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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얼떨떨하고 방향을 잃은 채 이 물음에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고, 어쩌면 교도권이 수세기 동안 정식화해 온 것 — 그리고 훌륭한 교리서들이 본질적인 정확함과 간결함으로 제시해 온 것 — 이 이제는 극복되었으며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일련의 사건과 어려움이 한데 모여 교회의 맑은 얼굴을 흐리게 하려는 듯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장합니다. 교회는 이른바 현대라는 것에 적응하려는 열망 안에 있다고. 다른 이들은 외칩니다. 교회란 인간들의 연대를 향한 갈망일 뿐이며, 우리는 오늘날의 상황에 맞추어 교회를 바꾸어야 한다고.
그들은 틀렸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바로 그 교회이며, 다른 교회일 수 없습니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신앙과 신앙의 성사들 위에 세워진 교회의 통치를 위한 하느님의 대리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다른 교회를 세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듯이, 다른 신앙을 전하거나 다른 성사를 세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성사들로 교회가 세워졌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제3부, 64문 2절 이론에 대한 답변 3).
교회는, 초기 공의회들 가운데 하나가 신앙 고백으로 표현하였고 우리가 미사의 신경에서 외우는 저 네 가지 표지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이것들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그대로, 교회의 본성에서 나오는 교회의 본질적 속성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이기에 이는 또한 표지, 곧 그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릴 수 있는 다른 어떤 종류의 인간 모임과도 교회를 구별해 주는 표징이기도 합니다.
한 세기 남짓 전, 비오 9세 교황께서는 이 전통적인 가르침을 간략히 요약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신경에서 우리가 믿어야 한다고 고백하는 그 네 가지 표지 안에서 신적 권위로 세워지고 인식된다. 그리고 그 표지들 하나하나는 나머지 표지들과 결합되어 있어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참으로 가톨릭이라 불리는 교회는 일치와 거룩함과 사도로부터 이어옴이라는 특권으로 함께 빛나야 한다. (비오 9세, 영국 주교들에게 보낸 성무성성 서한, 1864년 9월 16일)
이는 — 거듭 말씀드리지만 —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이며, 최근 몇 년 사이 그릇된 일치운동에 이끌려 어떤 이들이 이를 잊었다 하더라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다시금 되풀이한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고백하는 바로 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를, 우리 구세주께서는 부활하신 뒤 베드로에게 맡기시어 그가 이를 기르게 하시고, 그와 다른 사도들에게 이를 널리 퍼뜨리고 다스리도록 위임하셨으며, 영원히 진리의 기둥과 터전으로 세우셨다. (“인류의 빛” 8항)
에서 인쇄된 문서 https://escriva.org/ko/amar-a-la-iglesia/2/ (2026-10-25.)