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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나 사도직에 대해 말할 때, 변명을 댈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 미덕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대신, 영적 왜곡과 비겁함이 넘쳐나서일 것이다.
공격적인 목소리가 유일한 힘인 적에게 겁먹은 자처럼 행동하지 말라.
그대는 그 사업을 이해하고… 찬성한다. 그런데도 이에 가담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남들이 그대가 돕는 것을 보거나, 그런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한다.
사람들이 그대를 좋게 평가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하느님과 사람들이 그대에게서 더 많은 일관성을 기대할까 봐 두려운 건 아닌가?
“저는 제가 되어야 할 사도가 아닙니다. 저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사랑이 짧아서 오그라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정신 차려라!
사도적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때 ‘아니오’는 결코 최종 답이 아니다. 거듭 시도하여라!
그대는 지나치게 ‘신중’하면서 그다지 ‘초자연적’이지는 않기에 지나치게 약기도 하다. 스스로 문젯거리를 만들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라.
어쩌면 그대 말을 듣는 사람은 그대보다 덜 약고 더 관대하고 하느님께 의지하기 때문에 그리 많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어떤 행동 방법들은 그냥 소심한 방법들인 것이다.
확신하라. 하느님을 위해 일하면,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이 없고 포기하고 말 낙담도 없으며, 결과가 없을지라도 실패는 아니다.
그대의 믿음은 너무 소극적이다. 성인이 되고자 분투하는 사람의 것이라기보다 성인을 흉내 내는 사람의 것 같다.
침착함과 담대함!
이 덕으로써 제5열의1 미적지근한 자, 소심한 자, 반역자들을 참패시켜라.
그대는 쉬지 않고 싸우고 싶다고 나를 안심시켰지만, 이제 침울한 얼굴로 내게 온다.
보라. 인간적으로 봐도 모든 것을 거저 받는 것은 좋지 않다. 많은 것들이 그대에게 달려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성인이 될 수 있겠는가?
그대 말로는 그 초자연적 사업에 자신을 던지지 않는 이유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를까 겁나서이다.
하느님을 더 생각한다면, 이러한 엉뚱한 이유는 사라질 것이다.
때때로 나는 하느님과 그분 교회의 소수 적들이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에 활기를 띤다고 생각하며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다.
담대하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대를 비관주의자에서 낙관주의자로, 겁 많은 사람에서 대담한 사람으로, 소심한 사람에서 신앙의 사람으로, 즉 사도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자연스러움 성실 기쁨. 사도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조건이다.
예의는 항상 모두에게 갖춰라. 그러나 특히 적대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실수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할 때 —그대는 적을 두지 말라— 그렇게 하여라.
그대는 왜 사도직의 환경과 수단이 추악하고 더럽고 복잡해야 하느냐고 분개하며 물었다. “어차피 같은 비용이 들 텐데!”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나는 그대의 분노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난한 자와 부자, 현명한 자와 무지한 자, 행복한 자와 슬픈 자, 젊은이와 노인 등 모두에게 말하고 모두를 끌어들인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모습은 참으로 친절하고 자연—초자연—스럽다!
그대가 베푸는 호감 어린 대우의 매력은 양적 그리고 질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사도직은 생기 없고 폐쇄적인 모임에서 소멸될 것이다.
그대에게 지적인 대화자의 유쾌한 매너가 없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그대는 매우 무심하다. “남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는 한…”이라며 그대는 변명한다.
그대가 변하지 않는다면, 구체적으로 말해 그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마중 나가지 않는다면, 그대는 결코 효과적인 사도가 될 수 없다.
명심하라. 그대의 사도직은 선의, 빛, 열정, 관대함, 희생정신, 일에서의 꾸준함, 공부에서의 깊이, 자기 봉헌의 폭, 시의성, 교회에 대한 절대적이고 즐거운 순종, 그리고 완성된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줄 수는 없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3152/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