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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겸손 → 겸손과 자아 포기 항이 있음.

그대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늘 중심인 것처럼 모든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가 아프다는 둥, 피곤하다는 둥, 누가 이러쿵저러쿵 했다는 둥….

그분 생각 그리고 그분을 위해 다른 사람을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는가?

그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참 어려운 일 아닌가?

슬픔과 불안은 낭비한 시간에 비례한다. 매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거룩한 조급함을 느낄 때, 자신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쁨과 평화가 그대를 채울 것이다.

걱정거리들? “나는 걱정거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일할 거리가 많아서 말이다.”

그대에게 할 일이 많아진 이제, 그대의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솔직히 인정해라. 그분을 위해 일하기로 작정했기에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시간이 남지 않는 것이다.

그대가 건물을 지탱하는 초석처럼 숨어있으려 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대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된다면… 그건 악랄한 것이다!

자신을 잊어라…. 그대의 야망은 오직 형제자매들, 영혼들, 교회를 위해 사는 것, 한마디로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어야 한다.

가나 혼인잔치의 즐거움 속에서 오직 마리아만이 포도주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분처럼 하느님을 위해 이웃을 돕고자 하는 열정으로 산다면, 마음은 아주 작은 섬김의 섬세함까지 도달한다.

그대는 그분을 따른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항상 ‘그대’의 계획에 따라 ‘그대’의 힘으로만 ‘그대’가 하려 한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다. “Sine Me nihil!” 1 “너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대가 자신의 ‘권리’라고 부르고 내가 그대의 ‘교만할 권리’로 번역한 그것을 무시했다. 가련한 이 바보! 그대를 공격하는 자가 강력해서 막지 못하고 수백 번 얻어맞는 고통을 느꼈으나, 그대는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지 않고 있다.

이제는 그대의 양심이 지적한다, 그대가 교만하고 비겁하다고 말이다. 하느님께 감사드려라. 그대가 ‘겸손의 의무’를 어렴풋이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언제나 그대, 그대, 그대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분, 그분, 그분으로 채워지고 “in nomine Domini”, 하느님의 이름과 그분의 힘으로 행동할 때까지 그대는 절대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중심으로만 돌면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