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행복하지 않기로 결심할 때까지 지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없다. 이것이 바로 고통, 곧 그리스도적 정신으로 겪는 십자가, 하느님의 뜻, 사랑, 그리고 세상에서의 행복과 그 이후 영원한 행복의 길이다.
“Servite Domino in laetitia!”1 기쁨으로 하느님을 섬기겠다! 나의 믿음, 나의 희망, 나의 사랑의 결과일 그 기쁨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의 말씀대로, “Dominus prope est!”2 주님께서는 나를 가까이에서 따르신다. 주님은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분과 함께 안전하게 걸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도움으로, 힘들더라도, 주님의 친절한 뜻을 이룰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반복해온 충고: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슬퍼한다.
그대는 햇살과 색채가 가득 찬 마음으로 큰 행복의 나날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대 행복의 이유는 예전에 그대를 상심하게 했던 것들과 같다!
늘 그렇다. 모든 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Laetetur cor quaerentium Dominum!”4 주님을 찾으면 마음은 언제나 행복으로 흘러넘친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삶과 신뢰에 가득 찬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얼마나 다른가! 전자는 공허한 존재로 인해 슬프고 흔들리며 변하는 상황에 바람개비처럼 노출됐지만, 후자는 초자연적 운명에 대한 절대적 확신으로 인해 즐겁고 확고하며 견고하다.
그 친구가 내게 와서 “너가 사랑에 빠졌다더라.” 하고 말했다. 나는 매우 놀랐고, 그에게 그 소식의 출처를 물었다. 그는 행복으로 빛나는 제 눈에서 그 사실을 읽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예수님의 밝은 눈빛은 어땠을까! 주님을 태중에 모신 순간부터 주님을 찬송하며 —“Magnificat anima mea Dominum!”6— 기쁨을 걷잡을 수 없으셨던 그분 어머니의 눈빛과 같았을 것이다.
어머님! 우리의 기쁨도 당신의 것처럼, 그분과 함께이고 그분을 모시는 기쁨이기를 청합니다.
그대는 유혹에서 첨벙대고 위험을 자초하고 시각과 상상력을 가지고 놀며 빈 대화를 나눈다. 그러고 나서 의심, 질책, 혼란, 슬픔과 낙담에 시달린다고 당황한다.
그대에게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날 것처럼 이기심을 좇아 슬프게 살기를 고집하는 이 세상에서,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런 많은 이들처럼 되지 말라…. 매 순간 지향을 바로잡아라!
한때 그대는 많이 ‘즐기곤’ 했다. 하지만 그대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지금, 그대의 삶 전체가 진실하고 전염성이 강한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대가 모든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그분을 더 친밀하게 대하라.
힘든 일 앞에서 그들의 기쁨을 본 저 친구는 이렇게 물었다. “이 일들을 열정으로 하는 겁니까?” 그러자 그들은 기쁘고 평온하게 대답했다. “열정이라고요? 그럴 리가요!” “Per Dominum Nostrum Iesum Christum!”1 변함 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친구는 자신이 우리의 ‘친구’ 없이 혼자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루한 적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짙은 침묵 안에서 날이 지고 있었다…. 그대는 하느님의 현존을 아주 강력하게 느꼈고 그 현실과 함께 엄청난 평화가 찾아왔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2999/ (202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