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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려워요.” 그대는 낙담하며 외친다.
그대가 고군분투한다면 하느님의 은혜로 충분하다. 그대는 개인 이익을 제쳐두고 하느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거리 공장 작업장 대학 사무실 자신의 환경과 지인들 가운데서, 즉 오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교회를 돕게 될 것이다.
유행을 행동의 원칙으로 삼는 것이 어리석다고 확신하려면, 오래된 초상화 몇 점만 살펴보라.
대화를 나누다가, 그는 하늘의 별보다 자기 마구간의 들보를 세는 것이 좋아 자신이 사는 오두막에 머무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하늘을 향해 눈을 들기 위해 사소한 것들을 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더 높은 시야를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대의 소명은 하느님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이 땅의 것들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그분께 돌려드리기 위해서다.
이념적으로 그대는 매우 가톨릭적이다. 그대는 기숙사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미사가 12시에 있지 않고, 수업이 오후에 있어 저녁 식사 후 코냑 한두 잔을 마시며 공부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 이런 그대의 ‘천주교’는 진실과 일치하지 않으며 단순한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그대 나이에 그런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걸 모르겠느냐? 그대의 편안함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남들의 필요와 주변 현실에 맞춰라. 그러면 그대는 ‘천주교’를 진지하게 생활화할 것이다.
어느 성당에 성인상을 기증했던 사람이 말했다. “이 성인의 모든 것은 제 덕분입니다.”
단순한 풍자라고 생각하지 말라. 적어도 그대의 행동으로 볼 때, 그대 또한 펜던트 몇 개 착용하고 판에 박힌 듯한 신심 관습을 실천한다고 하느님께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자주 많은 사람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신자가 그저 좋은 가톨릭 신자일 것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반대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5137/ (202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