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겸손의 필요성
저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오는 기쁨과 더불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겸손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 겸손은 희망과 넓고 큰 마음에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가장 잘 지켜 주고 보장해 줍니다. “모든 확신이 칭찬받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내려놓아야 할 만큼만 걱정을 내려놓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서만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확신이 칭찬받을 만합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확신은 용덕과 대범함의 한 조건입니다.”4
우리 각자는 성경에 나오는 저 거대한 상과 같습니다. “그 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며, 배와 넓적다리는 청동이고, 아랫다리는 쇠이며, 발은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5
우리의 인간적 토대가 이렇게 약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맙시다. 그러면 신중해지고, 곧 겸손해져서, 저 거대한 상에 일어난 일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떨어져 나와 쇠와 진흙으로 된 그 상의 발을 쳐서 부수었습니다. 그러자 쇠와 진흙과 청동과 은과 금이 한꺼번에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처럼 되었고, 바람에 날려가 그 흔적조차 남지 않았습니다.”6
자녀 여러분, 성령께서 바오로 성인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친 유혹은 인간이 겪는 보통의 유혹일 따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실하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넘어서는 유혹을 겪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유혹에서도 유익을 얻어 견디어 낼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7
“보라, 내가 바로 그대의 죄를 지워 버리고 더는 기억하지 않는 하느님이다. 보았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내가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자비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자기 죄를 기억하여 그것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바오로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하느님께서 잊으신 죄들을 언제나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또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죄인들 가운데 첫째가 바로 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였습니다.’가 아니라 ‘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그 죄들이 용서받았지만, 바오로에게는 그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워 버리신 것을 그는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그를 선택된 도구라고 부르시고, 그는 자신을 첫째가는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죄도 잊지 않았다면, 하느님의 은혜는 얼마나 잘 기억했겠습니까!”69
바오로 성인은 자신이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임을 알지만, 동시에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도 느낍니다. 여러분과 저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입니다. 저 자신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죄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더는 그분을 거스르지 않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저지른 온갖 비열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비로이 우리의 연약함을 다른 이들의 눈에 감추어 주셔서, 사람들이 우리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칭찬하며 우리가 죄인임을 모르는 듯 행동할 때, 우리는 참된 겸손으로 마음 깊이 생각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Tamquam prodigium factus sum multis: et tu adiutor fortis.”70 “저는 많은 이에게 놀라운 표징처럼 되었지만,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 저의 힘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 여러분, 겸손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첫 열두 제자의 발에 입 맞추실 때에 우리의 발에도 입 맞추셨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분은 바로 그분이시고, 우리는 있는 그대로 가련한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충실하고 겸손하면 순결하고, 극기하며, 순종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겸손할수록 더욱 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순종하러 왔습니다. ‘Non venit ministrari, sed ministrare’,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74 우리도 섬기러 왔습니다. 세례자의 말을 자주 묵상하십시오. “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75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커지고 싶다면 작아지는 데서 시작하십시오. 하늘에 닿는 건물을 세우고 싶다면 먼저 겸손의 기초를 놓을 생각을 하십시오. 세우려는 건물이 크고 높을수록 기초는 더 깊이 파야 합니다. 건물이 위로 올라가는 동안, 기초를 파는 이는 더 깊이 내려갑니다. 그러므로 건물은 올라가기 전에 먼저 낮아집니다. 그 꼭대기는 낮아진 뒤에야 솟아오릅니다.”76
자신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이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실제 가치대로 사서 그들이 스스로 매기는 값에 판다면 세상에서 가장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솔직하기는 어렵습니다. 교만은 기억을 억지로 왜곡하고 흐리게 합니다. 바로잡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악을 선으로 포장할 구실을 찾습니다. 온갖 주장과 이유를 쌓아 올려, 점점 약해지고 흐려지는 양심의 소리를 짓눌러 버립니다.
“의지는 선이나 선으로 보이는 것을 향하므로, 선하지 않은 것이 어떤 식으로든 선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결코 악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79 정욕이나 그릇된 의지는 지성을 억누릅니다. 지성이 성급히 동의하게 하거나, 마음에 거슬리는 측면은 살펴보지 않게 합니다. 그 대신 자신의 성향을 유리하게 뒷받침하고 선으로 꾸며 주는 측면들만 받아들이게 합니다.
겸손이 없으면 양심이 왜곡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깊이 겸손하지 않으면, 양심은 쉽게 왜곡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양심은 분명해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 그것을 거룩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이 적을수록 그러한 왜곡의 결과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양심을 주관적으로 달래는 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새로운 도덕의 전령, 악을 옹호하는 주장의 선교사이자 예언자로 여깁니다. 새로운 십자군의 열성으로 자신의 오류를 퍼뜨리고, 약한 이들을 뒤따르게 합니다. 그들은 이런 새로운 가르침에서 자기의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할 구실을 찾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에게는 기꺼이 받아들이는 의무인, 자신을 바로잡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된다고 느낍니다.
“너희에게 예언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마라. 그들은 너희를 속이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제 마음에서 나온 환시이지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비웃는 자들에게 ‘평화, 너희에게 평화가 있으리라.’ 하고 말한다. 또 제 마음의 악한 욕망을 따라가는 모든 이에게 ‘너희에게 아무런 재앙도 닥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한다. (…) 그들은 거짓말과 허풍으로 내 백성을 잘못 이끈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도 않았고 아무런 사명도 주지 않았으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80
이 성경 말씀을 읽고 나서 평범한 영혼으로서는 분별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확실한 기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 대한 사랑입니다. 그다음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참된 겸손을 가려내는 시금석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신학대전”(S.Th.), II-II, q. 129, a. 7 ad 2.
다니 2,32-33.
다니 2,34-35.
1코린 10,12-13.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cartas-1/2760/ (202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