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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과 생활에서 교회에 대한 섬김을 지위상승과 동일시하는 의견에 나는 행동이나 법 그 어떤 측면에서도 평생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말하는 기술을 오로지 높아지거나 어떤 지위에 오르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 아파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뭐든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는 올바른 의도에 인내하며 스승님께, “non mea voluntas, sed tua fiat!”2 “주님, 사랑으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거듭 청할 힘을 얻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교회와 교황과 성좌에 대한 그대의 충성심은 날마다 더욱 신학적인 사랑으로 자라야 한다!
교회를 사랑하려는 그대의 열망은 크다. 특히 교회를 훼손하려는 자들이 꿈틀거릴수록 말이다. 내게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교회는 그대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신앙이 교회와 영혼들에 대한 봉사를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젠가 순서를 뒤집어서 개인의 목적을 위해 교회와 영혼들을 사용하고 만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그 구성원 한 명의 특정 사적 또는 공적 태도와 동일시하는 오류에 절대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교의교육이 부족한 사람들이 그대 때문에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기를 빈다.
그대의 일관성과 충성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도덕과 신앙을 얘기하면서 그대가 독립된 가톨릭 신자라고 자칭할 때,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로부터의 독립인가? 그런 거짓 독립은 그리스도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
교회 교리에 있어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말라. 합금을 할 때 가장 좋은 금속이 손해보는 법이다. 게다가 그 보화는 그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하듯이, 주인은 그대가 전혀 예상치 못할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성사생활을 하고, 다른 사람 눈에는 심지어 독실해 보이며, 어쩌면 진심으로 확신에 찬 가톨릭 신자 중에 교회의 적을 순진하게 돕는 이들이 있다는 점에 그대와 동의한다.
잘 못 사용된 여러가지 이름—에큐메니즘, 다원주의, 민주주의—을 달고 최악의 적인 무지가 그들 집에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교회의 자녀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가장 큰 혼란을 일으킬 때가 종종 있다.
그대는 싸움에 지쳤다. 충성심이 없는 환경이 역겨운 것이다…. 넘어진 자를 짓밟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드니 말이다!
그대가 왜 놀라는지 모르겠다. 예수 그리스도께도 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그분은 물러서지 않으셨다. 바로 병자와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불충실한 이들은 충성하는 이들이 활동하지 않기를 열망한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3851/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