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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에 휩쓸려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면, 그 해악이 얼마나 클지 끔찍스럽다.
그는 완전히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자 친구와 헤어지려고 펜을 들었을 때 결심이 무너지고 용기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게 지극히 인간적이며 또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 생각에는 인간적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청하실 때, 그분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버려야 할 것 중 하나가 아닌가 보다.
언제나, 공공연히, 우리의 거룩한 신앙에 따라 살아갈 용기를 갖도록 하자.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씩씩하고 쾌활한 십자군으로 이 땅 곳곳에 평화와 행복을 전하며, 시들고 썩은 마음까지도 일으켜 세워 주님께로 끌어올릴 의무가 있다.
시기심의 싹을 잘라내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한다면 그대는 기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 친구가 내게 와서 “너가 사랑에 빠졌다더라.” 하고 말했다. 나는 매우 놀랐고, 그에게 그 소식의 출처를 물었다. 그는 행복으로 빛나는 제 눈에서 그 사실을 읽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예수님의 밝은 눈빛은 어땠을까! 주님을 태중에 모신 순간부터 주님을 찬송하며 —“Magnificat anima mea Dominum!”6— 기쁨을 걷잡을 수 없으셨던 그분 어머니의 눈빛과 같았을 것이다.
어머님! 우리의 기쁨도 당신의 것처럼, 그분과 함께이고 그분을 모시는 기쁨이기를 청합니다.
그대들은 속 좁고 근시안적인 사람, 하느님 자녀들의 그리스도적 초자연적 지평을 포용할 수 없는 미성숙한 남녀가 되지 말라. 하느님과 담대함!
담대함은 무모함도 생각 없는 경솔함도 단순한 과감도 아니다. 담대함은 영혼의 삶에 필요한 사추덕인 용기다.
그대는 타오르는 열정보다는 심사숙고로 마음을 정했다. 감흥을 바랐지만, 그럴 여지가 없었고, 하느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렸다.
그 순간부터 그대는 다시는 심각한 의문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때때로 넘쳐나는 차분하고 고요한 기쁨을 느낀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사랑의 대담함에 보답하는 방법이다.
나는 몇몇 나라에서 잘 알려진 속담을 읽고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세상은 신의 것이지만, 신은 이를 용감한 자들에게 빌려준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저는 제가 되어야 할 사도가 아닙니다. 저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사랑이 짧아서 오그라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정신 차려라!
그대를 압도하곤 했던, 거대한 산맥처럼 보였던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주님께서 바람과 물이 잠잠해지라고 명령하셨을 때처럼 하느님의 방식으로 해결된 것이다.
그대는 그때까지도 의심했었지!
“성령을 너무 돕지 마십시오!” 한 친구가 농담조로 그러나 큰 겁을 먹고 내게 말했다. 내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가 그분을 너무 적게 ‘돕는’ 것 같다.”
나는 주변 남녀에게서 그 많은 비겁함과 잘못된 신중함을 볼 때, 이렇게 묻고 싶은 열망으로 타 오른다. 믿음과 신뢰는 단지 설교용이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인가?
그대는 다소 이상해 보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때— 움츠러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를 올려볼때— 자신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그대가 자신을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표시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을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보았느냐? 그분과 함께라면, 그대는 할 수 있다! 왜 놀라는가?
확신하라. 놀라울 것이 없다. 하느님을 신뢰하면 —참으로 신뢰하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그리고 항상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거룩한 대담함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서 그대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는가? 마리아께 호소하여라. 그러면 그녀는 겸손의 길을 그대와 동행하실 것이며,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것에 직면했을 때, 그대는 땅과 하늘을 결합하는 “fiat!”, ‘이루어지소서!’로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삶에는 서로 맞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 머리와 마음이다.
신앙의 빛으로 밝아진 지성은 갈 길을 분명하게 보여 줄뿐만 아니라 그 길을 걷는 영웅적 방식과 어리석은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업의 위대함과 그 신성한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반면에 감정은 그대가 경멸하는 모든 것에 집착한다. 심지어 그대가 그것들을 경멸스럽다고 생각할 때도 말이다. 마치 수천 개의 사소한 것들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육체적 피로나 초자연적 시각의 상실 때문에 그대의 가엾은 의지가 약해지면, 그대의 상상 속으로 몰려들고 산을 이루어 그대를 짓누르고 낙담시키는 것 같다. 일자리에서의 어려움, 순종에 대한 저항심, 수단 부족, 편한 생활에 대한 환상, 크고 작은 혐오스러운 유혹, 솟구치는 감정, 피로, 영적 미지근함의 쓰라린 맛… 그리고 때로는 두려움. 하느님께서 그대가 성인이 되기를 원하시지만, 그대가 그렇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거침없이 말하겠다. 그대에게는 등을 돌릴 ‘이유’가 차고 넘치지만, 그분께서 주신 은총에 응답할 결심이 부족하다. 그대를 또 하나의 그리스도, “ipse Christus!”, 곧 그리스도 자체가 되라고 부르셨기에 주신 그 은총 말이다. 그대는 사도에게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9라고 하신 주님의 훈계, 즉 원한다면 할 수 있다는 확언을 잊었다.
고통을 비겁하게 피하는 사람들은 즐겁게 고통을 포용하는 다른 이들을 볼 때 묵상 거리가 있다.
그리스도인답게 고통을 겪을 줄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의 본보기를 따르자.
불충실한 이들은 충성하는 이들이 활동하지 않기를 열망한다.
입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냐고? 정당한 법에 대한 부당한 공격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거룩한 순결, 육체의 겸손! “주님, 제 마음에 일곱 개의 빗장을 주십시오.”라고 그대는 청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 마음을 위한 일곱 개의 빗장과 그대 젊음을 위한 여든 살의 중후함도 청하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조심해라… 불똥은 불보다 끄기 쉽기 때문이다. 날아라… 여기서는 ‘용감’한 것이 곧 저속한 비겁함이기 때문이다. 눈을 두리번거리며 다니지 말라… 이는 깨어있는 정신이 아니라 사탄의 올가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부지런함과 금욕, 고행, 규율과 단식은, 저의 하느님, 당신 없이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명예훼손에 대한 그대의 태도는 이래야 한다. 첫째, 용서하기: 모든 사람을 처음부터 마음으로 용서하라. 그런 다음, 사랑하기: 사랑에 반하는 그 어떤 행동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말라. 늘 사랑으로 응답하라!
그러나 그대 어머니인 교회가 공격받는다면 용감하게 맞서라.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불굴의 의지로, 길을 더럽히거나 가로막지 못하게 하라. 차례가 오면 개인적인 모욕은 기꺼이 용서하고 자비로이 응하고자 하는 영혼들이 가야 할 바로 그 길 말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942/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