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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유배 중인 히브리 백성의 장차 올 해방을 예고하시면서, 이전에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지만 이제는 당신 종들을 de terra Aquilonis et de cunctis terris22에서 이끌어 내시겠다고 하실 때, 저는 많은 사람이 차별 없이 오푸스데이에 부름받으리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회 계층에서, 온갖 재능을 지닌 이들 가운데에서, 높은 곳에 있는 이들과 낮은 곳에 있는 이들 가운데에서 그들을 데려오실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다시 빌리면,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데려오실 것입니다.
예언자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내가 많은 어부를 보내어 그들을 낚아 올리게 하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다음에는 많은 사냥꾼을 보내어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 동굴에서 그들을 사냥하게 하겠다. 그들의 모든 길이 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23
우리는 “qui omnes homines vult salvos fieri”24, 곧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손에 들린 도구입니다. 제 자녀들은 우리 정신의 참으로 관상적인 양성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을 찾고 만나고 그분과 사귀어야 한다는 필요를 영혼 깊이 느껴야 합니다. 일상의 일을 하며 겪는 수고 한가운데에서 사랑으로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수고는 지상의 관심사이지만, 정화되어 초자연적 차원으로 들어 올려집니다. 또한 자기 삶 전체를 사도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필요를 똑같이 느껴야 합니다. 사도직은 영혼에서 흘러나와 외적인 행위로 드러납니다. “Caritas mea cum omnibus vobis in Christo Iesu.”25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저의 사랑을 보냅니다.”†††††††††††
삶의 일치. 올바른 지향. 하느님의 자녀 됨
방금 쓴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업인 오푸스데이로 부르신 자녀들에게는 삶의 일치가 필요합니다. 이 삶의 일치는 동시에 두 면을 지닙니다. 하나는 우리를 관상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내적인 면이며, 다른 하나는 직업 활동을 통하여 드러나는, 눈에 보이고 외적인 사도직의 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일하고 기도하는 것이며, 거꾸로 기도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관상과 활동이라는 이 두 개념, 이 두 낱말을 구별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마음과 양심 안에서 둘은 같은 것을 뜻하게 됩니다.
토마스 성인의 말씀을 보십시오.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의 근거일 때, 영혼이 한 가지에 몰두한다고 해서 다른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이 방해받거나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 성인들은 하느님을 자신들이 행하거나 아는 모든 것의 근거로 받아들이므로, 감각적인 사물을 지각하거나 다른 어떤 것을 관상하거나 행하는 일에 몰두하더라도 하느님을 관상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26
이 삶의 일치를 잃지 않도록,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을 주님께 두도록 합시다. 우리는 “non quasi hominibus placentes, sed Deo qui probat corda nostra”27, 곧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 마음에 들도록 일해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현존을 찾아야 합니다. “Quaerite Dominum et confirmamini, quaerite faciem eius semper.”28 “주님을 찾고 힘을 얻어라. 언제나 그분의 얼굴을 찾아라.”
하루 가운데 힘겨운 순간이 찾아올 때, 슬픔이 우리 영혼에 스며들려 할 때, 살아가며 일하는 무게를 느낄 때,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Miserere mei Domine, quoniam ad te clamavi tota die: laetifica animam servi tui, quoniam ad te Domine animam meam levavi.”29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가 온종일 당신께 부르짖었습니다. 당신 종의 마음을 기쁘게 하소서. 주님, 제가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렸습니다.”††††††††††††
모범은 좋은 말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하려는 이들은 다음 성경 말씀을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모두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해야 할 것을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묶어 다른 이들의 어깨에 지우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대려 하지 않는다.’”49
우리는 다른 자리에서도 이미 말했습니다. 말과 행동, 신앙과 행실은 삶의 일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달리 행동하여 허영 때문에, 눈에 띄려고, 요란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이 말씀을 듣게 됩니다. “Omnia vero opera sua faciunt ut videantur ab hominibus.”50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야고보는 자신의 공동 서간에서 묻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덧붙입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51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인 것이, 말로만 그리스도인이고 실제로는 아닌 것보다 낫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다만 가르치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의 스승, 말씀하시자 모든 것이 이루어진 그분만이 계십니다. 그분께서 침묵 속에 이루신 일들 또한 아버지께 합당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참으로 이해하는 이는 그분의 침묵까지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침묵으로 자신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52†††††††††††††††††††††
모범을 보일 의무. 교리를 전할 의무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영역에서, 시민으로서도 모범을 보일 의무가 있습니다. 자기 의무를 이행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적 활동을 하면서 가톨릭 신자인 시민으로서 국가의 법을 최대한 존중하고 따르며, 언제나 그 법의 범위 안에서 일하고자 노력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과 고유한 양성을 받은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53 거룩한 당당함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Vir quidem non debet velare caput suum quoniam imago et gloria Dei est.54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55 그러나 과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물건을 죄다 펼쳐 놓는 잡화상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남들이 본다면 보는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Caritas Christi urget nos6.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애덕의 빛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너그러운 사랑으로, 스승님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바라보며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헤아리며 누구의 적도 되지 않으려는 열망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영혼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거의 외침과도 같은 사도의 이 말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Caritas mea cum omnibus vobis in Christo Iesu!7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애덕으로 세상에 평화와 기쁨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존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얻어 주신 자유, 곧 각 사람의 자유를 사랑하고 지켜 주면서 말입니다.8
하느님의 사업인 오푸스데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초대하기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저는 제 자녀들이 그렇게 양성되기를 바라며, 여러분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일치에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자발적인 관대함이 따라야 합니다. 이 관대함은 모든 일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충실한 군사로서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진심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온전히 진실한 마음으로, 기쁘게, 제가 가진 모든 것과 함께 저 자신을 바쳤습니다.”9†††
예레 23,8. “de terra Aquilonis et de cunctis terris”: “북녘 땅과 모든 땅에서.”(원문 편집자 번역)
예레 16,16–17.
1티모 2,4.
1코린 16,24.
† 성경 참조: 1티모 2,4; 예레 16,16–17; 예레 23,8; 1코린 16,24
1테살 2,4.
시편 105[104],4.
시편 86[85],3–4.
† 성경 참조: 시편 86,3–4; 시편 105,4; 1테살 2,4
마태 23,1–4.
마태 23,5.
야고 2,14.26.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Epistula ad Ephesios, 15장, 1–2(SC 10, 71쪽).
† 성경 참조: 마태 23,1–4; 마태 23,5; 야고 2,14; 야고 2,26
마태 5,13–14 참조.
1코린 11,7. “vir quidem non debet ... imago et gloria Dei est”: “남자는 하느님의 모습이며 영광이므로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된다.”(원문 편집자 번역)
마태 5,16.
† 성경 참조: 마태 5,16; 마태 5,13–14; 1코린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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