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목록
또 다른 신앙인이 내게 이렇게 썼다. “필요에 의해 고립되었을 때 형제들의 도움이 완벽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저는 종종 ‘멀리서의 동행’ ―거룩한 ‘성인들의 통공’― 이 아니었다면 저를 가득 채우는 이 낙관주의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심 어린 결심: 남들에게 친절하고 쉬운 길을 만들어주겠다. 인생은 이미 충분한 고충을 동반하니까 말이다.
그대가 남들이 늘 그대에게 신경 써주면서 살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한, 남들을 섬기려고 —숨고 사라지려고— 결심하지 않는 한, 형제, 동료, 친구와의 관계는 끊임없는 서운함과 실망과 짜증… 곧 교만의 원천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을 향한 형제애의 의무로 그대는 ‘작은 것의 사도직’을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갈 길을 즐겁게 느끼도록, 섬기려는 열망으로 말이다.
그대는 몇몇 하찮지만 뿌리 박혔던 사소한 개인 걱정거리와 환상을 힘들게 제쳤다. 그 대가로, 이제 그대의 환상과 노고의 대상이 형제자매들, 오직 그들뿐이라는 것을 그대는 확신한다. 이웃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피하라.
‘아니오’라고 하는 열 가지 방식 중에, 왜 항상 가장 기분 나쁜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가? 미덕은 상처를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사랑의 미덕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 구체적 순간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나 그대나 나나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불평 비판 뒷담화를 절대 피하라. 형제자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단호하게 피하라.
“Custos, quid de nocte!”2 경비병, 경계하라!
그대도 일주일중에 당직 서는 날을 갖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다. 자신을 더 봉헌하고, 더 큰 사랑의 경계로 세세한 일 하나 하나를 실천하고, 좀 더 기도하고 고행하기 위해서다.
거룩한 교회는 전투 태세를 갖춘 거대한 군대와 같다. 그리고 그대는 그 군대에서 공격과 싸움 그리고 반격이 펼쳐지는 ‘전선’ 하나를 지킨다. 알겠는가?
이런 준비는 그대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여 하루 하루가 당직날이 되게 해줄 것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3926/ (2026-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