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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부님 말대로 어린 형제자매들이 ‘부드럽게 밟을 수 있도록’ 제 모든 것을 다 바치려 합니다. 이런 고생에는 너무 많은 기쁨이 있습니다!”
그대의 삶은 섬김이다. 그러나 언제나 조건 없이 충성을 다하는 섬김이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성과를 낼 것이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좋은 자질이나 재능을 주셨다면, 그것을 혼자 누리거나 과시하라고 그러신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기 위해 사랑으로 펼치라고 그런 것이다.
그대와 같은 이상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섬길 기회를 언제 다시 찾을 수 있겠는가?
그가 높은 자리까지 갈 인물이라던데, 장차 맡을 책임이 두려워진다. 그에게서 이타적 행위, 적당한 말 혹은 유익한 글 하나를 본 사람이 없다. 그는 부정적인 삶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생각다운 생각을 키운 적이 없다는 것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얼굴과 태도에는 노새의 근엄함이 묻어나 있어 신중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그가 높은 자리까지 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문해 본다. 우리가 그가 달라지도록 돕지 않는다면 그는 남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무엇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정상에 도달하는 길은 두 가지다. 그리스도교적인 길은 남을 섬기기 위해 숭고하고 당당한 노력으로 올라가고, 이교도적인 길은 이웃을 침몰시키는 낮고 천한 노력으로 올라간다.
언제나 그리고 모든 일에서 진정하고 분명한 형제애로 사람들과, 어떤 사람이든 마주 보며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대가 하느님을 마주 보며 산다고 장담하지 말라.
사소하고 초라한 개인 야망을 품은 ‘야심가’들은 하느님의 벗들이 ‘뭔가’를 ‘야망’ 없이, 남을 섬기기 위해 추구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을 잊어라…. 그대의 야망은 오직 형제자매들, 영혼들, 교회를 위해 사는 것, 한마디로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어야 한다.
가나 혼인잔치의 즐거움 속에서 오직 마리아만이 포도주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분처럼 하느님을 위해 이웃을 돕고자 하는 열정으로 산다면, 마음은 아주 작은 섬김의 섬세함까지 도달한다.
지위. 위인가 아래인가?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대는 완전한 헌신으로 도움이 되려고, 섬기러 왔다고 장담했다. 이에 알맞게 행동하라.
누군가에게 호의나 도움을 베푸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 그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또한, 표면에 머물지 말고 이 복음적 교훈을 매일 더 깊이 받아들여라. 거기에서 결론을 끌어내고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매 순간 그대의 행동을 그 요구사항에 맞춰라.
모든 사람을 향한 형제애의 의무로 그대는 ‘작은 것의 사도직’을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갈 길을 즐겁게 느끼도록, 섬기려는 열망으로 말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765/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