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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믿음은 너무 소극적이다. 성인이 되고자 분투하는 사람의 것이라기보다 성인을 흉내 내는 사람의 것 같다.
나는 선구자로 하느님의 씨앗을 뿌리는 행운을 얻은 사람들의 초자연적이고 인간적인 기쁨을 이해한다.
“도시 전체와 그 일대를 온통 흔들어놓을 사람이 저 밖에 없다는 느낌은 근사합니다.”라고 그는 확신에 차서 말하곤 했다.
더 많은 수단이나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라. 영혼들은 오늘, 지금, 그대를 필요로 한다.
담대하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대를 비관주의자에서 낙관주의자로, 겁 많은 사람에서 대담한 사람으로, 소심한 사람에서 신앙의 사람으로, 즉 사도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그대를 압도하곤 했던, 거대한 산맥처럼 보였던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주님께서 바람과 물이 잠잠해지라고 명령하셨을 때처럼 하느님의 방식으로 해결된 것이다.
그대는 그때까지도 의심했었지!
“성령을 너무 돕지 마십시오!” 한 친구가 농담조로 그러나 큰 겁을 먹고 내게 말했다. 내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가 그분을 너무 적게 ‘돕는’ 것 같다.”
나는 주변 남녀에게서 그 많은 비겁함과 잘못된 신중함을 볼 때, 이렇게 묻고 싶은 열망으로 타 오른다. 믿음과 신뢰는 단지 설교용이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인가?
그대는 다소 이상해 보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때— 움츠러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를 올려볼때— 자신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그대가 자신을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표시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을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잘못은 오로지 네게 있다. 그런 길을 따르면 —이런 책을 읽고 저런 동료와 어울리면—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스스로를 충분히 알지 않는가?— 왜 그것이 그대의 성장을 촉진하거나 인격을 성숙시키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고집하는가?
큰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손끝의 즐거움이 줄어들지라도, 생활 계획을 근본적으로 바꿔라. 지금이 책임감 있는 사람답게 행동해야 할 적기다.
주님은 고의적인 죄를 피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많은 사람의 무심함에 크게 슬퍼하신다. “우리가 모두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에 정상인 거야!” 생각하고 그들은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잘 들어라. 그리스도를 단죄하고 죽음에 처한 군중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외치고, ‘다른 사람들처럼’ 올리브 동산에 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결국 ‘다른 모두가’ 하는 일에 밀려 물러서지 못했거나 물러서지 않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십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배우지 못했다.
그대는 조만간 그대 나약함의 증거에 틀림없이 직면하게 될 것이니, 악마가 그때 암시할 것이고 그대가 즉시 거부해야 할 몇 가지 유혹에 대해 미리 경고하고 싶다. 하느님이 그대를 잊으셨다는 생각, 그대의 사도직으로의 부르심이 헛되다는 생각, 세상 고통과 죄의 무게가 사도인 그대의 힘보다 크다는 생각….
이런 것들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
그대가 정말로 싸우고 있다면, 양심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매일 자신을 살펴라. 우리 주님을 마땅하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의 회심을 느끼는지 확인하라.
많은 사람이 착공식에 참여하면서 공사가 완성될 것인지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죄인들은 그들의 ‘이번이 마지막이야’에 속아 넘어간다.
‘끊어 버리기’에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이란 지난 번, 이미 지나간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첫 번째 회심’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는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거나 적어도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영성 생활에서는 완전한 신뢰로, 두려움이나 이중성 없이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자신이 생각과 마음에 담은 것들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 미지근하고 한심한 무기력의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그대는 거의 노력하지 않으며, 노력을 할 때는 마치 짜증나고 불편한듯이 한다. 거의 그대의 미약한 노력이 아무런 효과가 없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정당화하여 더 이상 자신이나 남이 뭘 요구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대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행하고 있다. 진정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고 찾고 있는 평화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정말로 원하려고 노력하라.
효율성의 비결이 전술에 있는 듯 모든 것을 전술로 환원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 낭비이자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전술이 애덕, 무한한 사랑이라는 것을 잊는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 사이에 벌린 연결 불가능한 간격을 하느님께서 그렇게 연결해 주셨다.
냉혹할 정도로 솔직하게, 즉 용기 있게 양심 성찰을 해라. 거울을 통해 상처받은 곳, 얼룩진 곳, 제거해야 할 결함이 어디에 있는지 바라볼 때처럼 말이다.
나는 가장 평범한 상황을 이용하여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에서 조금 또는 많이 벗어나게 하려는 사탄의 속임수에 대해 경고해야만 한다.
그대가 노력하고 있다면, 더욱이 진정으로 싸우고 있다면, 피로가 찾아오거나 어떤 영적 또는 인간적 위로 없이 억지로 가야 할 시간들이 올 때, 놀라지 말라. 얼마 전에 누군가 내게 쓴 글인데, 순진하게 은총이 인간 본성을 배제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을 위해 보관해 뒀다. “신부님, 며칠 전부터 저는 생활 계획을 수행하는 데에 지독히 게으르고 무관심했습니다. 모든 일을 억지로 그리고 아주 약한 정신으로 수행했습니다. 제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우니 이 위기가 곧 지나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랑은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스승님의 말씀을 천천히 읽어보아라. ‘Cotidie’,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4 그리고 나아가,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5 주님께서 그대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메마름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대가 그분을 더욱 사랑하도록, 오직 그분만 신뢰하도록, 십자가를 지고 구원에 동참하도록, 그분을 만나도록 하시기 위해서다.”
“악마는 그다지 영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대는 내게 이렇게 말했지. “그의 어리석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속임수와 똑같은 거짓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덜 영리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배우지 않는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그러한 모든 것에 의존한다.
큰 전투에는 신기한 현상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병력과 장비의 우세 때문에 승리가 확실하더라도, 격렬한 전투 중에 전선 한 구역의 약함으로 인해 패배가 우려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때 상부의 단호한 명령이 내려지고 어려움을 겪는 구역이 보강된다.
나는 그대와 나에 관해 생각했다. 전투에서 지지 않으시는 하느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항상 승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화를 위한 싸움에서 힘이 달린다고 느낀다면, 지시에 귀 기울이고 들은 바를 행하여 도움을 얻어라. 그분은 실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느님 면전에서 말하며 진실하게 지도자에게 마음을 열어 보였다…. 그리고 그대가 회피하려는 시도에 스스로 적절한 답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영적 지도를 사랑하자!
때때로 그대는 자신의 행동의 근원까지 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한 전선의 변화일 뿐이다. 곧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영적 지도에서 받은 지침들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그대는 성인이 되어야겠다는 긴박감과 ‘고정관념’을 더 강하게 느꼈고 망설임 없이 매일의 투쟁에 뛰어들었다. 편리주의의 모든 증상을 용기 있게 뿌리 뽑아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 다음 기도에서 주님과 대화하던 중, 투쟁은 사랑과 동의어라는 것을 더 명확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싸울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올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더 큰 사랑을 그분께 요청했다.
“Felix culpa!” 10라고 교회는 노래한다. 그대가 자신의 잘못을 계기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고, 그대보다 못하지 않은 이웃을 더 잘 이해하고 돕는다면, 그 잘못은 복되다고 나는 그대 귀에 대고 따라 말한다.
유혹을 뿌리친 후에 그대가 이렇게 물었다. “주님, 제가 설마… 저 사람일 수가 있나요?”
네 병력을 요약해보겠다. “나는 여기서 넘어지고 저기서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후자다. 달팽이 속도로 가더라도 그 내적 싸움을 계속해라. 앞으로!
아들아, 싸우지 않으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수렁은 또 다른 수렁을 부른다.
그대는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한다. 그대에게서 묵은 때와 새로운 때를 발견한 것이다. 그대는 온갖 악한 본능과 경향을 매우 생생하게 느끼며 마음에는 불확실성이라는 구름이 끼어 있다. 게다가 가장 원하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할 때, 피로로 인해 의지가 약해질 때, 유혹을 느낀다.
그대는 이런 자신을 보는 것이 더 이상 창피한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그분을 위해, 그분 사랑 때문에 아파해야 한다. 이 사랑의 뉘우침이 그대가 깨어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싸움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한 자기 봉헌—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그대 열망은 참으로 크다!
그대의 많은 약함과 불충함을 주님 손에 맡겨라. 이 것이 그것들의 무게를 덜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쇄신은 느슨함이 아니다.
피정. 하느님과 자신을 앎으로써 발전하기 위한 침잠의 시간. 어디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바꿔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지난해에 일어났던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피정이 어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그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주 잘 쉬었습니다.”
침묵과 강렬한 은총의 나날.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 보고 드리는 기도.
나는 나이와 연륜이 깊지만, 신성한 손길에 자신을 열고 자신의 삶을 쓸모 있게 바꿔, 과거의 모든 실수와 놓친 기회를 지울 가능성에 흥분한 어린이처럼 반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감사 기도를 쏟아냈다.
그 장면을 기억하며 그대에게 당부했다. 기도생활에서의 싸움을 게을리하지 마라.
“Auxilium christianorum!” 신자들의 도움! 로레토의 동정 마리아 호칭기도는 이렇게 외운다. 그대는 어려운 시기에 이 화살기도를 바치려고 노력했는가? 믿음으로, 자녀다운 애정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대를 승리로 이끌 성모 마리아의 전구의 힘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 성격의 거친 부분, 그대의 이기심, 그대의 편안함을 쫓는 마음, 그리고 그대의 비호감에 맞서 싸워라. 우리는 공동 구속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외에도 그대가 받게 될 상은 —잘 생각해보라— 그대가 심은 것과 직접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대는 탁월한 이론가로 비친다. 하지만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들에서조차 양보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의 고행 정신을 믿지 않는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258/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