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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삶에는 서로 맞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 머리와 마음이다.
신앙의 빛으로 밝아진 지성은 갈 길을 분명하게 보여 줄뿐만 아니라 그 길을 걷는 영웅적 방식과 어리석은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업의 위대함과 그 신성한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반면에 감정은 그대가 경멸하는 모든 것에 집착한다. 심지어 그대가 그것들을 경멸스럽다고 생각할 때도 말이다. 마치 수천 개의 사소한 것들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육체적 피로나 초자연적 시각의 상실 때문에 그대의 가엾은 의지가 약해지면, 그대의 상상 속으로 몰려들고 산을 이루어 그대를 짓누르고 낙담시키는 것 같다. 일자리에서의 어려움, 순종에 대한 저항심, 수단 부족, 편한 생활에 대한 환상, 크고 작은 혐오스러운 유혹, 솟구치는 감정, 피로, 영적 미지근함의 쓰라린 맛… 그리고 때로는 두려움. 하느님께서 그대가 성인이 되기를 원하시지만, 그대가 그렇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거침없이 말하겠다. 그대에게는 등을 돌릴 ‘이유’가 차고 넘치지만, 그분께서 주신 은총에 응답할 결심이 부족하다. 그대를 또 하나의 그리스도, “ipse Christus!”, 곧 그리스도 자체가 되라고 부르셨기에 주신 그 은총 말이다. 그대는 사도에게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9라고 하신 주님의 훈계, 즉 원한다면 할 수 있다는 확언을 잊었다.
위대한 기회를 놓치고 예수님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낄 때, 이렇게 생각하라. 내게 길을 보여준 이토록 분명한, 섭리적 부르심이 어디에서 오는 건가?
이 사실을 날마다 묵상하라. 사도는 언제나 또 다른 그리스도, 그리스도 자신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대에게 내 속이야기를 계속하겠다. 나는 내 앞에 십자고상만 있어도 감히 내 고통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밝힐 수가 있다. 늘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인내한다는 것은 “per Ipsum, et cum Ipso, et in Ipso”3 사랑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를 그분이! ‘나와 함께, 나를 통해, 그리고 내 안에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대 친척과 동료와 친구들은 그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이는 일시적인 전환이 아니며 그대는 이전의 그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걱정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Vivit vero in me Christus”1 라는 말씀이 이뤄지고 있다. 이제 그대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았느냐? 어떤 하사관이나 지휘권이 거의 없는 소위가 있다. 그 앞에 장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생긴 신병이 다가오는데, 경례나 답례가 빠지지 않는다.
이와 대조되는 상황에 대해 묵상하라. 저 성당 감실에서 완전한 하느님이자 완전한 인간, 그대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다가오신다. 그런데 그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간다.
자신을 중심으로만 돌면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는가?
“사람들이 너무 급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적 사랑이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그리스도가 선포되고 있지만요.”
인정한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로서 그분과 하나 되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하는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분께서는 당신의 교리를 모든 민족에게, 모든 시대를 통해 가르쳐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대는 예기치 않게 발견한 형제애와 동료애의 정신에 열광했다. 당연하다. 그대가 그토록 강하게 꿈꿔왔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위해 조건 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우리의 사랑스러운 형제인 그리스도와 형제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저 사람의 지극히 그리스도적이지 못한 말을 듣고 매우 유감스러워했다. “원수를 용서하십시오. 그것이 그들을 얼마나 분개하게 하는지 상상도 못 할 것입니다!”
그대는 참을 수 없어 차분하게 대꾸했다. “이웃을 모욕하면서 사랑을 싸구려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스승님을 본받고자 하는 갈망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합니다.”
이 삶의 쓰라린 불의와 부딪힐 때, 정직한 영혼은 영원한 하느님의 영원한 정의를 생각하며 얼마나 기뻐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결함을 알면서도, 실현을 향한 갈망으로 바오로의 탄성을 발한다. “Non vivo ego”2,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 그리고 영원히 그러실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원하신다. 그분을 바싹 따라가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각 영혼에 성령께서 하시는 작업이다. 유순하라. 하느님께서 그대의 가엾은 육신을 십자가로 만드실 때까지 하느님을 방해하지 말라.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122/ (202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