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회에 봉사하는 대학
몬시뇰께서 생각하시는 대학의 본질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대학 교육에서 종교 교육은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대학 생활을 하고 있거나 하기를 바라므로 잘 아시겠지만, 대학은 인간의 진보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서서 기여해야 합니다. 각 민족의 삶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영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 문제 등 다양하고 복잡하므로, 대학이 제공해야 하는 양성은 이 모든 측면을 아울러야 합니다.
공동선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바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바람이 실제 결실을 맺게 하는 길은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그렇게 자신이 이룬 충만함의 열매를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남녀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짐승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고, 창조주를 알고 그분과 사귀지 않고서는 만족하지도 마음 놓지도 않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저항입니다. 종교를 공부하는 것은 근본적인 필요입니다. 종교적 양성을 받지 못한 사람은 온전히 양성된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대학에는 종교가 있어야 하며, 높은 학문적 수준에서 훌륭한 신학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종교가 없는 대학은 불완전한 대학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한 차원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 차원은 다른 차원들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요구합니다.
한편 누구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종교 교육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앙에 일관되게 살려면 이 분야에서 충실한 양성을 받아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음을 압니다. 따라서 종교적 교양, 곧 자신이 그에 따라 살고 모범과 말로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는 교리 지식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교육의 민주화, 곧 모든 사회 계층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특히 중요한 관심사이며, 사회적 영향이나 기능이 없는 대학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몬시뇰께서는 이 민주화를 어떤 의미로 이해하시며, 대학은 사회적 기능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습니까?
대학은 학생들에게 봉사의 정신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직업 활동과 시민으로서의 행동으로 공동선을 증진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정신입니다. 대학생들은 책임감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한 건전한 관심, 그리고 그 문제에 맞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도록 이끄는 너그러운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학생에게 길러 주는 것이 대학의 과제입니다.
능력을 갖춘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출신이나 경제적 형편, 인종이나 종교와 관계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장벽이 존재하는 한 교육의 민주화는 공허한 말에 그칠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학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장차 직업 활동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도록 양성해야 합니다.
많은 학생들은 세계 곳곳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받거나 빈곤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보며 연대감을 느끼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려 합니다. 오늘날 이 젊은 지식인들에게 어떤 사회적 이상을 제시하시겠습니까?
그 이상은 무엇보다 일을 잘 해내는 현실과 대학 시절에 적절한 학문적 준비를 갖추는 데 있습니다. 이 토대가 있으면 세계 곳곳에는 일손을 필요로 하며 개인의 힘겨우면서도 희생적인 노력을 기다리는 곳이 수없이 많습니다. 대학은 졸업 뒤 학업으로 얻은 혜택을 이기적으로 누리기만 하는 사람을 길러서는 안 됩니다. 이웃을 너그러이 돕고 그리스도교적 형제애를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이런 연대는 종종 말이나 글로 하는 표현에 그치며, 때로는 무익하거나 해로운 소동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봉사의 행동으로 연대를 가늠합니다. 스페인과 다른 나라의 학생들 가운데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드는 일을 포기하고, 교육·돌봄·사회 사업 등의 직업 활동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바친 수많은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젊고 기쁨 가득한 정신으로, 인간적인 면에서도 그 일을 완전하게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현재 사회·정치 상황, 전쟁과 불의, 억압에 대하여 대학이라는 기관, 교수, 학생에게 각각 어떤 책임이 있다고 보십니까? 또 어떤 경우든 대학은 학생과 교수의 정치 활동이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허용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이 대화에서 제가 말하는 것은 제 의견, 곧 열여섯 살 때부터 지금 예순다섯 살이 되도록 대학과의 접촉을 한 번도 잃지 않은 한 사람의 의견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문제를 보는 저 개인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지, 오푸스데이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푸스데이는 오로지 영적인 목적을 지니므로, 모든 현세적이고 논의 가능한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려 하지도 않고 취할 수도 없습니다. 각 회원은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자유롭게 지니고 표현하며, 그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질문으로 돌아가면, 제 생각에는 먼저 정치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해 뜻을 모아야 합니다. 정치가 평화와 사회 정의, 모든 사람의 자유에 관심을 갖고 이를 위해 일하는 것을 뜻한다면, 대학에 있는 모든 사람과 대학 자체에는 그 이상을 마음에 품고 인간 삶의 중대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관심을 북돋울 의무가 있습니다.
반면 정치가 특정 문제에 대해 다른 가능하고 정당한 해결책들과 나란히 놓인 하나의 구체적인 해결책을, 반대 의견을 지닌 사람들과 경쟁하며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면, 대학은 그것을 결정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그런 문제들에 해결책을 제시할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모두의 집이며 공부와 우정의 자리입니다. 사회 안에 존재하는 정당한 다원성을 각 시대에 드러내는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한 나라의 정치 상황이, 국가 전체의 해악을 막을 합법적 수단이 없어서 대학 구성원인 교수나 학생이 양심상 대학을 정치화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정도에 이른다면, 그는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여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떤 나라에 최소한의 정치적 자유조차 없다면, 대학이 본래의 성격을 잃고 모두의 집이기를 그만두어 서로 대립하는 파벌들의 전장이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세월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사회적 정신을 형성하는 데 바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장차 지도자가 될 사람들, 곧 지금 공부하는 이들이 참으로 병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혐오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이 구체적인 정치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강의실이 되면, 학문적 평온함을 잃고 학생들이 당파적인 정신을 갖도록 양성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학과 나라는 어떤 형태이든 전체주의라는 만성적인 병폐를 언제나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대학이 정치의 자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모든 시민에게 정상적인 정치 참여의 통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제하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두고 싶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것을 바랍니다. 이 점에 관한 제 의견은 매우 구체적이지만 더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제 사명은 정치가 아니라 사제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제게 이야기할 몫이 있는 부분입니다. 저 자신을 대학인으로 여기며 대학에 관한 모든 일에 깊은 열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를 하지 않고, 하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법학자이자 신학자로서의 제 사고방식,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은 언제나 모든 사람의 정당한 자유를 옹호하도록 저를 이끕니다.
현세적 문제에서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교의를 강요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구체적인 문제든 해법은 충분히 연구한 다음, 양심에 따라 개인적 자유와 개인적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학생 단체나 학생 조합이 맡아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학 당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합니까?
매우 폭넓은 문제에 관한 판단을 요청하시는군요. 따라서 세부 사항에 들어가지는 않고 몇 가지 일반적인 생각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에 학생 단체는 대학 고유의 과제에 참여해야 합니다. 동료들이 자유롭게 선출한 대표들이 있어야 하며, 그들은 하나의 공동 과제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대학 당국과 소통해야 합니다. 여기에도 참된 봉사를 할 또 하나의 좋은 기회가 있습니다.
이 과제가 효과적이고 정의로우며 합리적으로 수행되도록 방식을 정하는 규정이 필요합니다. 안건은 충분히 준비하고 숙고한 것이어야 합니다. 제안하는 해결책을 충실히 연구하고, 반대를 만들려는 열망이 아니라 건설하려는 바람에서 내놓는다면,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내적 권위를 갖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해 단체 대표들은 진지한 양성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 다른 이들의 자유를 사랑하고, 그다음 자신의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사랑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돋보이기를 바라거나 자신에게 없는 권한을 멋대로 차지해서는 안 되며, 대학의 선, 곧 동료 학생들의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유권자들도 자신들의 모교가 효과적으로 역할을 하는 것과 무관한 이유가 아니라 그런 자질을 보고 대표를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학은 평화의 집이자 차분하고 고귀한 탐구심의 안식처가 되어 모든 이의 공부와 양성을 도울 것입니다.
교육의 자유를 어떤 의미로 이해하시며, 어떤 조건에서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이 점에서 국가에는 고등교육에 관한 어떤 권한을 남겨 두어야 합니까? 자율성이 대학 조직의 기본 원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율 체계가 기초해야 할 주요 원칙들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교육의 자유는 일반적인 자유의 한 측면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도덕적으로 정당한 모든 일에서 개인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든 수준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곧 능력을 갖춘 모든 개인이나 단체가 동등한 조건 아래 불필요한 장애 없이 교육기관을 설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의 역할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교육 구조가 매우 다른 나라들을 예로 들면 독일과 영국, 일본과 미국의 경우가 서로 다릅니다. 국가에는 명백히 진흥과 관리, 감독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민간과 국가의 교육 사업에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감독한다는 것은 장애물을 만들거나 자유를 막고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의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율성은 교육의 자유를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대학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살아 있는 몸의 기관이 지니는 독립성을 가져야 합니다. 공동선을 위한 자신의 고유한 과제 안에서 자유를 지녀야 합니다.
이 자율성을 실제로 실현하는 방식에는 교수진과 행정 책임자를 선택할 자유, 교육과정을 정할 자유, 자체 재산을 형성하고 관리할 가능성 등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학이 자기 생명을 누리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입니다. 이 자기 생명을 지니면 사회 전체의 선을 위해 그 생명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대학 교수직의 종신제 성격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견의 흐름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스페인 교수진의 높은 학문적·인간적 수준을 인정하면서도, 저는 자유 계약제를 더 선호합니다. 자유 계약제는 교수에게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주지 않으며, 교수가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자기 전문 분야에서 발전하도록 자극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수직을 봉사의 자리가 아니라 사유 영지처럼 여기는 일도 막아 줍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종신 교수직 제도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그 제도 아래에서 매우 유능한 교수가 자신의 자리를 진정한 대학 봉사의 자리로 삼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유 계약제는 그런 사례가 더 많아지도록 하여, 사실상 모든 교수가 그렇게 되는 이상에 이르기 쉽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교회의 학교’, ‘가톨릭 학교’, ‘교회 대학’ 같은 개념이 낡은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런 개념들이 교회를 부당하게 끌어들이거나 특권처럼 들린다고 보시지는 않습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학교나 가톨릭 학교 등을 교회와 수도회, 수도단체가 교육기관을 세울 권리의 결과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교나 대학을 세우는 일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기관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특권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입니다.
공의회는 종교적 성격을 지닌 교육기관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선언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교육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현존하는 다른 방식도 있음을 보여 주려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더욱 필요하고 보편적인 이 방식은 오푸스데이 회원들이 오랫동안 실천해 온 것으로, 교육을 직업으로 삼는 가톨릭 시민들이 국가가 설립한 기관 안팎에서 자유롭게 주도하는 활동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평신도 사도직의 풍요로운 결실을 얼마나 깊이 의식하는지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가톨릭 학교’, ‘교회의 학교’ 같은 표현에 호감이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겠습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은 존중합니다. 이름보다 열매로 실체가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어떤 학교가 다른 학교들과 다름없이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절실한 사회 정의를 증진하며, 그리스도교적 양성을 포함한 전인적 양성을 수행한다면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인 학교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이름은 부차적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수식어를 피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나바라대학교의 대총장으로서, 대학을 설립하시게 된 원칙들과 현재 스페인 대학 체계에서 이 대학이 지닌 의미에 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바라대학교는 여러 해 동안 기도한 끝에 1952년에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기쁩니다. 교육의 사명을 깊이 자각하던 교수들의 문화적·사도적 이상이 구현되는 대학을 세우겠다는 열망에서였습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다른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심각한 교육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잘 준비된 인재를 필요로 하는 스페인과 다른 많은 나라의 교육 문제입니다.
설립을 시작한 이들은 스페인 대학 사회의 외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세비야, 산티아고, 그라나다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공부하고 가르친 교수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긴밀한 협력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감히 이웃한 대학들 사이보다 더 긴밀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습니다. 교수들의 교류와 방문, 함께 연구하는 전국 학술대회 등이 자주 이루어집니다. 다른 나라의 가장 뛰어난 대학들과도 같은 교류를 유지해 왔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르본과 하버드, 코임브라, 뮌헨, 루뱅의 교수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 이를 확인해 줍니다.
나바라대학교는 또한 대학 교육이 경제적 형편과 무관하게 공부할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을 때 국가 발전의 근본 토대가 된다고 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모으는 통로가 되어 왔습니다. 나바라대학교 후원회는 실제로 아낌없는 기여를 통해 이미 많은 장학금과 학업 지원금을 지급해 왔습니다. 그 수는 아프리카·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출신 학생들의 유입과 함께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나바라대학교가 부자들을 위한 대학이며, 그러면서도 국가에서 거액의 보조금을 받는다고 썼습니다. 첫 번째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우리도 학생이고 동료들을 알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보조금은 어떻습니까?
언론에 보도되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있습니다. 나바라대학교의 학비는 다른 대학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학업을 위해 재정 지원을 받는 대학생 수는 국내 어느 다른 대학보다 많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수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회적 기회 확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스페인 밖 대학보다 더 높은 비율, 적어도 비슷한 비율에 이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나바라대학교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훌륭하게 운영되는 모습을 보고 주목하며, 엄청난 재정 자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때는 물질적 자원만으로 어떤 일이 활기 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는 점을 간과합니다. 이 대학의 생명력은 무엇보다 교수와 학생, 직원과 관리인, 그리고 청소 일을 하는 이 복되고 지극히 사랑스러운 나바라 여성들, 모두가 대학에 쏟아 온 헌신과 열정, 노력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대학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재정적으로 대학은 지원금으로 운영됩니다. 우선 운영비를 위한 나바라 자치 지방의회의 지원이 있습니다. 또한 많은 나라의 지방자치단체가 통상적으로 하는 것처럼,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팜플로나 시청이 토지를 제공한 일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고등교육을 받을 가능성을 열어 주는 현대적 대학이 있다는 것이 나바라 같은 지역, 특히 팜플로나에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러분이 직접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국가 보조금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스페인 국가는 나바라대학교의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학생 정원을 마련하기 위한 일부 보조금을 지급한 적은 있습니다. 이는 새 시설에 요구되는 큰 재정 부담을 덜어 줍니다.
또 하나의 수입원, 특히 고등 산업공학학교의 재원으로는 기푸스코아의 여러 기관, 그중에서도 기푸스코아 지방저축은행이 있습니다.
대학의 초기부터 스페인 국내외의 공공·민간 재단들이 제공한 도움은 특히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산업공학학교의 과학 장비 구입을 위한 미국 정부의 상당한 공식 기부금, 새 건물 계획에 대한 독일 구호 단체 Misereor의 지원, 암 연구를 위한 우아르테 재단의 기여, 굴벤키안 재단의 지원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도움도 있습니다. 스페인 안팎에서 자신의 형편이 허락하는 만큼 대학을 유지하는 데 협력하는 모든 사회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입니다. 그중 많은 이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협력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돕는 기업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듣고 돈이 남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바라대학교는 여전히 적자입니다. 더 많은 사람과 재단이 도와주어, 이 봉사와 사회적 기회 확대의 과제를 더욱 폭넓게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푸스데이의 설립자이자 세계 곳곳의 다양한 대학 기관을 추진하신 분으로서, 오푸스데이가 그런 기관들을 세우게 된 동기와 이 교육 단계에서 오푸스데이가 기여하는 주요 특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오푸스데이의 목적은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과제와 날마다 하는 일을 성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론으로도 실제로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일을 버리지 않고도 거리 한복판에서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푸스데이의 가장 중요한 사도직은 회원들이 모든 환경과 모든 나라에서 각자 직업 활동을 인간적으로 최대한 완전하게 수행하면서 하는 사도직입니다. 제 개인적인 잘못과 각자가 지닐 수 있는 잘못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오푸스데이에는 약 70개 나라의 모든 인종과 사회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오푸스데이는 단체로서, 회원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아닌 경우도 많은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단체 차원의 활동을 추진합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세계가 마주한 수많은 문제의 해결에 기여하려고 합니다. 교육기관, 돌봄 시설, 사회적 발전과 직업 역량 향상을 위한 시설 등입니다.
말씀하신 대학 기관들도 이런 과제의 또 다른 한 부분입니다. 그 특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위한 교육입니다. 자유와 책임이 있으면 즐겁게 일하고 결실을 거두며, 통제나 감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두 자기 집처럼 느끼므로 간단한 시간표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다음은 어떤 차별도 없는 공존의 정신입니다. 사람은 함께 사는 가운데 성장합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려면 다른 이들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적 형제애의 정신입니다. 자신의 재능은 다른 이들을 섬기는 데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별 쓸모가 없습니다. 오푸스데이가 세계 곳곳에서 추진하는 단체 차원의 활동은 언제나 모든 사람을 섬깁니다. 그리스도교적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나바라대학교 학생들과의 모임에서 학생과 대학에 관한 책을 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출간까지 오래 걸릴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예순이 넘은 노인에게 이 작은 허영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그 책이 나오고 교수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적어도 제가 대학에 품고 있는 사랑을 모두 담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대학에 발을 들여놓은 그토록 오래전부터 한 번도 잃지 않은 사랑입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책은 나올 것입니다. 저는 다른 때 나바라 학생들에게 캠퍼스 한가운데에 성모상을 모셔 그곳에서 여러분 젊은이들의 깨끗하고 건전한 사랑을 축복해 주시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그 성모상이 오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왔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상으로, 교황님께서 특별히 여러분을 위해 축복해 주셨습니다.
책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리라고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거기에는 제 의견을 제시할 것입니다. 저는 저와 다른 모든 의견을 존중하듯이,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제 의견을 존중해 주리라 믿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저와 함께하지 않아도 크고 너그러운 마음을 지닌 이들을 존중하듯이 말입니다. 제게 여러 번 있었던 일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이곳 팜플로나에서였습니다. 한 학생이 제게 인사하려고 다가왔습니다.
“몬시뇰,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슬람 신자입니다.”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자네도 나와 같은 하느님의 자녀일세.” 하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그를 껴안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 언론에서 일하는 우리에게 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언론은 위대한 일입니다. 대학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동료들에게 고귀한 이상에 대한 사랑, 개인의 이기심을 극복하려는 열망, 공동 과제에 대한 관심, 형제애를 키워 주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진실을 사랑하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쪽 진실만을 말하는 일부 언론인의 선정주의가 제게 몹시 역겹다는 것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보도란 진실과 거짓 사이의 중간쯤에 머무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보도라고 부를 수도 없고 도덕적이지도 않습니다. 몇 안 되는 반쪽 진실에 수많은 오류와 심지어 고의적인 중상모략까지 뒤섞는 사람들을 언론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언론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거짓을 퍼뜨리는 어떤 조직의 다소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조직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거짓이 악의 없이도 지겹도록 되풀이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 가짜 언론인들이 오히려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들의 양심을 밝혀 주시도록 주님께 청하며 애정을 담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언론에 대한 사랑을 널리 퍼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언론은 근거 없는 소문이나 과열된 상상이 만들어 낸 ‘그렇다더라’는 이야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의도를 판단하지 말고 사실과 결과를 보도하십시오. 정당한 의견의 다양성을 공정하게 다루고 인신공격으로 떨어지지 마십시오. 참된 정보가 없는 곳에서는 참된 공존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참된 정보란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출세욕이나 허황된 명성, 경제적 이익에 이끌리지 않는 정보입니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conversaciones/oneurnar-sahoee-bosahaneun-daehag/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