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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 palam locutus sum mundo”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였다.”1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실 때가 왔을 때 가야파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palam” —드러내놓고— 주님께 공경을 보이기를 부끄러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크리스마스. 그대는 이렇게 적는다. “마리아와 요셉의 거룩한 기대에 따라 저도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얼마나 행복해질까를 생각하며, 한없는 기쁨으로 터질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그분과 함께 저도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대의 이 말이 진정이기를 바란다!
또 다시 예전의 같잖은 생활로 돌아간 그대! 그리고 이후 되돌아왔을 때 겸손이 부족해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대.
그대가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두 번째 부분에 대해 고집스럽게 무지하여, 여전히 도토리의 불쌍한 행복에 집착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자존심 상한 그대는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하지 않는다. 자신을 낮추면 아버지 하느님의 기쁜 환영, 즉 그대의 귀환과 부활의 축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비유에서 초대받은 이들처럼 그 장면이 반복된다. 몇몇은 두려움, 다른 일부는 직업, 상당수는 핑계와 어리석은 변명을 댄다.
그들은 저항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지겹고, 마음이 복잡하고, 의욕이 없고, 따분하고, 씁쓸해한다. 매 순간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토록 쉽지만 말이다!
“Hominem no habeo”9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아쉽게도, 쓸모 있고 또 쓸모 있어야 하는 많은 병들고 정신이 마비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주님, 제가 절대로 영혼들에게 무관심하지 않게 하소서.
세상… “그것이 바로 우리 특기죠!” 두 눈과 생각을 하늘로 향한 후, 그대는 자신의 무르익은 밭을 주인답게 걷는 농부의 확신으로 말했다.
“Regnare Christum volumus!” 우리는 그분이 이 땅을 다스리기를 원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에 따라 이스라엘의 모든 주민은 호적 등록을 해야 한다.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난다…. 주님께서 예언을 이루기 위해 율법에 대한 신속한 순종을 활용하셨다고 생각해봤느냐?
정직한 공존의 규칙을 사랑하고 존중하라. 그리고 의무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신성한 사랑의 열매인 그리스도교적 정직함을 발견하고, 하느님을 만나는 수단이 될 것임을 의심하지 말라.
예수님의 청소년기와 청년기가 그대에게도 모범이 되기를 하느님께 간구한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율법 학자들과 논쟁할 때나 요셉의 작업장에서 일할 때나.
예수님의 33년. 30년은 침묵과 어둠, 순종과 일의 시간이었다….
저 덩치 큰 청년은 내게 이렇게 썼다. “제 이상은 너무나 커서 오직 바다만이 담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리 ‘작은’ 감실은? 나자렛의 ‘평범한’ 작업장은?”
그분은 일상의 위대함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종교를 부정문 덩어리로만 보거나 반쪽짜리 가톨릭에 만족하는 이들, 주님을 벽을 향해 돌려놓거나 영혼의 한 구석으로 몰고자 하는 이들 앞에서, 우리는 말과 행위로 보여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들을 포함한 모든 마음의 진정한 왕으로 만들기를 열망한다.
직업적 출세에 대한 조급하고 무질서한 열망은 ‘남을 위한 봉사’를 가장한 자기애를 감출 수 있다. 우리는 거짓으로 —거짓, 맞다— 어떤 기회, 어떤 유리한 상황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만든다.
예수님께로 눈을 돌려라. 그분은 ‘길’이다. 그분의 드러나지 않은 시절에도 공생활을 앞당길 ‘아주 유리한’ 기회와 상황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열두 살 때 율법학자들이 그의 질문과 대답에 놀랐을 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다린다. 그분은 순종한다!
온 세상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려는 거룩한 열망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계획이 암시될 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주님께서 달리 요청하시지 않는 한, 그대 또한 순종하고 드러나지 않고 빛나지 않는 그 일을 맡을 차례임을 명심하라. 하느님은 그분의 때와 방법이 있으시다.
마리아는 사흘 밤낮으로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다. 그대와 나도 예수님을 찾으려는 우리의 마음이 쉴 줄 모른다고 할 수 있기를 빈다.
보라. 거룩한 것들을 거룩하게 보고 거룩하게 매일 실행할 때… ‘일상적인’ 것들이 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전부 인간적이었고 동시에 신적이었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156/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