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대륙에서 펼치는 오푸스데이의 사도직

오푸스데이의 내부 조직이 비밀결사의 규칙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아울러 1928년 오푸스데이를 설립하시면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신 메시지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1928년부터 성덕이 특권을 누리는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이 땅의 모든 길이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설교해 왔습니다. 오푸스데이 고유의 영성을 지탱하는 중심이 바로 일상 노동의 성화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신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교회의 사도직에서 성직자를 돕는 것뿐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이 초자연적 목적을 이루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얻어 주신 자유를 바탕으로, 각자가 인격적으로 자유로워야 하고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데에는 어떤 비밀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은 비밀을 몹시 싫어합니다. 다른 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푸스데이에 들어와도 신분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라는 팻말을 등에 달고 다니는 것은 그들에게 역겨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 태도는 평신도답지도, 세속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푸스데이 회원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이 오푸스데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를 떠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숨기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오푸스데이의 세계적인 조직 구조와 로마에서 몬시뇰께서 주재하시는 총평의회와의 관계를 간략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로마에는 남자 부문과 여자 부문에 각각 독립적인 총평의회가 있습니다(Annuario Pontificio, 1966, 885쪽과 1226쪽). 각 나라에도 비슷한 기구가 있으며, 해당 국가의 오푸스데이 지도신부가 이를 주재합니다1. 구석구석까지 촘촘히 뻗어 있는 강력한 조직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조직되지 않은 조직’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오푸스데이 책임자들의 주된 임무는 충실하고 시의적절한 신학 양성과 사도직 양성을 통해 모든 회원에게 참된 복음 정신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과 공존과 이해의 정신이며 광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다음에는 각자가 완전한 개인적 자유 안에서 행동하고, 스스로 양심을 형성하면서, 삶의 모든 상황과 자신의 가정에서 지적 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자기 일을 성화하며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추구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오푸스데이의 통치는 언제나 합의제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독재를 몹시 싫어하며, 특히 오로지 영적인 일만을 다루는 오푸스데이의 통치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사랑합니다. 그 반대는 비효율만 낳고, 자신도 일하지 않으면서 남도 일하지 못하게 하며, 아무 발전도 이루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몬시뇰의 영적 규범집인 《길》 제484항에는 “그대의 의무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앞서 드린 질문들과 관련하여 이 말은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할까요?

《길》이 규범집이라고요? 아닙니다. 저는 1934년에 그 책의 상당 부분을 썼습니다. 오푸스데이 회원이든 아니든 제가 영적으로 돌보던 모든 영혼을 위해 사제로서의 경험을 간추린 것입니다. 30년 뒤에 그 책이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나 널리 보급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들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자발적으로 그 책을 번역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정교회 신자와 개신교 신자,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들도 있습니다. 《길》은 어느 정도의 초자연적 정신과 내적 생활, 사도직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행동하는 사람을 위한 규범집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사귀고 그분을 사랑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도록 이끄는 책이 되고자 합니다. 질문하신 ‘도구가 된다’는 것은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고자 했던 것과 같습니다. 자유롭고 책임 있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 현세적 목적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영성 작가들이 영혼을 하느님 손에 들린 도구로 보는 일은 흔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푸스데이에서 스페인은 특별히 우선하는 위치에 있습니까? 더 큰 계획을 위한 출발점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여러 활동 지역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까?

오푸스데이 회원들이 살고 있는 65개 나라 가운데 스페인도 한 나라일 뿐이며, 우리 스페인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오푸스데이는 지리적으로 스페인에서 시작되었지만, 처음부터 그 목적은 보편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20년 전부터 로마에 살고 있습니다.

오푸스데이의 일부 회원들이 스페인의 공적 생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페인의 오푸스데이를 어느 정도 정치화한 것은 아닙니까?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오푸스데이와 교회 자체를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하지는 않습니까?

스페인에서도,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푸스데이의 모든 회원은 완전한 자유와 개인적 책임 아래 활동하며, 교회나 오푸스데이를 그 활동에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개인적인 활동을 하는 데 교회나 오푸스데이에 기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직과 영적 생활을 군대식으로 이해하도록 배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롭고 개인적인 활동을 집단행동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1928년부터 지치지 않고 거듭 말해 왔듯이, 현세적인 문제나 자유로운 논의가 허용되는 신학 문제에서 의견과 행동이 다양한 것은 오푸스데이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립니다. 오푸스데이 회원들 사이에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늘 있을 다양성은 오히려 올바른 정신과 깨끗한 삶, 각자의 정당한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스페인에서는 이베리아 민족에게 본래 있는 특수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에 오푸스데이의 일부가 자신의 힘을 사적 이익을 충족하는 데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런 가정이 우리 오푸스데이에서는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확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로지 초자연적 목적을 위해 모였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만일 어느 회원이 다른 회원들에게 현세적 문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강요하거나, 인간적 목적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려 한다면, 다른 회원들이 정당하고 거룩하게 반발할 것이므로 그 회원은 가차 없이 제명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오푸스데이는 모든 사회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 말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도 해당합니까? 아니면 다른 나라의 회원들은 주로 산업계와 행정계, 정계, 전문직의 지도층 같은 지식인 집단 출신이라고 보아야 합니까?

실제로 스페인과 전 세계의 오푸스데이에는 모든 사회적 처지의 사람들이 속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 노동자와 기업인, 사무직 종사자와 농민, 전문직 종사자 등이 있습니다. 성소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오푸스데이는 무엇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도직 활동은 인간의 힘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숨결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현세적인 목적을 지닌 단체라면 회원들의 수와 신분, 자질에 관한 화려한 통계를 발표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실제로 세속적 명성을 추구하는 조직들은 흔히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성화를 추구하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집단적 교만을 부추기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리스도인 전체가 겸손하기를 바라십니다.

현재 프랑스에서 오푸스데이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각 나라의 오푸스데이 통치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프랑스에서의 오푸스데이 활동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는 그 나라의 오푸스데이 책임자들에게 문의하시면 얻으실 수 있습니다. 오푸스데이가 단체로서 수행하며 따라서 그 자체로 책임을 지는 활동으로는 파리의 Résidence International de Rouvray나 그르노블의 Résidence Universitaire de L’Ile Verte 같은 학생 기숙사, 엔주에 있는 Centre de Rencontre Couvrelles 같은 모임과 연수 시설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체 차원의 활동은 부차적이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오푸스데이의 주된 활동은 회원들이 각자의 일상 업무 한가운데에서 직접 보여 주는 개인적인 증언입니다. 이것은 일일이 열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비밀이라는 유령을 떠올리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하늘을 가르는 새들이 비밀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세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계의 다른 지역, 특히 영어권에서 오푸스데이의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오푸스데이는 영국에서나 케냐에서나, 나이지리아에서나 일본에서나, 미국에서나 오스트리아에서나, 아일랜드에서나 멕시코 또는 아르헨티나에서나 똑같이 편안하게 자리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그 나라 사람들의 영혼에 뿌리를 내린 신학적이고 사목적인 현상입니다. 특정 문화나 특정 역사적 시대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영어권에서 오푸스데이는 하느님의 도움과 많은 사람들의 협력에 힘입어 여러 형태의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Netherhall House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 대학생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몬트리올의 Hudson Center는 젊은 여성들의 인간적·지적 양성을 돕고, Nairana Cultural Center는 시드니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활동합니다. 오푸스데이가 1949년에 활동을 시작한 미국에서는 시카고 도심의 한 지역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Midtown, 직업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의 교육을 위한 워싱턴의 Stonecrest Community Center, 보스턴의 대학생 기숙사 Trimount House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개별 활동에서 오푸스데이가 어떤 영향력을 갖든, 그 영향은 언제나 영적이고 종교적인 것이며, 결코 현세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곳에서 대다수 수도회, 특히 예수회와 오푸스데이 사이에 뿌리 깊은 적대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소문에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잘 모를 때 만들어 내는 신화 같은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수도자가 아니고 수도자와 비슷하지도 않으며, 세상의 어떤 권위도 우리에게 수도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푸스데이에서 우리는 수도 생활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는 존경하는 모든 수도자들이 덕과 사도직 활동과 성덕의 열매를 교회에 계속 봉헌하도록 날마다 기도합니다. 말씀하신 소문들은 그저… 소문입니다. 오푸스데이는 언제나 수많은 수도회와 수도단체의 수도자들에게서 존경과 호의를 받아 왔습니다. 특히 봉쇄 수도회의 남녀 수도자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자주 편지를 보내며, 수많은 방식으로 오푸스데이를 알려 줍니다. 그들이 우리가 거리의 분주한 일상 한가운데에서 관상 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오푸스데이 사무총장인 알바로 델 포르티요 신부는 예수회 전임 총장과 교류하며 그분을 존경했습니다. 저도 현재 총장인 아루페 신부와 교류하고 그분을 존경하며, 그분도 저를 그렇게 대해 주십니다. 만일 몰이해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 정신이 부족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질투나 분열이 아니라 일치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종교 자유를 지지하는 공의회 선언에 대해 오푸스데이는 어떤 입장입니까? 특히 ‘카스티에야 법안’이 아직 보류 중인 스페인에 그 선언을 적용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어떻습니까? 또 때때로 오푸스데이에 제기되는 이른바 ‘통합주의’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통합주의라고요? 오푸스데이는 우파도 좌파도 중도도 아닙니다. 저는 사제로서 십자가 위에서 한쪽 팔만이 아니라 두 팔을 모두 벌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각 집단에서 제 마음을 움직이고 온 인류를 향해 마음과 팔을 활짝 열게 해 주는 것을 자유롭게 받아들입니다. 각 회원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입장을 선택할 완전한 자유를 지닙니다.

종교 자유에 관해서 말씀드리면, 오푸스데이는 설립 이래 한 번도 차별한 적이 없습니다. 누구나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영혼을 지닌 존재로 보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오푸스데이는 가톨릭 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성좌의 허가를 받아,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두를 협력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양심의 자유를 옹호해 왔습니다. 폭력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설득하는 데도 이기는 데도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류는 기도와 하느님의 은총, 연구를 통해 극복해야 합니다. 결코 힘으로 할 일이 아니며, 언제나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맨 처음부터 실천해 온 정신이므로, 이 주제에 관해 공의회가 선포한 가르침이 제게 기쁨만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말씀하신 구체적인 법안에 관한 문제는 제가 해결할 일이 아니라 스페인 교계와 그 나라 가톨릭 신자들의 몫입니다. 구체적인 상황에 공의회 정신을 적용하는 일은 그들의 책임입니다.

《길》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에는 제28항의 “혼인은 그리스도의 참모부가 아니라 일반 병사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에 의아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혼인을 낮추어 보는 시각이 담겨 있으며, 이는 현대 세계의 살아 있는 현실에 참여하려는 오푸스데이의 바람과 어긋나는 것 아닙니까?

《길》의 바로 앞 항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거기에서는 혼인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소라고 말합니다. 1935년 무렵에는 그런 말을 듣기가 전혀 흔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식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비유로 저는 사도적 독신의 탁월함과 초자연적 가치에 관한 교회의 한결같은 가르침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바오로 성인의 표현대로 자신을 milites Christi, 곧 그리스도의 군사로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이해와 성덕과 평화를 위해 거룩한 싸움을 벌이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입니다. 세계 곳곳에는 오푸스데이에 속해 있거나 그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수많은 부부가 있습니다. 그들은 장군이 부끄럽게 도망친 바로 그 전투에서 병사 한 사람이 훈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몬시뇰께서는 1946년부터 로마에 거처를 두고 계십니다. 만나 뵌 교황님들의 어떤 모습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까?

제 사랑의 서열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다음은 교황님이십니다. 이 영성의 길이 여러 사람에게 이단처럼 보였을 때 오푸스데이를 승인해 주신 분이 비오 12세 교황 성하였다는 사실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1946년 로마에서 처음으로 제게 사랑과 애정을 담은 말씀을 건네신 분이 당시 몬티니 몬시뇰이었다는 사실도 잊지 않습니다. 요한 23세 교황님을 찾아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꼈던 다정하고 아버지다운 매력도 제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오푸스데이에서는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이 언제나 따뜻한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 일치 정신을 성하께 배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 요한 교황님께서는 감동하시어 웃으셨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까? 역대 로마 교황님들은 언제나, 한 분도 빠짐없이, 오푸스데이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몬시뇰, 저는 1년 반 전 팜플로나에 모인 2,000여 명이 넘는 청중의 질문에 답하시는 모습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몬시뇰께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책임 있고 자유로운 시민으로 행동해야 하며,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로 먹고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생각에 어떤 중요성을 부여하시며, 얼마나 널리 실현하고자 하십니까?

가톨릭 신자라는 이름을 하나의 직업으로 삼는 태도는 언제나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윤리 전체의 토대인 개인적 책임의 원칙을 부정하려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푸스데이와 그 회원들의 정신은 교회를 이용하지 않고, 교회와 모든 피조물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가 이름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교적 삶을 실제로 증언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성직주의를 몹시 싫어하며, 나쁜 반성직주의와 더불어 좋은 반성직주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좋은 반성직주의는 사제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며, 평신자나 사제가 거룩한 사명을 현세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데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어느 누구를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우리 오푸스데이에는 배타적인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자신의 삶을 훌륭한 봉사의 현실로 만드는 모든 이와 협력하려는 바람만 있습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특히 1928년부터 제가 이 생각들을 얼마나 널리 펼쳐 왔느냐만이 아니라 교회의 교도권이 이를 얼마나 펼치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얼마 전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De Ecclesia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 지상 사회의 온전한 시민임을 자각하고, 모든 인간 활동 안에서 전문적 역량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일하며, 세례를 받았다는 바로 그 사실로 부름받은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추구해야 한다고 일깨웠습니다. 이 가난한 사제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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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항의 주석 참조. 오푸스데이가 성직 자치단으로 설립됨으로써 그 일치는 교회법적으로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곧 남자와 여자, 사제와 평신도, 기혼자와 미혼자를 포함한 자치단 전체가 유기적이며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사목적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이 매우 분명해졌습니다. 이 공동체는 오푸스데이 단장의 통치와 지도 아래 남자 부문과 여자 부문을 통하여 사도직을 수행합니다. 단장은 대리들과 평의회들의 도움을 받아 두 부문 사이에 영성과 관할권의 근본적인 일치를 이루고 보장합니다. 그 밖에 이 답변에서 바꾸어야 할 것은 용어뿐입니다. ‘지도신부’ 대신 ‘지구 대리’라고 해야 합니다. 오푸스데이에서 지도 직무를 수행하는 정신에 관해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몬시뇰이 하신 말씀은 모두 지금도 온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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