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이 책에는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가 1966년부터 1968년 사이에 여러 국적의 기자들과 나눈 인터뷰 가운데 일부를 모았습니다. 또한 1967년 오푸스데이 설립자가 스페인 나바라대학교에서 대학 후원회 총회를 맞아 한 강론도 실었습니다. 이 행사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포르투갈 및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 4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강론은 다른 언어로, 그러나 똑같이 분명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여러 인터뷰에서 성 호세마리아가 한 모든 답변에 흐르는 정신의 핵심적인 몇 측면을 표현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라는 이름은 현대의 《준주성범》이라고 불리는 《길》이라는 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길》은 영성 문학의 베스트셀러입니다. 1934년 《영적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이미 41개 언어로 300판이 넘게 나왔으며 발행 부수는 400만 부가 넘습니다. 사회의 매우 다양한 환경에 속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이루는 초자연적 정신이 가득한 조언들 안에서 세상 한가운데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교회의 삶을 아는 사람들에게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라는 이름은 무엇보다 곧바로 오푸스데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푸스데이는 1928년 설립된 이래 성덕이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며, 이 땅의 모든 길이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일깨워 왔습니다. 이로써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남녀가 진실하고 온전히 세속적인 헌신과 고유한 평신도 정신으로 성덕을 효과적으로 추구하고 사도직을 수행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교회 안의 사목적 현상으로서, 또 사회학적 현상으로서 오푸스데이가 지닌 중요성은 오늘날 누구에게나 분명합니다. 성 호세마리아가 1975년 6월 26일 선종했을 때 오푸스데이는 다섯 대륙에 퍼져 있었으며, 80개 국적의 회원 60,000여 명이 속해 있었습니다. 1975년 9월 15일에는 40년 동안 가장 가까운 협력자였던 알바로 델 포르티요 몬시뇰이 후계자로 선출되었습니다. 델 포르티요 몬시뇰은 오푸스데이의 확장을 계속 북돋우고 설립자의 정신을 지극히 충실하게 유지하면서, 오푸스데이의 설립 은사와 사회적 실재에 적합한 법적 형태를 갖추기 위한 작업도 이어 갔습니다. 이는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가 바오로 6세의 격려를 받아 이미 시작했던 작업입니다.
이 작업은 1983년 3월 19일, 1982년 11월 28일 자 교황령 Ut sit가 공포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가 오래전부터 바라던 대로 이 교황령을 통해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을 설립했습니다. 따라서 오푸스데이의 법적 지위는 고유한 정관과 세계적 범위를 지닌 성직 자치단입니다. 교회의 사목적·교계적 조직에 속하며 중앙 본부는 로마에 있습니다. 오푸스데이에는 자치단에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떼어 놓을 수 없는 성직자 단체인 성십자가 사제회도 포함됩니다.
이 책 전체에는 설립자가 직접 설명한 오푸스데이에 관한 여러 내용과 근본적인 법적·조직적 측면들에 대한 수많은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그 말씀들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방금 설명한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곧 당시 오푸스데이는 적합하지 않은 법적 지위에 있었고,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은 때로 이를 암시하기는 했지만, 이미 내다보고 있었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현재의 법적 형태에 맞는 용어를 쓸 수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오푸스데이와 그 성직 자치단의 신자들을 가리키는 데 ‘단체’와 ‘회원’ 같은 용어가, 단장을 가리키는 데 ‘총장’ 같은 용어가 나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첫머리의 설명 외에도 본문 여러 곳에 간략한 설명 각주를 넣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 용어를 써야 했던 이 어려움은 성 호세마리아가 지녔던 소통의 은사로 극복되었다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따라서 독자는 그의 답변에서 교회와 사회의 현재 삶에 관한 여러 분명한 판단 기준뿐 아니라, 오푸스데이의 영적·사목적·법적 실재에 관한 폭넓고 깊은 이해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의 일부 답변에서 암묵적으로 언급되는 이 기관의 현재 법적 지위를 미리 알고 있다면, 독서는 더욱 유익할 것입니다. 다음 문단들은 이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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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은 설립 때부터 고유 직권자인 단장과, 오푸스데이에 입적한 사제들로 이루어진 자치단의 성직자 곧 사제단, 그리고 자유롭게 편입한 평신도들로 구성됩니다.
자치단의 평신도들은 모든 인종과 사회적 처지의 남녀이며, 미혼자와 기혼자를 포함합니다. 건강이나 고령, 가정 또는 직업상의 사정 등에 따른 제한은 전혀 없습니다. 자치단 사제단의 사제들은 필요한 교회 학문을 이수한 뒤 성품을 받는 오푸스데이 평신도들 가운데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어느 교구에서도 사제나 사제 후보자를 데려오지 않습니다.
오푸스데이에 속한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의 성소는 동일하고 유일합니다. 그것은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성소이며, 이를 통해 각자의 다양한 상황과 개인적 신분에 맞게 동일한 수덕적·양성적 의무를 받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치단의 모든 신자는 오푸스데이가 수행하는 고유한 사도직에 온전히 참여합니다.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은 유기적이며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사목적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 고유 직권자인 오푸스데이 단장이 대리들의 도움을 받아 통치하고 지도하는 가운데, 모든 처지의 남녀 사이에서 사도직 활동을 수행합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된 평의회들이 단장의 직무 수행을 돕습니다. 각 나라에서는 지구 대리가 자치단을 이끌며, 그 통치 직무 역시 평의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단장은 자치단의 고유한 사목적·사도적 사명을 위한 직권의 통치권 또는 관할권을 지닙니다. 이 권한은 교구 주교들에게 속하는 신자들에 대한 일반 사목적 돌봄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단장 자신의 성직자들을 통치하는 것 외에도, 교회를 섬기는 데 열심히 헌신하도록 오푸스데이에 편입한 평신도들이 받는 양성과 영적·사도적 돌봄을 전반적으로 지도하는 권한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자치단에 편입하면서 받아들인 의무를 이행하는 일에 관하여 단장의 관할권 아래 있습니다.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의 신자들은 시민 사회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신분과 일 안에서 성덕을 추구하고 사도직을 수행하며,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으로의 편입은 자치단과 자유롭게 편입하기를 원하는 평신도 사이에 계약적 성격의 상호적이고 안정적인 유대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자치단은 신자들에게 지속적인 종교 교리·영적·수덕적·사도직 양성을 제공하고, 오푸스데이 사제단의 사제들을 통해 필요한 고유한 사목적 돌봄을 제공할 의무를 집니다.
한편 오푸스데이 신자들은 자치단의 개별법에 명시된 수덕적·양성적·사도직 의무를 실천하고, 오푸스데이의 삶을 규정하는 규율을 따르며, 자신의 직업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해당되는 경우 가족을 부양할 의무를 집니다. 또한 그 일을 통해 형편이 허락하는 만큼 자치단의 양성과 사도직 활동을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오푸스데이에는 교구 같은 다른 재속적 관할 구조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신자들이 있습니다. 사제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노인, 미혼자와 기혼자, 모든 사회적 처지와 정직한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오푸스데이에 편입해도 각자의 생활 신분이나 평범한 재속 신자로서의 교회법적 처지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의 사명은 두 가지 의미에서 사도적 또는 사목적입니다. 한편으로 자치단은 신자들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돌보고 지원하는 고유한 사목 활동을 수행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자치단은 사제단과 평신도가 함께, 떼어 놓을 수 없이 결합하여, 성덕과 사도직에 대한 보편적 부르심, 더 구체적으로는 일상적인 직업 활동의 성화 가치에 대한 깊은 자각을 사회의 모든 환경에 퍼뜨리는 고유한 사도직을 수행합니다.
또한 일부 오푸스데이 신자들은 비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대한 사랑과 사회를 섬기려는 바람에서 전 세계에 다양한 사도적 사업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 자체가 그들에게 고유한 사목적 도움을 주어, 그 활동의 대상자들 가운데 자유롭게 원하는 이들이 적절한 영적 돌봄을 받도록 보장합니다. 언제나 사도적 목적을 지니며 전문적이고 평신도적인 방식으로 수행되는 활동입니다. 활동이 생겨난 사회 조직 안에 온전히 뿌리내리고, 그 사회의 인간적·그리스도교적 발전에 협력합니다.
또한 오푸스데이 성직 자치단과 본질적으로, 불가분하게 결합된 성십자가 사제회가 있습니다. 그 목적은 다른 재속 성직자들 가운데 오푸스데이의 설립 은사를 널리 전하는 것입니다.
오푸스데이 단장은 동시에 성십자가 사제회의 총장입니다. 자치단에 입적한 모든 사제는 ipso iure, 곧 법 자체로 회원이 됩니다. 다른 재속 사제들도 회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그들은 각자의 교구에 계속 입적되어 오직 자기 주교의 관할권 아래 남습니다. 그 주교가 유일한 장상입니다.
성십자가 사제회는 사제들이 고유한 직무를 수행하면서 성덕을 증진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제 생활 교령과 교회법전(c. 278 §2)이 높이 평가하고 장려하는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사제회는 영적·수덕적 돌봄을 제공하며, 이는 무엇보다 사제들이 자기 직권자의 요청과 교구의 필요에 모범적으로 응할 준비를 유지하도록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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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푸스데이의 발전과 그 정신 및 사도직이 교회와 세상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여론이 오푸스데이에 보이는 관심을 설명해 줍니다. 이 관심에서 여러 잡지와 신문은 각 독자층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며 오푸스데이 설립자에게 질문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성 호세마리아는 받은 질문들에 서면으로 충분히 답했습니다.
마드리드의 잡지 《팔라브라》 편집장 페드로 로드리게스는 신학 박사이자 로마 신학원 회원이기도 했던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와 인터뷰하여, 오늘날 교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일부에 관해 그의 권위 있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가톨릭의 현재 상황, 평신도 사도직, 사람들 가운데에서의 사제의 현존, 현세에 그리스도교적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이 인터뷰에서 다룬 주제들입니다. 동시에 교회와 세상 안에서 오푸스데이가 수행하는 역할을 보여 주고, 그 정신의 일부 특징도 설명합니다. 이 긴 대화 전체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가 드러내는 교회 의식입니다. 이 의식은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가 그 시대 고유의 필요를 알아보고 사도적 정신으로 이에 대응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 태도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 것은 다원성에 대한 감각입니다. 이는 권리와 교회의 자유에 대한 존중뿐 아니라, 교회를 이끄시며 한없는 다양성으로 당신의 선물과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믿음에서 자라납니다.
첫 인터뷰에 제시된 생각들은 이어지는 세 인터뷰의 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질문들을 이해할 틀을 독자에게 제공합니다. 세 인터뷰는 각각 《타임》, 《르 피가로》, 《뉴욕 타임스》의 특파원인 피터 포배스, 자크 기예메브륄롱, 태드 슐츠가 진행했습니다. 세 기자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는 매체에 속하는 두 일간지와 한 주간지의 수백만 독자를 생각하며 질문합니다. 주제들은 시사적 관점에서 다루어지며, 국제 정치의 인물과 사건을 자주 언급합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익숙한 틀을 제공하여 영적·사도적 성격의 더 깊은 문제, 나아가 고유하게 신학적이고 교회법적인 문제까지 쉽게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로세르바토레 델라 도메니카》와 나눈 인터뷰 역시 오푸스데이의 정신과 사도직을 중심 주제로 삼습니다. 이 바티칸 주간지에 실린 긴 대화는 교회의 현재 상황이라는 관점에서 전개되며, 편집장 엔리코 추피와 편집부의 안토니오 푸가르디가 출판을 맡았습니다.
파리의 일간지 《르 피가로》 인터뷰는 1966년 5월 16일에 실렸으므로 이 책에 담긴 인터뷰들 가운데 시간상 가장 이릅니다. 피터 포배스와 태드 슐츠의 인터뷰는 여러 보도 기사를 작성하기 위한 배경 자료로 쓰였으므로 미발표 원문입니다.
또 하나의 인터뷰는 대학이라는 전문 주제를 다룹니다. 여기서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는 오푸스데이 설립자로서의 사도직 원칙뿐 아니라, 언제나 관심을 기울였고 크게 기여해 온 주제에 관한 개인적 의견도 말합니다. 그는 신학교 및 대학교성의 자문위원이기도 했던 만큼 개인적으로도, 또 오푸스데이 신자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대학에 기여했습니다. 그가 처음 추진한 사도직 활동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스페인 제2공화국 시절 마드리드의 페라스 학생 기숙사였습니다. 이것은 학생들의 전인적 양성을 이루기 위해 교육 활동을 돕는 곳으로 구상된 대학생 기숙사였습니다. 그 뒤 이런 형태의 교육기관은 매우 다양한 나라로 널리 퍼졌습니다.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교육 활동은 성 호세마리아가 대총장을 지낸 나바라대학교입니다. 1952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세계적인 명성과 영향력을 얻었습니다. 기숙사 중심의 구조, 영어권 전통과 라틴계 전통을 융합하려는 시도, 교육과 연구의 학문적 엄밀성, 학생과 교수진의 국제성을 통해 나바라대학교는 매우 중요한 경험을 보여 줍니다. 성 호세마리아가 교육 문제에 기울이는 관심을 알던 학생 잡지 《가세타 우니베르시타리아》의 편집장 안드레스 가리고는 여기에 실린 인터뷰를 이루는 일련의 질문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마지막 인터뷰는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성 잡지 가운데 하나인 마드리드의 《텔바》 편집장 필라르 살세도와 나눈 것입니다. 이 인터뷰는 폭넓은 종합적 시야와 재치 있는 세밀한 유머로 사회가 여성과 가정에 제기하는 문제들을 다룹니다. 구체적이고 다정한 말들로, 가족사회학의 원칙뿐 아니라 당면한 문제들, 가정생활, 사회적 일과 교회의 충만한 삶에 대한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까지 고려합니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가 이 인터뷰들을 했을 당시 오푸스데이의 법적 상황이 지금과 달랐다는 앞선 설명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에 담긴 글 전체를 통해 오푸스데이의 정신과 구조, 사도직 목적을 이루는 몇 측면과 설립자 인격의 특징적인 면모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의 말씀에서 두드러지는 두 가지 특징, 곧 초자연적 정신과 인간적 다정함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푸스데이 설립자와의 이 대화들에서 핵심이 되는 한 생각을 강조하며 이 책머리에를 마치고자 합니다. 바로 자유에 대한 그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자신이 믿는 이상을 지키는 사람의 끈기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한없는 능력으로 동시에 드러났습니다.
마누엘 카베요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conversaciones/intro/caegmeorie/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