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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변함없이 그대에게 보이는 부모의 다정함을 감사하라.
언제나 위대한 모험을 꿈꿔온 그대는 그대를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엄청난 사업에 헌신했다.
거듭 말한다. 사도직의 삶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라.
다양한 나라와 인종, 매우 다른 환경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느님 이야기를 할 때, 그대는 그대 사도 성소의 인간적 그리고 초자연적 가치를 체감한다. 마치 주님 제자들의 첫 설교의 기적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 같다. 낯선 언어로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말을 각자가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언어로 듣는다. 그리고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1이 기뻐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장면이 새로운 생기를 띠며 그대 생각을 스쳐간다.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께서 첫 열두 사도를 부르신 방식은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었다.
그 일을 계속하지 않으려고 많은 핑계를 찾는 그대에게 손에 장갑처럼 딱 맞는 생각이 있다. 저 첫 사도들의 인간적 지식은 빈약했지만, 그들은 관중을 얼마나 감동하게 했는가!
절대로 잊지 말라. 우리 각자를 통해 여전히 그분이 일하고 계신다.
자기 봉헌에 대해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꺼냈다고 그들이 분개하는가? 어쩌겠는가? 그대는 사도를 부르는 사도의 소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 소명의 사도적 깊이를 날마다 파고들어라. 그분은 이천 년 전, 진실한 마음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이들을 위한 집회 깃발을 세우셨다. 그대와 내가 그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할 수 있도록 말이다. “Ignem veni mittere in terram”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8라고 하신 말씀, 또는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25억 명의 영혼에 대한 생각보다 더 분명한 호소가 있겠는가?
사도로서 그대의 임무는 위대하고 아름답다. 그대는 은총과 인간 자유가 교차하는 곳에 있으며, 몇몇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엄숙한 순간, 즉 그들이 그리스도와 만나는 순간에 참여한다.
확신하라.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구체적이고 급박한 질문을 안고 우리에게 몰려올 수많은 사람들을 대응하기 위해, 잘 준비해야 한다.
그대의 소명, 곧 하느님의 부르심은 인도하고, 끌고, 섬기고, 이끄는 것이다. 그릇되거나 잘 못 이해한 겸손으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한 구석에 처박힌다면, 하느님 도구로써의 의무에 실패하는 것이다.
주님은 섬세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즉 우리가 그 분을 위해 세상을 정복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언제나 겸손하신 그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셨다…. 우리에게는 가장 쉽고 즐거운 부분, 즉 행동과 승리의 부분을 맡기셨다.
세상 한복판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 스스로를 선하거나 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그대… 그대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대가 누리는 기쁨을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끊임없는 열망을 느껴야 한다.
세상의 소금.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즉 그대와 나에게도, 면역을 키우고 부패를 막으며 세상에 맛을 더하기 위한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Quod si salt evanuerit…”1 만일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라고 덧붙이셨다.
이제 우리가 탄식하는 많은 사건들 앞에서 설명되지 않던 것이 설명되는가?
사도는 어중간한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느님은 그를 인간성과 영원한 새로움의 전달자로 행동하도록 부르신다. 그 이유로 사도는 인내심을 갖고 훌륭하게 오랫동안 다듬어진 영혼이어야 한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3153/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