것이다.
그대는 자기가 가톨릭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의 신념이 쉼이나 예외를 두지 않고 가톨릭교를 실천하며 살게 할 만큼 확고하지 않다는 것을 볼 때, 나는 참으로 유감스럽다.
진실이 진실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무엇보다도 늘 삶의 일관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행동하지 말라. 깨닫고 사랑하고 옹호해야 할 진리를 날마다 더 잘 깨닫고, 더 사랑하고, 더 확실하게 지키려는 것은 결코 광신주의가 아니다. 반면에 —두려움 없이 말하는데— 거짓 자유의 이름으로 이 당연한 행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분파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그랬듯이, ‘아니오’라고 하는 것, 즉 신앙의 진리를 부정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쉽다. 가톨릭 신자라고 선언하는 그대는 ‘예’로 출발해야 한다.
그런 후, 연구를 통해 그대가 확신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진리와 과학, 진리와 생활 사이에는 모순이 없고 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확신 말이다.
논증의 근거나 용어의 의미가 마치 그들의 행동이나 주장에 의해 정의되는 것인 양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더라도, 일을 포기하지 말고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
그들이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가라.
그대는 그대의 이상과 확실하고 확고한 가톨릭의 행동을 그에게 설명했고, 그는 그 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대는 그다지 질서정연하지 못한 그의 습관에 이해가 묻혔는가 하는 의구심이 남았다….
그를 다시 찾아 진리는 실천하거나 실천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혀주어라.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939/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