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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이기심 때문에 인류의 건전하고 거룩한 안녕을 위한 공동 노력을 외면한다면, 그대가 계산적으로 행동하고 이웃의 육체적 정신적 불행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정신 차릴 수 있도록 호되게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가 형제자매인 다른 사람들을 향해 거룩한 형제애를 느끼지 않고 그리스도교라는 큰 가족과 단절된 채로 살아간다면, 그대는 불쌍한 기아 같다.
그대는 내게 이렇게 썼지. “북쪽으로 가던 한 청년이 우리 그룹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광부였습니다. 노래를 잘했고 우리 합창에 목소리를 합쳤지요. 나는 그 친구의 도착역까지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작별하면서 ‘여러분과 여행을 계속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즉시 “mane nobiscum!” “주님,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12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분의 길’의 동반자인 우리 각자에게서 ‘그분을 보도록’ 다시 한번 믿음을 가지고 간청했다.
대중들은 ‘의로운 불만의 길’로 떠났고 지금도 떠나고 있다.
마음 아픈 사실이지만, 영적 혹은 물적으로 궁핍한 이들 사이에서 우리가 너무 많은 원망을 사지 않았는가!
그리스도를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에게 다시 모시고 갈 필요가 있다. 바로 그들과 계실 때 그분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녀는 모든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구세주의 정의와 자비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계급주의자가 될 수 없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고 사도가 우리에게 썼을 때 이미 이것을 지적했고,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번역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인종, 하느님 자녀의 인종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스도의 전투에서 싸워 승리하겠다는 이상은 오직 기도와 희생으로, 믿음과 사랑으로써만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도하고 믿으며, 고통을 겪고 사랑하자!
그대가 열심히 일하고 보탬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직업적인 의무는 삶에서 적절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결코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얼마나 많은 ‘직업주의’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지!
그대가 형제자매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일의 아름다움을 이해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아만을 추구함으로써 초라하고 쓰디쓰게 만들려는 이 세상에서 그대가 더 위대하고, 더 굳건하고, 이 세상에서 가능한 만큼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언제나 그리고 모든 일에서 진정하고 분명한 형제애로 사람들과, 어떤 사람이든 마주 보며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대가 하느님을 마주 보며 산다고 장담하지 말라.
돈, 혈통, 지위, 직책, 지능 등으로 주어진 특권을 악용하여 불우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교만과 오만을 드러낸다.
나는 그대가 조직한 모임에 참석한 후, 신나서 얘기하던 저 노동자의 말에 주목했다. “나는 여기서처럼 고귀함, 정직, 친절, 관대함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놀라워하며 결론지었다. “좌파나 우파의 물질주의 비해, 이것이 참된 혁명입니다!”
어느 영혼이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온 형제애를 이해할 수 있다. 그 가르침을 변질시키지 말자!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167/ (202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