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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룩한 뻔뻔스러움’이 복음에 얼마나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지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비방받으신 예수님, 침 뱉음 당하시고 뺨 맞으신 예수님, 소인배들의 법정에 끌려가신 예수님… 그리고 침묵하신 예수님! 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뤄라.
결심: 모욕당할 때 고개를 숙이고 분명히 다가올 굴욕도 기대하면서,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신성한 임무를 계속 수행하겠다.
그대는 그 사업을 이해하고… 찬성한다. 그런데도 이에 가담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남들이 그대가 돕는 것을 보거나, 그런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한다.
사람들이 그대를 좋게 평가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하느님과 사람들이 그대에게서 더 많은 일관성을 기대할까 봐 두려운 건 아닌가?
그대는 “마침내 고해소에 가서 한 인간 앞에서 시궁창을 열어야 하는 굴욕을 맛보았다.”라고 내게 썼다. 그 헛된 자존심을 언제쯤 버릴 수 있을까? 그러면 하느님의 용서, 즉 사죄를 주시는 축성 받은 ‘그 인간’ —또 다른 그리스도, 그리스도 자신!— 앞에서 자신을 그대로 보이는 기쁨을 안고 고해성사에 갈 것이다.
‘기도’는 자신의 깊은 비천함과 자신이 지향하고 흠숭하는 하느님의 위대함을 인정하여,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기대하는 사람의 겸손이다.
‘믿음’은 자신의 기준을 포기하고 교회의 판결과 권위 앞에 엎드리는 이성의 겸손이다.
‘순종’은 하느님을 위해 다른 사람 뜻에 복종하는 의지의 겸손이다.
‘정결’은 영에 복종하는 육체의 겸손이다.
‘외적 고행’은 감각의 겸손이다.
‘보속’은 주님께 바쳐지는 모든 격정의 겸손이다.
‘겸손’은 수덕적 싸움의 길에서 진리다.
겸손이 부족하다는 분명한 표시 몇 가지를 상기시켜 주겠다.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항상 자신의 방식대로 뭐든 하려는 것;
-옳지 않을 때 논쟁하거나 옳을 때 고집스럽고 무례하게 주장하는 것;
-누구도 요청하지 않고 사랑의 의무가 아니어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
-다른 사람의 관점을 무시하는 것;
-자신의 모든 재능과 자질을 빌린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
-자신이 어떤 명예나 존경에 대해서도, 심지어 자신이 밟고 있는 땅과 소유한 물건에 대해서도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
-대화에서 자신을 예로 드는 것;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좋게 평가하거나 반박하도록 자신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
-질책을 받았을 때 변명하는 것;
-자신의 좋은 평판을 잃지 않기 위해 창피스러운 잘못을 지도자에게 숨기는 것;
-칭찬을 흡족하게 듣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좋게 말했다고 기뻐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더 높게 평가될 때 속상해하는 것;
-천한 일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것;
-자신이 돋보이려고 노력하거나, 돋보이기를 원하는 것;
-자기 자신을 칭찬하거나 자신의 정직함, 재치, 재능, 직업적 평판 등을 대화에 암시하는 것;
-특정 소유물이 없어서 부끄러워하는 것.
자신의 ‘빈약한 자질’에 대한 확신, 즉 자기 이해는 초자연적인 반응을 일으켜, 굴욕과 멸시와 비방에 직면할 때 영혼 안에 기쁨과 평화가 더욱 굳게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Fiat”,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소서.”에 이어서 그대는 이런 논리를 따라야 한다. “그렇게만 말했다고? 그는 나를 모르는 것이 분명하구나. 그렇지 않으면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겠지.”
그대는 자신이 더 나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감사를 느낄 것이고 다른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워할 것에 기뻐할 것이다.
“Memento, homo, quia pulvis es…” “기억하라, 흙에서 왔으니….”4 그대가 흙이라면 왜 짓밟히는 것이 괴로운가?
겸손의 길로 사람은 어디든 간다, 특히 천국으로 간다.
“Quia respexit humilitatem ancillae suae”,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으니….”5
나는 날마다 더욱 확신한다. 진정한 겸손은 모든 덕의 초자연적 토대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게 훈련해 주시도록 성모님께 말씀드려라.
고위직에 있는 그대가 그대 말에 귀 기울이는 이들의 침묵을 동의의 표시로 해석한다면, 경솔한 것이다. 그대가 그들이 제안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만일 그들이 뭔가를 제안하게 되면 기분 상한다는 점을 되새겨봐라. 그대는 자신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십자가에서, 자기 포기에서 승리한다. 하느님의 전능하심이 역사하시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3995/ (202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