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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신뢰의 사도직에서 첫걸음은 이해와 섬김…. 그리고 교리에 대한 거룩한 비타협이다.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들과 선의로, 기분 나쁘지 않게, 의견을 달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의는 항상 모두에게 갖춰라. 그러나 특히 적대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실수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할 때 —그대는 적을 두지 말라— 그렇게 하여라.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비방한 다음, 피해자가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도록 자비와 정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불행히도— 사실일까?
다른 가톨릭 신자들을 학대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입에 담는 슬픈 교회일치운동!
이 얼마나 그릇된 객관성에 대한 이해인가! 그들은 자기 결함의 왜곡된 렌즈를 통해 사람이나 일을 바라보고, 염치없이 비판하거나 충고하려고 든다.
구체적인 결심: 남을 바로잡거나 충고할 때 하느님 앞에서 말하고 그 말을 우리의 행동에 적용할 것.
다른 사람에 대한 비방적 공격을 조직하는, 언제라도 개탄스러운 방법에 절대로 의지하지 말라…. 부도덕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는 도덕적 동기를 그 명분으로 삼는다면 더욱 그렇다.
‘아니오’라고 하는 열 가지 방식 중에, 왜 항상 가장 기분 나쁜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가? 미덕은 상처를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질책? 많은 경우에 필요하다. 그러나 결함을 고치도록 가르쳐야지, 단지 그대의 나쁜 성질을 발산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누군가를 바로잡아야 할 때, 분명하게 그리고 사랑을 담고 행동해야 한다. 적절하게 입가에 미소도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절대로 독하게 하지 말라, 혹은 아주 가끔만 그렇게 하라.
그대는 선과 절대적 진리의 소유자를 자처하여,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악을 근절할 개인 자격이나 권리를 받았다고 느끼는가?
그 길로는 아무것도 고치지 못할 것이다. 오직 사랑을 이유로, 그리고 사랑으로 고쳐라! ‘사랑’이 그대를 용서했고 지금도 용서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그대는 그리스도적 자애와 인간적 품격을 이유로, 누구와도 메울 수 없는 거리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웃에게 빠져나갈 통로를 항상 열어두어 그가 진리에서 더 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폭력은 설득하는 데 좋은 수단이 아니고, 사도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폭력적인 사람은 첫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항상 패배한다…. 자신의 이해심 부족에서 비롯된 외로움에 둘러싸이고 말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의 분노와 실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대가 한 그대로, 즉 말과 행동으로 모욕하는 쾌감으로 그들이 되갚은 것이다.
이 교훈을 배우고 앞으로는 함께 사는 사람들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불필요하게 상처를 주거나, 사랑을 파괴하는 퉁명스러운 거절을 하지 않고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라.
그대는 항상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모든 것과 모든 사람, 특히 하느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데 익숙해져라.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에는 침묵하라! 날카롭거나 가벼운 말이라도 뒷담화나 중상모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청년이 자신을 하느님께 더욱 온전히 바친 후 한 말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말을 줄이고 병자를 방문하고 바닥에서 자는 것입니다.”
이 말을 그대 자신에게 적용하라.
그리스도의 사제들에 대해서는 오직 칭찬하기 위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
형제들과 내가 평소 우리 행동에서 이것을 명심하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
거짓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과묵함, 음모, 비방…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비겁한 자들의 무기다.
그대가 첫 대화나 마지막 대화에 압도당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존중과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고, 사람들을 신뢰하라…. 그러나 그대의 판단을 하느님 앞에서 걸러라.
그들은 험담을 퍼뜨리고 나서, 즉시 누군가가 그대에게 와서 ‘하더라’를 알리게 만든다. 분명 악랄하다. 하지만 평화를 잃지 마라. 그대가 정직하게 일한다면, 그들의 혀는 그대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라. “참으로 멍청하고 눈치없고, 형제들과 특히 하느님에 대한 의리가 없구나!”
그리고 그릇된 반박의 권리를 빌미로 그대도 험담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라. 만일 말을 해야 한다면, 복음서가 권고하듯이 형제적 충고를 해라.
이런 반대나 저런 구설수에 신경 쓰지 말라.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그러니 길을 가면서 먼지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거슬리고 상처주는 그것들을 그대의 정화를 위해,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이용하라.
뒷담화가 극히 인간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우리가 신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답한다.
한 사람의 악의적 혹 가벼운 말이 여론을 조성할 수 있고, 심지어 누군가를 욕하는 것이 유행하게 할 수 있다. 이어서 그 험담은 아래에서 피어올라 높은 곳에 도달해, 먹구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괴롭힘 당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일 때, 구름은 어쨌거나 축복의 비로 해소된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욕과 불명예를 안기려던 바로 그 점에서 그 사람을 들어 높이신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3218/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