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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경솔함과 무모함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더 어리석지 않은가?
그대는 “마침내 고해소에 가서 한 인간 앞에서 시궁창을 열어야 하는 굴욕을 맛보았다.”라고 내게 썼다. 그 헛된 자존심을 언제쯤 버릴 수 있을까? 그러면 하느님의 용서, 즉 사죄를 주시는 축성 받은 ‘그 인간’ —또 다른 그리스도, 그리스도 자신!— 앞에서 자신을 그대로 보이는 기쁨을 안고 고해성사에 갈 것이다.
언제나, 공공연히, 우리의 거룩한 신앙에 따라 살아갈 용기를 갖도록 하자.
“우리는 분파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교회 교리의 확고함 앞에서 중립적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진리를 가진 사람은 분파주의자일 수가 없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자, 그들은 자신의 실수를 이해했다.
유행을 행동의 원칙으로 삼는 것이 어리석다고 확신하려면, 오래된 초상화 몇 점만 살펴보라.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자 거동 행렬과 어머니 성교회의 모든 외적 표현을 사랑하는 그대가, 무엇보다도 여기에 참여하는 그대가 좋다.
“Ego palam locutus sum mundo”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였다.”1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실 때가 왔을 때 가야파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palam” —드러내놓고— 주님께 공경을 보이기를 부끄러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사도들이 흩어지고 성난 군중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오를 소리칠 때, 성모 마리아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아들의 뒤를 바짝 따른다. 그분은 군중의 소란에 겁먹지 않고, 군중 모두가 그리스도를 학대하려고 익명으로 비겁한 용기를 낼 때에도 구세주를 떠나지 않는다.
힘을 다해 그분을 불러라. “Virgo fidelis!” “성실하신 동정녀여!” 그리고 하느님의 친구라고 자칭하는 우리가 참으로 그리고 늘 하느님의 친구가 되기를 청하여라.
때때로 나는 하느님과 그분 교회의 소수 적들이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에 활기를 띤다고 생각하며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663/ (20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