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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지키는 일이 위태로울 때 어떻게 신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주변과 충돌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 둘은 상반된다. 전자 아니면 후자다! 희생은 완전한 번제가 돼야 한다. 모든 것을 불살라 버려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비평, 우리가 평판이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나는 ‘거룩한 뻔뻔스러움’이 복음에 얼마나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지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비방받으신 예수님, 침 뱉음 당하시고 뺨 맞으신 예수님, 소인배들의 법정에 끌려가신 예수님… 그리고 침묵하신 예수님! 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뤄라.
결심: 모욕당할 때 고개를 숙이고 분명히 다가올 굴욕도 기대하면서,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신성한 임무를 계속 수행하겠다.
그대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늘 중심인 것처럼 모든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가 아프다는 둥, 피곤하다는 둥, 누가 이러쿵저러쿵 했다는 둥….
그분 생각 그리고 그분을 위해 다른 사람을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는가?
처음의 열정이 지나자, 의문과 망설임과 두려움이 시작되었다. 그대는 공부, 가족, 경제적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어쩌면 자신이 무능하고 인생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걱정스럽다.
그 두려움들을 —악마에게서 또는 그대의 관대함의 부족에서 비롯된 유혹들이다!— 극복하는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것들을 ‘무시’하라. 마음에서 그 기억들을 치워라. 스승님께서는 이천 년 전에 이미 “얼굴을 돌리지 말라!”3고 확고하게 설교하셨다.
만일 그대의 상상이 그대를 중심으로 들끓고, 평소 그대 길에 맞지 않고, 그대를 산만하게 하고, 차갑게 하고, 하느님의 현존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상의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 낸다면, 이는 허영이다.
만일 그대의 상상이 다른 사람을 맴돌고, 자기 임무가 아닌데도 남을 판단하는 잘못에 쉽게 빠지고, 남의 행동을 비열하고 객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만일 그대의 상상이 자신의 재능과 말투 또는 자신이 타인에게 불러일으키는 감탄의 분위기를 맴돈다면, 바른 지향을 잃고 오만해질 위험이 있다.
일반적으로 상상을 풀어놓는 것은 시간 낭비이지만, 더욱이 통제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의적 유혹 타래에 길을 열어준다.
내적 고행을 단 하루도 거르지 말라!
“저는 더 바르게, 더 결단력 있게 행동할 수 있고 더 큰 열정을 주위에 전파할 수 있는데…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솔직해도 될까?― 그대가 바보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영혼의 문 가운데 방비가 가장 허술한 문이 인간 어리석음, 즉 허영심임을 아주 잘 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곳으로 돌진하고 있다. 그럴듯한 감성의 회상, 히스테릭한 말썽꾼 콤플렉스, 자유 결핍 가능성의 느낌….
“깨어 기도하여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7 하신 스승님의 권고를 따르기 위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고통을 만들어내서 상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데에 열중하는 이들이 있다.
나중에 객관적인 어려움과 시련이 올 때, 그들은 성모님처럼 십자가 밑에서 아들을 바라보며 지키지 못한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 특히 하느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데 익숙해져라.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에는 침묵하라! 날카롭거나 가벼운 말이라도 뒷담화나 중상모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청년이 자신을 하느님께 더욱 온전히 바친 후 한 말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말을 줄이고 병자를 방문하고 바닥에서 자는 것입니다.”
이 말을 그대 자신에게 적용하라.
그리스도의 사제들에 대해서는 오직 칭찬하기 위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
형제들과 내가 평소 우리 행동에서 이것을 명심하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book-subject/surco/4309/ (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