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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밭고랑»에 일 → 올바른 의도 항이 있음.

그대 또한 그대를 ‘찌르는’ 직업적 소명이 있다. 자, 그 ‘가시’는 사람들을 낚는 미끼다.

따라서 그대의 의도를 바로잡고 하느님과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직업적 명성을 확실히 얻도록 해라. 주님께서는 ‘이것’도 기대하신다.2

그대는 자신이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답변을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다. 늘 드리던 것을 드리되 주님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덜 생각하게 하는 사랑의 마무리로 그 일을 더 잘 끝내면서 드려라.

그대가 열심히 일하고 보탬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직업적인 의무는 삶에서 적절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결코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얼마나 많은 ‘직업주의’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지!

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지만, 도구나 수단이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삽의 무게가 원래보다 100배나 나간다면, 노동자는 그 삽으로 땅을 팔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삽을 드는 데 온 힘을 써버리고, 씨는 심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남아서 뿌리내릴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일하는 사람은 제아무리 정직하고 깨끗하게 처신하더라도 질투, 의심, 시기를 쉽게 불러 일으킨다. 그대가 관리직에 있다면 특정 동료에 대한 일부의 우려가 그를 배제할 충분한 이유가 아니라, 그가 더 큰일에 쓸모 있을 수 있다는 표시임을 기억하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죽도록 일하는 사람이나 몇 년 후 평안의 보장에만 집중하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느님을 위해 세상을 이기고 정복하려고 공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노력의 차원을 높여 지금까지 한 일이 주님과의 만남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길을 따를 사람들에게 기초가 되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공부는 기도가 될 것이다.

직업적 출세에 대한 조급하고 무질서한 열망은 ‘남을 위한 봉사’를 가장한 자기애를 감출 수 있다. 우리는 거짓으로 —거짓, 맞다— 어떤 기회, 어떤 유리한 상황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만든다.

예수님께로 눈을 돌려라. 그분은 ‘길’이다. 그분의 드러나지 않은 시절에도 공생활을 앞당길 ‘아주 유리한’ 기회와 상황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열두 살 때 율법학자들이 그의 질문과 대답에 놀랐을 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다린다. 그분은 순종한다!

온 세상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려는 거룩한 열망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계획이 암시될 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주님께서 달리 요청하시지 않는 한, 그대 또한 순종하고 드러나지 않고 빛나지 않는 그 일을 맡을 차례임을 명심하라. 하느님은 그분의 때와 방법이 있으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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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린 12,7-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