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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그대의 초라하고 인색한 자기 봉헌이 ‘완전’해질 때까지 겸손하게 투쟁하기 시작하라.
사실이다. 우리는 무가치하고, 아무것도 아니며,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다. 일상 투쟁 속에서 장애물과 유혹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대의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순간, 그들의 ‘기쁨’은 모든 어려움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대는 하느님께 굳게 의지하는 그들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Quia Tu es Deus fortitudo mea”3 주님이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는— 쓸모없어, 제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기는 매우 쉽다. 그것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비관의 이면에는 엄청난 태만이 있다. 그대는 잘하는 것도 있고 못 하는 것도 있다. 전자에서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고, 후자에서는 낙담하지 않고 맞서서 제대로 하려 한다면, 고쳐질 것이다.
그대는 다소 이상해 보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때— 움츠러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를 올려볼때— 자신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그대가 자신을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표시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을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혁을 갈망하는가!
차라리 우리 모두 각자가 스스로를 개혁하여, 제시된 것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마음에, 죄에 대한 참된 공포를 심어야 한다. 뉘우치는 마음으로 말씀드려라. “주님,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하지만 가련한 육신과 인간 욕정의 무게를 느낀다고 놀라지 말라. ‘그런 것’이 있음을 이제야 깨닫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유치한 것이다. 그대의 약함은 장애물이 아니라 하느님과 더욱 일치하고 꾸준히 그분을 찾도록 해줄 실마리다. 그 분이 우리를 정화해주시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빈약한 자질’에 대한 확신, 즉 자기 이해는 초자연적인 반응을 일으켜, 굴욕과 멸시와 비방에 직면할 때 영혼 안에 기쁨과 평화가 더욱 굳게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Fiat”,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소서.”에 이어서 그대는 이런 논리를 따라야 한다. “그렇게만 말했다고? 그는 나를 모르는 것이 분명하구나. 그렇지 않으면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겠지.”
그대는 자신이 더 나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감사를 느낄 것이고 다른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워할 것에 기뻐할 것이다.
동상을 더 높이 세울수록 무너질 때 충격이 강하고 위험하다.
매번 더 깊은 겸손으로 영적 상담을 하러 가라. 그리고 이 또한 겸손이니, 시간을 엄수하라.
그대는 어리고 솔직한 아이라고 생각하라. 영적 상담에서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말과 글을 익히고, 꽃과 새를 알아가고, 기쁨과 슬픔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밟는 땅에 신경 쓰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저는 여전히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하고 그대는 말한다.
전에는 이 사실을 마주할 때마다 얼마나 힘들어했느냐! 하지만 지금은 무뎌지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미소 짓는 데 익숙해지고, 점점 더 큰 기쁨으로 투쟁을 새롭게 시작한다.
그대가 현명하고 겸손하다면, 배움은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인생 끝까지 배울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박식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오로지 그리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면, 모든 행위가 자연스럽고 간단할 것이다. 유일무이하고 비길 데 없는 주님과의 관계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급해, 과시에 연연할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향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들이 나의 착한 행실을 보고!” 아니, 그대는 남들이 그대의 자질을 볼 수 있도록 그 행실을 싸구려 장신구 바구니에 담고 다니는 것 같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가?
게다가 “그들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2 하신 예수님 명령의 두 번째 부분을 잊지 마라.
당사자 앞에서 그 사람을 찬양하거나 그의 자질을 칭찬하는 것은 무분별하고 유치하고 어리석다.
그러다간 허영심을 부추기고, 모든 것을 받으셔야 마땅한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빼앗을’ 수도 있다.
명예에 대한 야망을 물리쳐라. 대신 도구와 의무와 효율을 바라보라. 그러면 직분을 탐내지 않을 것이며, 만일 직분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다. 영혼들을 섬기기 위한 짐으로 말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3977/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