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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파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교회 교리의 확고함 앞에서 중립적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진리를 가진 사람은 분파주의자일 수가 없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자, 그들은 자신의 실수를 이해했다.
사도직에 투신할 때, 그것은 언제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아주 행복하게 해주는 것임을 확신하라. 진리와 참다운 기쁨은 분리될 수 없다.
인정한다. 그대는 진실을 ‘거의’ 다 말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진실하지 못하다.
그대는 불평하고… 나는 거룩한 비타협으로 계속한다. 그대는 불평한다… 이번에는 내가 아픈 데를 찔렀기 때문이다.
그대가 내게 이렇게 쓴 것은 솔직함이 무엇인지 이해한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그것에 적절한 이름으로 부르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호칭을 찾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라. 투명하다는 것은 보이게 하는 것보다 감추지 않는 데 있다. 유리잔 밑바닥에 있는 물체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 공기를 보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숨길 것이 없도록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행동하자.
그대는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며 이렇게 결심했다. “진리를 위해 고난을 겪는 것이 나 때문에 진리가 고난받는 것보다 낫다.”
진실이 진실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무엇보다도 늘 삶의 일관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진실을 말해줄 때 기분 나빠할 것이면… 왜 묻는가?
혹시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이 그대의 진실로 답해주기를 바라는 건가?
그대는 진실을 굉장히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그대가 항상 진실로부터 그렇게 '존경스럽게' 거리를 두는 이유인가?
바보처럼 행동하지 말라. 깨닫고 사랑하고 옹호해야 할 진리를 날마다 더 잘 깨닫고, 더 사랑하고, 더 확실하게 지키려는 것은 결코 광신주의가 아니다. 반면에 —두려움 없이 말하는데— 거짓 자유의 이름으로 이 당연한 행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분파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당사자의 말은 듣지 않고 그 사람을 공격하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는 그대의 성향은 —그대는 개방성이라고 자칭하지만— 정의와는 거리가 있으며 사랑은 더더욱 아니다.
중상은 때때로 그것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그러나 이것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불명예이고… 그들은 나중에 영혼 깊은 곳에 이 무게를 지고 간다.
“험담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나 많을까요?” 그대는 괴로워하며 묻는다. 일부는 실수나 광신이나 악의에 의해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은 타성, 천박함이나 무지에 젖어 거짓 소문을 되풀이한다.
이 때문에 나는 거듭 주장한다. 칭찬할 수 없고 말할 필요가 없을 때는 침묵을 지키라!
중상의 피해자가 침묵 속에서 고통을 겪을 때 ‘망나니들은’ 대담한 비겁함으로 그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노골적인 주장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당사자와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거나 아예 할 마음이 없었다면, 그 주장을 의심하라.
조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약간의 악의를 가지고서 험담을 들음으로써, 어느 정직한 사람이나 가치 있는 단체를 반대하는 두툼한 책 열 권은 엮어낼 수 있다. 그 사람이나 단체가 효과적으로 일한다면 더욱 그렇고 그 효과가 사도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조사관들의 업무도 유감스럽지만, 그런 사악하고 피상적인 주장의 확성기가 되어주는 사람들의 태도는 더욱 불쌍하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이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면을 쓰고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적인 기준이 없고 진리를 얻지 못하며 결실을 맺지 못한다.”라고 그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우리 하느님의 자녀들은 주님께서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다.”2라고 선포하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며, 결코 그분의 캐리커처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움직이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신다. 말하자면, 각자의 이유를 뛰어넘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고 사랑 지극한 섭리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계획이 그대의 ‘중대한 이유’와 모순될지라도 반대하지 말고 주님의 ‘인도’를 받도록 하라.
배움이나 과학이 얻은 보화의 소유에 관심이 적은 일부 사람들이 다소 작위적인 과정을 통해 과학을 자기 취향에 맞게 재단하는데 열중하는 광경은 보기 안타깝다.
그러나 이 광경은 진리를 깊이 파헤치려는 그대의 노력을 배가되게 해야 한다.
연구보다 편한 것은 연구나 과학과 기술의 새로운 발견에 기여하는 이들을 반박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비평가’들이 지식과 무지한 사람들의 의견의 절대적인 주인처럼 행세하는 것까지 용납해서는 안된다.
“명확하지 않아, 명확하지 않아.” 하면서 그는 남들의 확실한 주장에 반대했다…. 그때 명확한 것은 그의 무지였다.
그대는 남에게 상처를 주고, 분열을 일으키고, 편협함을 보이는 것이 싫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 오는 입장과 요점에 —심각한 것들은 아니라고 장담하면서— 계속 타협한다.
내 솔직함을 용서하기를. 그런 행동 방식으로 그대는 그토록 싫어하는 편협함 중 가장 어리석고 해로운 종류, 곧 진리가 선포되는 것을 막는 편협함에 빠진다.
하느님은 당신의 무한하고 완전한 정의와 자비로 똑같은 사랑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자녀들을 대한다.
따라서 평등은 모두를 동일한 잣대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944/ (202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